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처럼
 
 
 
   몇 번의 선언과 몇 명과의 모임
 
   색깔을 잔뜩 뒤집어쓴 채
 
   울면 운 만큼 긴 다리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너를 향하는
 
   너로 인해 시작되고 너로 인해 멈춰서는
 
   *
 
   너를 명확하게 말한다 너로 인해 나는 색깔처럼
   너로 인해 텀블러처럼
 
   주황색이었고
   음료를 마시면 주황색이 온몸을 이루는 것 같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너자고 다짐했던
 
   네가 다리의 맞은편에 있다 네가 나의 끝이었다 나는 너를 향하는 색깔 중 하나를 지니고
 
   하나처럼 걸었다
   하나처럼 하나를 밟았고
 
   주황색 안에 지니는 빨간색과 노란색을 연주한다
 
   시가 별게 아니었으면
   노래도
   춤도
 
   나는 삶만큼 외로웠다 도달은 완성일 거라고
 
   포옹
 
   그 단어만큼 완벽해지는 순간이 있을까 그 단어만큼 따뜻한 순간이 있을까
 
   그 단어만큼 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안에 순간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
 
   무지를 고백해
 
   몇 번의 미래와 몇 명의 꿈
   누구를 만나도 누구로 얼굴을 덮는 순간처럼
 
   *
 
   완벽해지고 싶어서 나를 구겼다
 
   도화지는 구겨지고
   색깔은 폭력적이었다
 
   유희만큼만 하자 유희만큼만 걷자
   웃어도 되고
   슬픈 것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고
 
   네가 나보다 어른이었다 네가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내 안에서 태어났던 네가
   어느새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었다
 
   나는 너보다 작은 어른이고
   나는 색깔을 뒤집어쓴 채 울고 있다
 
   사람들과 부딪칠 때마다 하나의 색깔이 덧칠해지고
   하나가 둘로 둘이 셋으로
   아주 검게 변할 때까지
   사실 내 본질은 검은색 아니었을까
   그런 우울을 만날 때까지
 
   너의 색깔이 나를 열어주기 전까지
 
   주황색만큼만 울어도 돼
 
   거대해지지 않아도 돼 너의 슬픔만큼만 울어도 돼
 
   *
 
   이해해줘
   이번 생은 완벽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은 모두를 품을 만큼 훌륭한 성인은 못 될 거야
   대신 내 슬픔만큼은 제대로 바라보는
 
   문을 두드려줘
   다리는 예전부터 이어져 있었고
   인식은 감각과 기억에 의존해
 
   문을
   너는 나의 오래된 리듬이었어
 
   하나의 만남으로
 
   하나만큼만
 
   나를 채울 수 있는 만큼만
 
   색깔로 이루어져
 
   주황의 리듬이 무지개의 리듬을 이해할 힘이고
   나는 탄생을 향하는 리듬을 지니는 것이고
 
   네가 있어서 나는 살아 있어
   지금이 어둡지 않아

   그런 고백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누구처럼

김도경

2022
시, 65행에 1023자.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고백.

   너
  
  
  
   네가 물고기처럼 웃었다
 
   기포가 터지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네 안에서 너는 물고기처럼 웃었다
 
   이곳에서 나를 호명했다
 
   부른 건 나일 수도 있는데
 
   아니면 우리였을 수도 있는데
 
   나는 너를 볼 수 있다
   마주하고 포옹할 수 있다
 
   물거품처럼
   사랑한다는 귓속말처럼
 
   시간이 엇갈릴 수 있다
   스스로를 꽉 움켜쥔 채
   너에게 다이빙할 수 있다
 
   죽는 건 제법 고요한 걸지도 몰라
 
   사랑한다는 건 거품 같은 환상일지도 몰라
 
   네 안에서 우리는 미래처럼 투명했다
 
   내 안에 온갖 지구가 쏟아질 때
   네 안에 온갖 우주가 나를 포옹할 때
 
   우리를 주위로 자전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걸 하나 골라
   바다에서 우주까지 웃을 수 있다


김도경

2022
시, 22행에 319자. 네 안의 온갖 너, 내 안의 온갖 너.

김도경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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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basun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