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상온에서 무너지는 마음으로
 
신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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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옥, 『온』(창비, 2017)

   연한 세계를 돌보기


   시집에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온』(안미옥 지음, 창비 펴냄)의 마음은 어디에 놓여 있을까. 안미옥 시인의 이 시집은 그 마음을 꺼내 “상온”(「톱니」)에 놓아두고 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눈밭 위도 아니고 뜨거운 햇빛 아래도 아닌 ‘상온’이라는 온도는 우리에게 언뜻 안정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데, 시집을 읽으며 상온의 말을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 뜻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온도’이며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서서히 어떤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시구 속에서.


   아주 작은 연함,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태어나기 전에」 부분


   멈춰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의 마음을

   조금 알고 있다


   ―「아이에게」 부분

 

   부드러운 우유와 설탕이 녹을 수 있는 온도

   한순간을 태워버리지 않는 용기로

   굳은 식빵을 끓여 먹는 요리법


   ―「굳은 식빵을 끓여 먹는 요리법」 부분

 

   상온에 있는 것들은 간혹 “멈춰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의 마음”이 깨지기도 한다. 다만 이때의 온도는 너무 연해서 겨우 “부드러운 우유와 설탕” 정도만 녹일 수 있다. 상온은 음식을 펄펄 끓게 할 수도 무언가를 바싹 태울 수도 없다. 그러나 시인은 억지로 불의 세기를 조절하지 않는다. 원하지도 않는다. 겨우 “부드러운 우유와 설탕”을 녹이는 “아주 작은” 불씨가 천천히 세계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공들여 관찰할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둔 채 상온에서 일어나는 미미한 움직임들을 오래도록 응원한다.

   시인은 이처럼 어떤 현상의 변화 과정을 임의적으로 빠르게 조절하지도 느리게 조절하지도 않는다. 그랬다간 “한순간을 태워”버리거나 “멈춰 있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녹이려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온도에서 오랜 시간 천천히 녹여야 하는 것처럼, 시인은 연약한 세계와 똑같은 온도로 호흡하면서 그 대상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관찰한다. 이러한 있는 그대로의 지켜보기, 응원하기, 되어보기는 우리로 하여금 연약한 세계에 몰입하게 하고, 연한 것들을 돌아보게 하고, 때로 거짓 없이 진실하게 만든다. 그 진실함은 거짓 마음을 녹여 무너뜨리듯, “굳은 식빵”을 “태워버리지 않”고 “끓여”서 따듯하게 먹는 듯한 온도로 다가온다.



   상해가는 것들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상한 마음도 다시 꺼내볼 수 있을까

   도마 위에 방치된 생선이나

   상온에 오래 놔둔 두부처럼

   상한 것은 따뜻하고

   상한 것은 부드럽게 부서진다

 

   ―「톱니」 부분


   나는 없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다


   무너지고 있는 집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온 천국3」 부분


   우리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있었다. 아무렇게나 여름을 건너려는 사람들과 있었다. 무너지고 있는 집 안에 들어가 깨진 물건들을 함부로 만졌다. 아무것이나 붙잡고 매달리고 싶어 하는 두 팔. 습기와 슬픔이 구별되지 않는 팔월. 매일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 있었다. 튀어오르지 못하는 공은 구르다가도 멈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기도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마지막은 늘 그렇게 끝났다.


   ―「빛의 역할」 부분


   썩은 나무토막을 들추면 연한 살갗의 애벌레들을 볼 수 있다


   ―「식물표본집」 부분


   ‘연한 세계’는 상온에서 조금씩 상해간다. 그런 게 싫다면, 쉽게 상할 수 있는 생선과 두부 같은 마음을 냉장고 안에 보관해야 할까? 시인은 상해가는 것을 다시 회복시키지도, 냉장고에 얼려놓지도 않는다. 자연(신)이 하는 일을 시인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떤 존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며 슬픔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막을 수 없는 소멸 앞에서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무너지고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어 함께 무너져본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직접 환자가 되어보고 환자와 함께 병을 앓으며 그 상태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 우리로 하여금 ‘연한 세계’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무너져가는 것이 된다고 여기며 그것을 체험한다고 해서 그 대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무너지지 못한 몸으로 “무너지고 있는 집”에서 “깨진 물건들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무것이나 붙잡고 매달리”는 모습은, 무너지고 있는 존재의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몸부림을 치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집 앞에서, 시인은 “자기 기도에 얽매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무너지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지만, 소멸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시인은 소멸을 ‘무너지다’, ‘허물다’, ‘뭉개진다’, ‘흘러내린다’ 등의 동사로 표현한다. 그 말들은 분명 ‘깨지다’, ‘터지다’, ‘폭발하다’와는 다른 힘을 가진다. 커다랗고 순간적인 힘에 의한 소멸은 무너지는 대상을 “또렷하게 볼 수”없고, 아픔을 충분히 “나누어 가질 수 없다”(「식탁에서」). 때문에 시인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부서지기 위해, 연하고 세밀한 방식으로서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물을 견디고 있는 모래벽”(「거미」)이 서서히 허물어지듯이 말이다. 부드럽게 부서진 잔해 속에는 “연한 살갗의 애벌레들”(「식물표본집」)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슬픔 작용과 슬픔 반작용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르면 어떤 물체를 밀어낼 때(작용) 그 물체도 내가 미는 만큼 동일한 힘으로 나를 반대 방향으로 밀게 된다(반작용). 즉, 두 물체 사이의 힘은 한 방향으로만 일어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체 A와 B가 상호작용하여 그 효과가 물체 A에 작용한 힘으로 나타났다면, 반드시 물체 B에도 동시에 그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복싱 선수가 상대방을 가격하면 상대방이 받은 힘만큼의 에너지가 자신의 손에도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안미옥 시인의 시를 관장하고 있는 힘은 바로 작용과 반작용, 정확히 말하자면 ‘슬픔 작용과 슬픔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새가 울면

   또다른 새가 울었다

 

   ―「톱니」 부분


   네가 먼저 잠들고, 내가 잠들지 못할 때

   불 꺼진 자리에 내가 앉아 있어야 할 때

 

   ―「비정」 부분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불 꺼진 고백」 부분


   우리가 자주 하던 말

   우리가 자주 듣던 말


   ―「파고」 부분


   “주저앉을 마음” 반대편에 “쌓아올린 마음”이 있고 “네가 먼저 잠들”면 반대로 “내가 잠들지 못”한다. “우리가 자주 하던 말”이 있으면 “우리가 자주 듣던 말”도 존재하게 된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대편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작용의 부산물로 반작용을 홀대하지 않고 작용의 동일한 힘으로 체감한다. 힘의 방향은 다르지만 하나의 힘에서 함께 태어났으므로, 반작용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시인은 반대편에 있는 자신까지 끌어안는다. 다리가 지구를 밀고 이 반작용으로 지구도 다리를 밀어내야 우리가 걸을 수 있듯이, 안미옥 시인의 시는 ‘슬픔 작용과 슬픔 반작용’을 통해 자기 자신 또는 타자에게 다가간다.

   ‘슬픔 작용과 슬픔 반작용’은 물론 과학적인 법칙이 적용되기 어려운 마음의 세계이다. 그래서 슬픔 작용의 에너지는 무조건 반대로만 향하지는 않는다. “새가 울면 / 또다른 새가” 같이 울어주는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두 힘이 겹치기도 하고 “예민한 한사람과 무신경한 한사람 /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치료자들」)는 모습처럼, 그 어떤 운동도 일으키지 않기도 한다.

   시인은 어째서 반대편을 떠올릴까? 심지어 자신이 반대편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쪽으로 나아가보기도 한다. 시인은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라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A라는 물체가 작용하기 위해선 작용을 받아주는 물체 B가 필요하다’로 해석할 수 있겠다. 풀어 말한다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나도 너를 버텨주고 너도 나를 버텨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좋은 어른이 되기까지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한 사람이 있는 정오」 부분


   연결은 끊을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내게는 외면하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도망치는 발에게서 조금 더 멀어지려고

 

   차가움은 가파르고

   흉터에서 출발하려는 마음


   나는 그저 내게 좋은 일을 해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양이는 눈을 피하는 법이 없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려고 할 때


   나는 숨을 참는 얼굴이 된다


   ―「거미」 부분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다른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못 되었다. (…) 결국엔 함께하는 일, 나는 함께 살고 싶다.


   ― 시인의 말 부분


   추측하건대, 시인은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 “외면하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시인은 행복한 혼자보다 덜 행복한 우리를 택한다. 시집 속에서 시인은 전반적으로 어린 화자를 내세운다. 한 아이는 다른 아이와 함께한다. 이 아이들은 “무너지는 마음”(「톱니」) 안에 있거나 “슬픈 표정을 숨길 줄”(「적재량」)도 알아서 날카로운 세계에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가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이 시집을 쓰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말이 ‘진짜 마음과 진짜 마음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진짜 마음이 진짜로 원하는 것, 그것은 “흉터에서 출발”하여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또, 함께 상처받는 일이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으로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다친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어른이라면 마땅히 내어줄 줄 아는, “진짜 마음”이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온에서 무너지는 마음으로

신헤아림

2023
서평, 16문단에 3,668자. 좋은 어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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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헤아림

문학동인 공통점의 리더. 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