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도서관을 위한 도서관
 
조온윤

   어렸을 땐 그곳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여느 아이처럼 나도 줄글보단 그림으로 된 이야기가 좋았거든. 거긴 대부분 활자 가득한 책들만 취급하더군. 이상하지. 그때 어른들은 만화로 된 책을 읽으면 한심하게 보고, 줄글이 빽빽한 책을 읽으면 칭찬해주었어. 그래서 그곳으로 갔던 것 같아. 활자야말로 어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매체였고, 도서관은 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내가 다녔던 도서관은 계단을 꽤 올라야 하는 지대에 세워져 있었어. 높은 곳에 있던 때문일까? 항상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 평일 오후에 그곳에 오는 이들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 문제 풀이에 골몰하는 대학생들이나 어려운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뿐이었어.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놀기 바빴고, 부모들은 모두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터에서 돌아오곤 했으니 책을 읽을 여유 따위 없었던 걸지도.

   아무튼, 나는 드물게 그곳에 가는 몇 안 되는 아이였어. 계단을 다 오르면 붉은색 벽돌로 된 도서관 건물이 나타났지. 다시 또 한 층을 올라 자료실에 들어가면 마침내 온갖 미지의 세계들이 윗입술 아랫입술처럼 표지를 앙다문 채 꽂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이야기의 힌트를 알려주는 책등이 세로로 선 채 나열된 서가들, 그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지나는 순간에는 늘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서가와 거기에 꽂힌 장서의 수와 장서 한 권이 품고 있는 활자의 개수를 헤아릴 때면 그 무수한 정보량에 짓눌릴 것 같았거든.

   실은 그림이 아닌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 속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깨달은 건 그쯤이었어. 어린 독자를 위해 순화되고 생략되던 책과는 너무 달랐지. 한 가지 예로, 나는 더 어렸을 적에 『안네의 일기』를 만화책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안네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읽은 그녀의 일기에는 만화로는 묘사해주지 않던 내용이 많았어. 어린이라는 한 겹의 보호막 아래 편집되어 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거든. 그런 책을 만날 때면 괜히 애 취급을 받으며 속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독서에 더 열을 올렸던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종일 도서관에 갇힌 채 모든 책을 섭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책이 많은 곳에는 반드시 책을 지키는 사서들이 있었거든. 폐관 시간이 다가오면 사서들은 안내 방송을 틀고 서가를 돌며 사람들을 내보냈지. 그들은 대개 데스크에 조용히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었어. 사람들은 책을 찾아 달라거나 빌려 달라는 용무가 아니고서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쪽에서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었어. 가끔 지나치게 산만한 학생들이 있거나 신경 쓰일 정도의 말소리가 들릴 때면 슬슬 다가와 짧게 주의를 주고 가는 게 전부였지.

   내가 보기에 그들은 책을 지키는 일뿐 아니라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같기도 했어. 은연중에 그들을 동경했던 때문일까? 나는 자라면서 점점 그들처럼 과묵한 어른이 되어갔어. 그리고 정말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그들이 하던 일을 내가 하고 있더군.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책과 침묵을 지키는 일을 말이야. 언젠가 나는 문학을 배우겠다며 가난한 대학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는데, 밥벌이를 찾던 중에 공교롭게 도서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긴 덕분이었지.

   처음에 내게 주어졌던 일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 자료실 데스크에서 이용자를 응대하며 책을 대출해주거나 돌려받고, 이따금 수거함에 가득 쌓인 책들을 서가에 정리하는 정도였거든. 그 밖에 도서관 곳곳에 필요한 크고 작은 잡일을 맡기도 했지만 대체로 책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이용자를 만나는 게 주된 업무였어. 어른이 되어 풀린 한 가지 오해가 있다면, 도서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거였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과묵하고 무심한 사서들의 모습과는 같지 않았어.

   거기서 꼬박 삼 년을 일했더니 웬만한 도서관의 소관은 꿰뚫을 수 있었어. 하루에 수백 권씩 서가에 책을 배열하다 보니 십진분류와 도서기호의 구조도 자연스레 외게 되었지. 도서관이 마치 사람들이 원하는 단 한 권의 책을 작은 섬처럼 감추고 있는 망망대해라면, 분류기호는 그곳으로 가기 위한 좌표였어. 좌표를 읽게 되니 표류 중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더군. 관내에서 분실된 책을 찾아 본래 자리에 되돌려주기도, 도서관 미아가 된 이용자들을 그들이 찾고 있던 책의 주소지로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창문 밖으로 아침볕이 무르익다가 사양이 될 때까지, 빈 공간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가장 나중으로 나가며 문을 잠글 때까지, 그렇게 한나절을 도서관에 머무르고 있으면 마음이 안락하고 평온했어. 단순히 오랜 기간 일한 덕에 그런 일상에 익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지. 도서관은 자칫 압도될 만큼 많은 양의 장서가 보관된 곳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곳이기도 했거든. 주제와 시대에 따라, 저자명과 표제에 따라 모든 게 질서 있게 짜여 있으니까.

   사람들에게는 혼란 속에서도 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본능이 있는 걸까? 한번은 이렇게 무수한 책이 일목요연하게 집적된 공간을 떠올리고 만든 건 누구일까, 세상에 처음으로 지어진 도서관은 어디일까 궁금했어. 그때 내가 집으로 빌려온 책은 십수 년 전 문헌정보학 연구자들이 공동 집필한 『도서관을 위한 도서관』이라는 책이었어. 누구나 자신의 방 책장 구석에 오래된 일기장이나 사진첩 하나쯤 보관하고 있듯이, 도서관도 자기 자신의 생애사를 기록한 책을 몇 품고 있었지.

   그 책에 따르면, 도서관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간에 알려진 최초의 도서관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흥하고 멸했던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전쟁광이자 잔인한 왕이었지만 끝없는 전란의 시대에 몇 안 되는 교양인이자 지식인이었고, 자신이 아는 바를 축적하려는 수집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지. 한때 그가 차지했던 이집트 땅에는 얼마 후 고대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와 장서량을 자랑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지기도 했어. 또 다른 정복자들에 의해 그 거대한 도서관이 불에 타 사라져버린 건 유명한 일화일 테지.

   우리나라에도 도서관을 사랑한 왕들이 있었어. 세종은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사가독서로 서책 읽기를 장려했고, 몇 세기 뒤 정조는 규장각을 짓고 흩어진 양서를 모아 왕실의 도서관으로 삼았어. 1901년 대한제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독서구락부가 세워졌고, 해방 후에는 사서 박봉석을 중심으로 국립도서관이 설립됐지. 그런가 하면 대지 위의 축조물이 아니라 종이 위에 활자로 지어진 도서관도 있었어. 1941년 지구 반대편에서 보르헤스는 짧은 소설 속에 무한하게 반복되는 장서로 가득한 도서관을 지었어. 그 유명한 바벨의 도서관을 말이야.

   내가 아는 도서관의 역사가 거기까지 가닿았을 때,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어. 도서관이 하나의 생물 종처럼 세계에 뿌리내린 이래 그 크기와 영향력을 점점 넓혀 왔다는 것을. 아주 조용하고 꾸준하게, 우리의 인식과 사유의 수준을 조금씩 바꾸어놓는 은밀한 기관으로서 작동하면서. 인도의 수학자이자 문헌정보학자였던 랑가나단이 주창한 도서관학의 법칙도 일찍이 그 점을 말하고 있었지. 첫째, 도서관의 장서는 이용하기 위한 것. 둘째, 모든 사람을 위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이란 계속해서 자라나는 유기체라고.

   이제 세상에는 실재하는 장소를 넘어 조그만 기계 속에 그 무수한 장서와 서재가 담기기도 해.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수중에서 원하는 책을 읽고, 책을 이루는 글자는 바이트로 환산되어 전자기기의 기억장치에 쌓이게 되었어. 그건 도서관이 물리적 공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뜻일 테지. 도서관이 변화하면 도서관에 관한 책도 거듭 개정판을 찍어낼 테지만, 그게 과연 전지와 활자판에 잉크를 묻히고 낱장을 제본하는 방식으로 반복될 것이냐는 알 수가 없어.

   어떤 이들은 이런 변모가 도서관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다가올 미래에는 공간의 가치가 무용해질 것이고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 사람은 없어질 거라고. 폐간 신문과 잡지가 늘어가고 어느 가게든 데스크에서 손님을 맞는 종업원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수십 년 안에 잇따라 인쇄공이, 편집자가, 사서가, 시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어.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 활자를 묵독하던 습성 그대로, 아무런 반항도 주장도 없이 침묵을 지키며 역사 속으로 퇴장하겠지.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하나같이 사라질 것들만을 좇고 있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책을 지키는 사서들을 선망하며, 매일 묵독으로 시와 소설을 읽고 있지.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눈앞에 나타나던 언덕 위의 붉은 도서관, 그곳에서 조개껍데기처럼 모아온 활자들을 조립해서 책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어. 그것도 전지와 활자판에 잉크를 묻히고 낱장을 제본하는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마치 꺼져가는 등불에 손바닥을 갖다 대며 마지막으로 온기를 쐬겠다는 듯이.

그건 아무래도 내가 도서관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여느 장소와 다르게 그곳은 나에게 말하기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나는 말보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고, 도서관은 침묵이 곧 미덕이 되는 곳이니까.

   알다시피 세상에는 너무 많은 소음이 떠돌아다니고, 바깥의 풍경은 좀체 멈춰 있질 못하고 시간의 빠른 박자에 허둥지둥 움질거리고 있어. 한시도 입을 다물기를 허락하지 않는 요설가들과 어디로 눈을 돌리든 머리를 들이미는 광고판들, 쿵쾅거리는 노랫소리가 여러 줄기로 얽혀 있는 거리를 바라볼 때면 처음으로 글자를 발명한 이는 아무래도 소리를 가두기 위한 게 아니었을지 싶어. 이런 세상에서 조용하고 정적인 사람으로 산다는 건 자칫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나는 침묵 속에서 고르고 골라낸 말이야말로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진실로 타자와 친화하는 언어라는 걸 알아.

   이따금 나는 전생에 그 무엇도 아닌 도서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처음에는 아슈르바니팔 왕에 의해 세계 각지의 점토판을 전리품으로 쌓아두는 도서관이었다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허물어졌을 거야. 그다음은 뜨겁고 메마른 땅에 거대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그다음은 로마 제국에서 수도원들의 도서관으로, 해방된 경성의 국립도서관으로 해체와 신축을 거듭하다 지금, 머릿속 기억장치에 발췌된 책을 저장하고 걸어다니는 도서관―인간에 이르게 된 거겠지.

   이다음 미래에는 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염세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도서관은 머지않아 종말을 맞고 더 이상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누구도 침묵을 보호해주지 않고 침묵하는 자들을 포용해주지 않는 세상이 되어서, 도서관식 인간은 모조리 허물어지고 폐허가 되고 말 테지. 그리고 누군가의 오래된 서고, 또는 사라진 것들의 전시회에 『도서관을 위한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낡고 바랜 책으로나마 자취가 남아 있겠지.

   그런데 정말 이상하지. 그런 미래를 떠올려도 서글프지가 않아. 나는 알아. 이렇게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고고한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을 남길 수 있다는 게, 한 권의 책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어쩌면 지금 내가 책을 짓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도 그 모든 도서관의 역사가 가리키는 단 하나의 미래였던 걸지도 몰라. 사라진 것들을 이야기로 품고 있는 글자들, 글자를 품고 있는 책, 책을 품고 있는 도서관. 그 몇 겹의 호위 속으로 들어갈 때면 나와 같이 내면에 또다시 한 겹의 보호막―도서관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

   그러므로 언젠가 도서관이 사라지고 이 침묵의 공간이 한 권의 역사서만으로 남게 된다 해도 슬퍼할 것 하나 없겠지. 도서관이 존재했음을 증언하는 그 책은 누군가 손가락으로 책등을 눌러 꺼낼 때까지 그 자리에 침묵을 지키며 꽂혀 있을 거야. 그리고 책을 펼쳐 든 이에게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속삭여줄 거야. 옛날 옛날에는 침묵으로 말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들이 사랑한 곳을 도서관이라 불렀다고.


도서관을 위한 도서관

조온윤

2022
산문, 22문단에 4,449자. 옛날 옛날에는 침묵으로 말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사랑한 곳을 도서관이라 불렀다.

조온윤_프로필.png
조온윤

화성에서 시를 쓰며 지내고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onew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