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사랑과 당신
 
    

   검은 개울가에 누워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 때문에
   몸이 썩기 시작할 때까지 잠들기로 했지

   아픈 것 또한 해야 할 일이니까
   몇 번씩 잠에서 깨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아직 살아 있다는 통각에 놀라면서

   망설이느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다시 편지봉투에 집어넣듯이
   조금 더 긴 절망이 있겠구나 싶었지

   어느 한 지역의 횡당보도 신호를 외울 때쯤
   그 지역을 떠나게 되었던 것처럼

   이곳은 언제 떠나게 될까
   집단의 슬픔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을 증오하게 된다고 벗어날 수 있을까

   매번 내가 믿는 것과 믿어야 하는 게 달랐을 때
   공포가 무대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물처럼 자다가 석고상으로 일어났지

   기도의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만 매일 악해지는 기분
   그래도 혼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나를 떠나는 것들은 모조리
   내게서 도망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빛도 층을 쌓아 그곳에 앉을 자리를 만들어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울 때
   그게 사랑의 형태였다고 알려 주었지

   다만 나는 빛으로 이루어진 그네에 앉아
   조금 더 긴 절망이 있겠구나 싶었을 뿐

   혼자 흔들리며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부터가 죽음인지

   검은 개울가가 박명을 받아들이며
   썩어 가는 육체를 드러나게 할 때
   내가 떠올렸던 건

   빛도 사랑도 당신도 아니었어
   빛과 사랑과 당신의 곁이었어 


빛과 사랑과 당신


이기현


2024

시, 49행에 469자. 아직 살아 있다는 통각.


   난연(難燃)
  
  

   연안에 사는 사람을 생각해
   관람차가 윤슬처럼 일렁거리며 돌아가는 곳
   불태우고 싶었던 마음도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가 되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차갑고도 우스운 몸을 빌려 입어
   잠에 든 고양이 옆에 앉아 있으면

   열렬하게 연안을 벗어나고 있는 건
   구름 몇 점과 몇 번이나
   나를 따돌렸던 꿈의 윤곽

   고개를 돌리면 책상에 엎드려
   잠에 든 친구들의 등과
   그 위로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에

   나만 깨어난 것 같아
   다시 책상에 엎드리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질문이 만든 환영에
   순식간에 사로잡혀
   변온동물의 망막처럼 서늘해지고

   연안에 사는 사람을 생각해
   폭죽이 터지며 사라졌던 마지막 불꽃이
   다음 불꽃의 열기를 기다리는 곳

   나는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수 있을까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을 품은 채

   언제나 연안에서 나만 깨어나는 것 같아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때문에
   종려나무처럼 서 있는
   그 느낌 때문에

   불꽃을 가지고도
   마음에 불이 붙지 않아
   체온을 가질 수 있었다고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전부 연안에서의 일이었지

난연(難燃)


이기현


2024

시, 46행에 371자. 사라졌던 불꽃이 다음 불꽃의 열기를 기다리면서.


이기현

199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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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tinannhuj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