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없는 평화를 기억해 그러니
바라볼 가치도 없는 것들을 보다가
별일 없으면 죽어도 좋을 것 같다
머미브라운 머미브라운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우스운 사람이 될 줄은 몰랐어요
습지의 미라들이 짓고 있는
입 모양은 꼭
내생에도 함께 살고 싶은 누군가의
부패하지 않은 이름 모양인 것 같다
난 누가 흘리고 간 증명사진처럼
정갈한 표정으로 너의 바깥에 남겨져 있고
넌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처럼
내 안에서만 살고 있고
그래서 슬펐다
머미브라운 머미브라운
우리가 어떻게든 지구에 있으니까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물 분자가 이동하는 것처럼
다섯 걸음이면 현관문 앞에 도착하는 집
다섯 걸음이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집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가
결빙.
얼음을 갈면 수분이 생기고
사람을 태우면 가루가 된다
봉안당에서 본
죽은 사람 이름이
너랑 같았다
부르다가 그만 둔 이름의 끝자락부터
갈변하기 시작했다
다섯 걸음이면 현관문을 열고
단 한 걸음이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집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집
그런 곳에서 얼고 녹으며
나는 습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머미브라운
이기현
2023
시, 45행에 403자. 나는 그곳에서 습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같이 사라지자는 말은 시시해
차라리 네가 어떻게 늙어갈지
궁금하다고 했더라면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지옥이라도 갈 수가 있지
그렇지만
자갈밭 같은 마음 위를 뒹구는 사람 때문에
담벼락을 집고 일어서면
아픔 아닌 것들도 발목이 되어 걸어갔지
슬픔이 번성한 나라에선
슬픔도 여러 취향으로 나뉜다던데
여기에서 슬픔은 잠깐의 기분 같은 것
교각만 보이는 투명한 보행교 위에서
나를 지나쳐 건너가는 것들
나는 건널 용기가 없어 마음이 무너진다
어쩜 하나도 변한 게 없네
그리운 얼굴은 그리워하는 얼굴을
빛이 물드는 소리처럼 반기겠지
나는 여전히 너의 몇 가지 취향으로 남아있어
보행교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것들이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아프고 익숙하고
같이 사라질까
정말 같이 사라져 버릴까
늙을 때까지
늙은 너의 얼굴이 어떨지 그려볼 자신이 있어
그대로겠지
그대로일 거야
슬픔이 번성한 나라에선
슬픔의 명세서를 받는다고 하던데
무엇을 슬픔으로 지불했는지 알 수 있다던데
나는 나를 따라 걸어온 발목들에게
지금 누가 말을 걸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하고 혼자 슬퍼하고 시시해지고
내가 멈추어도 발목들은
교각만 남은 다리 위를 계속 걸어갔지
나는 출입할 수 없는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지
미안해 나는 결국
시시하게 늙어가고 있나봐
그곳에서 빛이 물드는 소리를 들었어
목소리가 머물던 얼굴처럼 선명해서
그대로겠지
그대로일 거야
빛이 물드는 소리
이기현
2023
시, 58행에 506자. 슬픔이 번성한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