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
   ─ 경성
    


   언니의 시신을 찾았다 언니의 시신에는 중절모가 있었다

   암흑만큼 모자 안은 깊었고 그 안으로 세상이 들어갔다 세상이 가득해질수록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빛을 상실한 시선이 뒤섞였고 언니의 신화가 들려왔다

   연대라는 감각으로
   우리라는 상실로

   언니가 언니를 불렀다 언니가 언니를 사랑했다

   우리가 언니가 된다


   *


   시계가 멈춘 도시
   목소리가 범죄인 도시

   언니들은 중절모를 쓰고 있다 암흑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전차가 거리를 지나가고 경관이 사방을 휘젓는다

   잡혀가는 언니
   밤의 흔적이 된 언니
   나무에 매달려 과녁이 된 언니

   언니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강탈이 일상이다 언니들에게 힘은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

   피의 운율을 느낀다
   거리에 피가 들끓는 장미꽃 같은 언술을 느낀다

   꽃이 만발하는 감각으로
   언니들의 몸은 공간을 왜곡한다

   암흑은 피를 다 넣을 수 없다 암흑은 세상을 다 넣을 수 없다

   언니를 다 넣을 수 없다

   무한함이 언니의 세상이다

   언니는 넘쳐흐를 것이다


   *


   언니의 시신은 꽃잎으로 변해갔다 중절모 안에서 언니의 가시가 쏟아졌다
 
   과거의 언니가 지금의 언니를 형성하고 있었다 과거의 언니가 지금의 언니를 장미로 은유하고 있었다

   드러내는 가시처럼
   아름다움이 되는 잎처럼

   언니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언니와 헤어졌다
 
   언니는 죽었다가 환생했다 언니는 잃었다가 찾았다

   언니는 언니를 설득했다 언니는 언니에게 한 번만 더

   언니를 구하자고 했다

   싸움을 시작하자고 했다 언니는 투쟁이었다

   언니는 지금이었다

1935 ─ 경성


김도경


2024

시, 64행에 541자. 무한함이 언니의 세상이다. 언니는 넘쳐흐를 것이다.


   1935
   ─ 도시의 산책자
  
   

   베를린을 걷듯이 경성을 걷는다 도시의 내부를 걷는 것은 외부를 걷는 것과 같다

   불빛과 검열
   그 사이를 걷는 것과

   지금과 절정
   그 사이를 걷는 것과

   걷고
   또 걸으면

   미래였다
   미래를 닮은 도시였다 경성을 잊어도 될까

   경성을 잊을 수 있을까
   언니,
   당신을 잊어도

   언니,
   당신의 목소리가 여전하다면

   나는 어떤 언술로 당신을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지 않아도 될까
   이 사이를 걷는 것이

   언니,
   당신을 걷는다고
   당신이 말하려 했던,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세계를 혼돈으로 만들어버리는 비밀이 있다고* 


   나의 내부를 걷는 것만으로도 외부로의 도달은 이루어진다고

   당신의 문장을 받아 적고 있다면
   언니,
   꽃이 쏟아지는 꿈과
   꽃을 밟으며 걷는 도시에서 느끼는 통증의 유사함을

   우리,
   사람이 사랑을 베어 먹으며 살던 시절을 기억하자 사랑을 베어 먹고
   사랑처럼
   웃었던
   사랑처럼
   발음했던

   우리,
   도시를 걷자
   약속은 잊지 않았고 만날 때 가져오기로 한 시도 잊지 않았어
   언니,
   우리처럼
   그렇게 만나자
   그렇게 서로를 걸어내자
* 뮤리얼 루카이저의 시 「케테 콜비츠」에서 변용.

1935 ─ 도시의 산책자


김도경


2024

시, 52행에 373자. 언니, 당신의 목소리가 여전하다면.


김도경_프로필.png
김도경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instagram : @do_gyoung2
e-mail : basun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