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아하지 마 그게 뭔데 나 좋아하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유 슌은 해안도로의 외곽을 따라 유리관을 쓴 나무들이 쭉 이어져 있는 걸 본다. 오늘도 그 앞에 쭈그려 앉아본다.

   

   자라다 멈춘 작은 나무들이 나의 앉은키와 수평을 마주하고…. 생각은 접착력이 강해 다음을 원하고 있다. 수평을

   

   마주하고….

   

   그러나 이때 바닷바람이 현실을 낚아챈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차가운 소리다. 떠올리고 싶은 게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피나는 누운 채로 주머니를 뒤적거려 남은 동전을 확인한다. 만화방의 안락함이 피나를 곰으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그래픽 노블『나의 우주는 토끼 귀』는 X세대 로봇들에 관한 이야기로 저자는 감정, 기억의 역학관계를

   로봇이란

   조작 가능한 변수를 통해 끝없는 결핍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책의 표지도

   바다 저편 거대한 로켓이 쏘아 올려지는 장면이다. 이를 쳐다보는 로봇의 뒷모습이다.

   

   피나는 마지막 권을 펼쳐 든다. 이야기는 점차 끝의 정면으로 나아간다.

   

   유 슌이 시내에 들어와 전화 걸고 있다. 어디 있어? 아테네 제과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지? 응. 거기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전화음이

   잠시

   차단됐다. 유 슌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건물을 쳐다본다. 베이지톤 포세린 타일로 외벽을 시공한 아테네 제과점은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아침부터 길게 이어진 줄이 그 인기를 보여준다. 보여?

   

   못 들었어.

   

   줄을 지나쳐!

   

   줘 홍은

   타바스코 스티커가 붙여진 봉투를 들고 분수대 앞에 서 있었는데, 아테네 제과점의 타바스코 도넛은

   입간판에도 적혀 있듯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고 한다. 아침부터 가게 안에는 눈물 흘리며 도넛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 슌은 괜히 줘 홍을 쳐다보다

   

   이제 뭐 할 건데? 물었다.

   

   줘 홍은

   바다를 가리키며

   

   산책.

   

   유 슌과 줘 홍은 서로 이날이 자신들의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다. 바닷바람 맞으며 해안도로 지나가는데 외곽을 따라 유리관을 쓴 나무들이 쭉 이어져 있다.

   

   오래도록

   

   줘 홍은 그 앞에 앉아있었고 그 모습을 유 슌은 잊지 못한다. 드문드문 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까

   해안도로 지나왔잖아. 너는 봤을지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면 유리관 옆에 양쪽으로 작게 구멍이 나 있었다? 바람이 작은 나무를 품고 있었어. 앉아서 들어보면 바람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우리의 그 날은 한 마을에 도착해 망해버린 방앗간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오후 내내 바다를 지켜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줘 홍은

   타바스코 도넛을 베어 물며, 마지막인데도 역시 눈물은 안 나네.

   

   바닷바람 소리가 침묵이 넘어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온다. 유 슌은 할 말이 없었다.

   

   뭐 해줄 말 없어?

   

   줘 홍은 생애 마지막으로 유 슌을 쳐다보았다.

   

   응?


나 좋아하지 마 그게 뭔데 나 좋아하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김병관


2020

시, 65행에 968자. 해안도로, 베이지톤 포세린 타일, 타바스코 도넛.


   여여如如
  
  
  

   흐르는 강에 칼을 씻던 날 환부患部를 떠올리면 새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당시 며칠 동안이나 새가 쳐다보는 악몽에 시달렸는데 낙엽처럼 흩어진 꿈의 기억을 주워 무당에게 가져가니

   한 여인이 한낮에 춤을 추고 있다

   햇볕에 돋아난 그림자가 거대한 새의 눈동자를 보는 듯하니

   밤이 용서를 지울 때까지 자네는 낮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대답에 의문이 들어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무엇이오? 하고 되물으니

   저 먼 공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공터에 햇볕이 들면 움직이던 그림자가 과연, 낮의 한가운데 꿈에 서 있는 듯했다

   

   소염을 만난 지도 꽤 오래 전 일이다

   

   -

   

   저 바다 건너 섬나라엔 약지 한 뼘의 흰밥 위 생선 따위를 얇게 썰어 얹은 음식이 있는데 이를 초밥이라 한다 내 언젠가 대접을 위해 손수 이를 만들려 비늘에 손을 대다 아차, 싶던 적이 있는데 내 천생이 칼을 대면 안 된다 하니 그럼 평생 시장에나 기웃거리라는 것인지

   

   서생은 초밥을 먹으며 수다스럽다가도

   

   박제된 매를 쓰다듬는데 손이 그리움에 가 있는 듯했다

   

   소염, 이제 곧 제전祭典이렸다

   해어화解語花라 불리는 건 몸을 켜고 자신을 잊는 건 줄 알았네

   자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평생 그랬을 게지

   나는 그대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말을 듣던 소염이

   

   초를 끄고,

   

   어르신, 운명은 이불 안에 잠든 꿈과 같아 눈 뜨기 전까진 세상인 줄 알지요 눈을 뜨면 새벽이었는데 어둠이 내렸지요 제가 눈을 뜨면, 이와 같은 어둠이었지요 저는 매일 춤을 추었습니다 왕의 옆에 다가서리라, 가슴에서 하는 말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거지요 제전祭典은 아직 날이 멀었는데, 어머니가 아프시다 결국 아픈 소리마저 잊으셨던 날, 낮이었는데 어둠이 옵디다 동생은 그 어린 것이 어둠을 헤치겠다고 손을 휘적대는데 그 손이 앙상하겠습니까? 제 속이 앙상하겠습니까?

   

   말을 하던 소염이

   

   초를 켜고,

   

   그녀의 온몸이 고요히 다가왔다

   

   -

   

   제전祭典은 본래 의식만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서종栖宗은 자신의 무희를 찾기 위한 날로 정하기도 하여 팔도八道 어디에도 제한이 없으니 이날만큼은 궁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 광경을 서생들 또한 바라볼 수 있었는데

   

   왕의 택擇에서 떨어진 자들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였다

   

   -

   

   마침내 소염이 제전祭典에 오르고 서생 또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생은 처음 본 날의 소염을 아직 잊지 못하는데

   

   이는 저 그림자가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춤이 시작되자

   

   낮의 한가운데 꿈에 서 있는 듯했다

   

   그날 분명 서생은 어떤 감정을 지나고 있었는데

   

   저녁이 오면

   

   어둠이 내렸다

   

   소염을 만난 지도 꽤 오래전 일이다


여여如如


김병관


2020

시, 65행에 941자. 춤과 낮의 한가운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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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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