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식으로 운영되는 수 세기 후의 도서관에서
당신의 실록을 보았지
사관들은 저희의 왕을 너무나 사랑해서
당신의 일거수를 기록하는 책을 썼다네
머리 몸통 꼬리로 삼등분된 해부학 삽화처럼
과거 소과거 대과거로 편철된 세 권의 시간
당신의 낮과 밤과 꿈을 죄 가두었던 금서가
이제는 완전한 해적판이 되어 자유롭게 떠돌아
광장에서는 열렬한 목회자들이 사후를 예시하고
관광객들은 손잡고 왕릉을 거닐며 생후를 예찬하고
세상엔 당신을 묘사하는 가냘픈 술어가
호위도 방부도 없이 쌓이고 있어
어린 왕의 몰락을 지키던 한 문사는 이렇게 적었어
초엿샛날부터 이날까지 안개가 심하게 끼었다*
그건 단순한 편년체였지만
동시에 기록자만의 은밀한 비유이기도 했지
언젠가 눈 밝은 자들에 의해 의미가 걷히길 바라는
먼지 속의 상형문자처럼
혹은 상형할 수 없는 문자처럼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면 세 겹의 염원이 나타나지
더없이 사랑하는 이가 근미래와 미래를 지나
머나먼 노래가 되어 자유롭길 바라지
장서각의 나날
조온윤
2022
시, 32행에 387자. 조선왕조실록 일부 인용.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전시를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전깃불이 밤을 밝히던 기념비적인 그곳으로
두 형제가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갈라지던 그곳으로
잠들기 전 어느 나라 말로 꿈을 꿀지 생각하는
식민지의 소학생처럼
두 갈래의 이야기가 다시 하나 되는 그곳으로
말 이전의 묵언과 몸짓의 시절로
상류에서 텅 빈 뗏목이 떠내려오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강을 건너려는 임에게 공무도하를 불러주던 그곳으로
삼세계로 망명한 소설가가 모어를 잃어버린 그곳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그러나 눈을 감으면 저 멀리, 다른 한편이 웅성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덧 다다른 경성에는
해석할 수 없는 외국어가 눈발처럼 휘날리고 있어
빼앗긴 고궁이 전부 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저고리 노인처럼 서성이며 서 있어
우리의 시간은
언제든 펼쳐볼 수 있어서
아무도 펼치지 않는
외롭고 두꺼운
사전과 같아
그때에 잃어버린 모어들이
텅 빈 기표가 되어 이곳으로 떠밀려오고 있어
주인 없는 옷소매가 몸을 찾아 너풀거리고 있어
기원전으로부터 오래전으로부터
따듯한 물처럼 시간이 흘러와
헤어진 형제가 간만에 재회한 저녁의 생방송처럼
태어나 처음 키오스크를 두드리는 만학의 노인처럼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가 모여 사는 이곳으로
말 이후의 해방과 웅성거림의 시절로
역사 상설 전시
조온윤
2022
시, 40행에 472자. 경복궁 인근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