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큰일 났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면 갈림길에 선 기분이 든다. 외면하느냐, 직면하느냐. 상황을 외면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 모든 것을 덮어버림으로써 상황이 가져다줄 충격마저 완화되기를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외면하려는 마음이 마냥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가올 충격의 실체가 희미할수록 불안감은 고조된다. 반면 직면하려는 경우는 온갖 불편함과 충격의 중심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거기에는 굳은 용기와 결심, 책임감이 필요하다. 영화 < 미성년 >은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을 뒤흔들 만한 사건에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같은 학교 동급생이지만 출신 중학교와 사는 동네, 반도 다른 두 사람, 서로 전혀 접점이 없는 주리와 윤아가 아침부터 학교 복도에서 육탄전을 벌인다. 윤아가 주리의 엄마에게 폭로해버린 비밀 때문이다. 그 비밀은 주리의 아빠 대원과 윤아의 엄마 미희가 불륜 관계라는 것. 급속도로 얼어붙은 집안 분위기를 두고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이제 지옥”이라고 말하는 주리와, “그게 왜 나 때문이냐”며 어른들의 일에는 관심 없는 윤아. 설상가상으로 대원과 미희 사이에서 생긴 아기가 예상보다 일찍 태어나면서 일은 점점 커지게 된다.
제목을 따라 인물들을 나누어 보면 어른들은 대체로 외면하는 쪽을, 아이들은 직면하는 쪽을 택한다. 대원은 아내 영주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아침 식사를 거르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주리와 윤아가 대원을 발견하고 쫓아가지만 대원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에 바쁘다. 집을 떠났지만 갈 곳이 없는 대원의 모습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그의 상황과도 일치한다. 미희 또한 외면하기를 택한다. 대원과의 관계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대원의 마음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대원은 대답이 없다. 그녀는 조산으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에게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주리의 엄마이자 대원의 아내인 영주는 남편에게 따져 묻거나 화를 내는 대신 일상을 지켜나간다. 이런 영주의 모습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남편의 불륜 상대를 챙기는 모습에는 의아한 면도 있다. 그러나 몇몇 장면을 보면 영주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고해성사를 보던 중 대원과 미희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괴로워한다. 용서하지 못해 괴로운 마음이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의 반증이라면, 영주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유일한 성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