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어쩌면 쭈뼛거리는 것은 나일 수도 있다 

   딸기를 심은 곳에서 딸기가 나길 바라는 것이 잘못일 수 있다
   딸기를 심은 곳에 딸기가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딸기를 심고 한참이나 기다린 후에 알게 되었다

   낙뢰가 내렸다
   맞은편 폐건물을 거쳐서
 
   사선으로
   사선으로
 
   나는 창문으로 낙뢰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부심….
 
   그때 이후로 자주 번쩍이는 꿈을 꾼다
   밤낮 상관없이
   파도가 나를 겨울처럼 감싸고
   나는 파도의 일렁이는 면을 지켜본다
   그 위로 낙뢰가 내린다
 
   어쩌면 그때부터일 수도 있다
 
   비가 내린다고 했다
   가뭄에 비라니
   뉴스가 떠들썩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고요하지만
   어디라도 떠들썩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언가 심어도 고요하다는 것
   고요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게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전부라는 것
 
   어쩌면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창문 앞에 서서 먹구름이 덮은 거리를 지켜본다
 
   그림자가 드리운 낮은 건물과
   서두르거나 서두르지 않는 사람
   화단과 쓰레기통을 가리지 않고 코를 박아대는 개
   감춰지는 좌판들
 
   괜찮니?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 묻는 사람을 떠올리면
 
   눈이 부셨다

소란


장가영


2025

시, 54행에 407자. 무언가 심어도 고요하다는 것.


   로드무비
  
  

   ㄴ과 ㄱ은 아주 끔찍한 일을 당했다
   입 밖으로 꺼내면 칼날이 얇게 살을 베는 것 같은

   그들이 파란 물고기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바다에 가기로 한 것은
   그것이 납득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째서 그 바다만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ㄴ은 승합차 중간 좌석에 앉아 내내 머리를 흔들며 잤다
   ㄱ이 ㄴ의 무릎 위로 포개어져 숨 쉬었다
   ㄴ이 잠꼬대 같은 숨소리를 내면
   ㄱ은 응. 나도.
   툭 튀어나온 ㄴ의 무릎 뼈에게 말하고
 
   바다에서
   ㄴ은 물비린내가 좋다며 바다에 달려들었다
   ㄱ이 소리치며 ㄴ의 꼬리를 붙잡았다
   ㄴ의 곧고 날씬한 꼬리가 모래사장에 떨어져 발작하고
   ㄴ은 떨어진 꼬리가 아파서 엉엉 울었다
   ㄱ은 코끝이 시큰해 코끝을 마구 문지른다

   그들은 기억에 관한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우린 이제 불쌍하게 닮았어

   ㄱ이 ㄴ의 멀미약을 새것으로 바꾼다
   ㄴ의 귀 뒤에선 이제 포도 향이 난다
   부작용은 기억을 잃는 거래

   ㄱ은 ㄴ의 꼬리를 바다에 던진다
   멀리서 지켜보던 ㄴ이 엉덩이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르지만

   바다는 여전히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답고
   그것만은 납득 가능한 거짓말 같았다

로드무비


장가영


2025

시, 40행에 407자. 우린 이제 불쌍하게 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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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영

시와 시를 닮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instagram : @borntobefreefree
e-mail : jangkangtaeyi@gmai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