노이즈 캔슬링
 

 
   주머니가 모자라서 내가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열차 소리가 멀어지고 가수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나와 무관해지는 풍경이 꿈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도
 
   깨어나면 사진이 저장되어 있지 않은 앨범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주머니 안에서 차창 밖으로 도심의 불빛들이 점점이 지나쳐 가고 그걸 바라보는 승객들 몇이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수는 달콤한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나는 맛볼 수 있을까 싶다가도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주머니가 모자라서 집으로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소리는 무게가 없지만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을 붙드는 힘은 있어서 소음들이 주머니 안을 떠돌고 있습니다
 
   가수는 소음들에 개의치 않고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고 사라집니다 마지막 곡이었는지 목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고 나는 달콤한 꿈속의 막바지에서 자신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셀프카메라를 찍어보는 일처럼 나와 무관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기침소리처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소음이 되어갑니다
 
   주머니 안에서 나를 꺼내려던 손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사라진 풍경을 더듬어보고 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기현

2022
시, 10행에 441자. 무음 속에서 들리는 사라진 목소리들.

   물소리
  
  
  
   슬리퍼를 끌며 우리는 애월을 걸었다
   많이 걸었고 솔직해졌다
 
   뙤약볕 아래에서 물통을 건네는 네가
   모자 챙 그림자 안에서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소해
 
   해변을 질주하다
   바다에 입수하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처럼
 
   물이 증명하는 것이
   몸을 온전히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라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
 
   눈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분명
   다른 어딘가에 입장했을 거라고
   믿어볼 수 있게 되어서
 
   나는 어느 선사박물관에 있었다
   수천 년이 지나 발굴된 물건들은
   자신을 만지던 손길을 기억하고 있을까
 
   손이 닿으며 생기던 음音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정말 사소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억할 수 있어서
 
   당신은 누굴 보고 있습니까?
   역시 그가 나는 아니겠지요
   이 질문은 어떤 목소리로 내야할지
 
   그렇지만 사소한 일이야
   바다에 들어갔다가
   젖은 몸을 이끌고 나와
   다시 애월을 걷는 것쯤
 
   누군가를 불러보고 싶어서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잘 보존된 물통을 매만진다고 해도
 
   단지 그곳엔 바다가 있을 테고
   우리가 슬리퍼를 신고 걸었던
   길목이 있을 테고
 
   우리 둘만 기억되는 세상은
   얼마나 어리숙할지
   얼마나 사소할지
 
   물통을 건넬 때
   흔들리며 났던
 
   수천 년 전의
   물소리를 알아듣는 일처럼

물소리

이기현

2022
시, 43행에 443자. 수천 년 전 애월을 걸으며 들었던 물소리가, 다시금 들려올 때.

이기현

199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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