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사랑과 용기
― ‘위르트에서’1)
 
김원경

   Intro. 내 모든 첫사랑은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시작돼
   
   어느 오후, 카페에 앉아 내가 수집한 모든 ‘첫’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가장 강렬한 기억은 사랑뿐이어서, 다른 모든 처음은 잊고 만다. 그러나 최초의 사랑을 첫사랑이라 명명하기에 그건 놀이에 가까웠고, 제법 사랑했던 사람들 중 누굴 가장 많이 사랑했는지를 헤아려 단 한 명을 꼽는 일도 어렵다. 기억을 되살려 맨 앞까지 가 본 뒤에야 모든 처음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내 모든 첫사랑은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시작되었다.
   햇살이 쏟아지던 미술실에서 마주친 그 애⑴. 미술실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 나는 미술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미술실에 남아 뒷정리 중이다. 그 애가 갑자기 내게 “이거 쓸 거야?”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 애의 얼굴에서 빛이 나서 그럴 수 없다.
   다음은 햇살이 쏟아지는 시끄러운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마주친 그 애⑵를 본 순간 모든 소리가 귀에서 멀어진다.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 애를 본다. 그 걸음마다 탁, 탁, 무언가가 내 마음에 정확하게 내리꽂힌다. 한동안 나는 급식실에만 가면 눈으로 그 애를 따라다닌다.
   한편 그때 그 애⑶는 종례 시간에 전학 선언을 한다. 순간 교실의 웅성거림이 멈추고, 햇살을 뿜어내는 듯한 그 애의 피부와 콧날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방금 내 마음을 어딘가에 떨어트린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 애는 서둘러 교실을 떠나고 만다.
   아마 여기부터가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애⑷와 나는 온라인 친구였는데, 역시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오후에 만나기로 한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통화를 하며 인상착의를 설명하다가 ‘나 보여?’라고 묻는 그 애. 이쯤에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애가 나타난다. 눈앞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바람이 조금 부는 한낮이고, 흩날리는 우리의 머리카락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우리는 카페에 간다.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그 애가 내 손을 보더니 춥냐고 묻는다. 나는 춥다고, 아니 춥지 않다고 대답한다. 춥지만 땀이 나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날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 나는 일부러 손을 그 애 쪽에 둔다. 그 애가 내 손을 잡는다. ‘차갑잖아.’ 차갑지만 땀은 흐른다. 그 애는 내 손을 놓는 대신 붙잡고 입김을 불어 준다. 그 영화는 아마 둘 중 한 명만 제대로 봤거나, 둘 다 제대로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애를 만나지 않는 날에는 메일을 쓴다. 내가 하루 동안 겪은 지루하고 즐겁고 슬프고 기쁜 일들에 대해 늘어놓는다. 우리는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지런히 답장을 보낸다. 각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영화와 책을 공유하고, 각종 대사와 구절을 인용해가며 대화를 한다.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 같은 걸 지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은어로 가득 찬다. 그러니까 사랑 같은 걸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차갑고 축축한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의 손을 놓는다.
   그 사이의 생략된 과정을 돌이켜 보는 사이 내 첫사랑(들)이 커피를 한 잔만 시켜둔 테이블 앞에 앉아 머쓱한 표정을 하고선 잠시 앉아 있었던 것도 같다. 이제는 전혀 떨지 않는 건조한 내 손도 보았을까. 첫사랑을 가득 실은 채 제멋대로 항해를 이어가던 상상의 배가 산으로 갈 즈음 종종 다시 보는 단편 영화를 생각해낸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이 글의 제목은 < 사랑과 용기 >로 정해야만 한다는 계시 같은 것이, 내 안에 들어와 박힌다.


   Ⅰ. 사랑을 부추기는 용기

   회상의 첫 장면은 열린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의 교실에서 시작된다. 모두 학교를 빠져나간 교실의 책상 위엔 의자들이 엎어져 있다. 그러나 서윤과 윤서가 앉아 있는 의자만큼은 그렇지 않은데, 이는 두 사람이 오늘 본 모의고사 국어 시험지를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교실에 남았기 때문일 테다. 윤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왜 이 사람 손이 숲속에 있는 거냐고?
   윤서는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속에 있’다는 시구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서윤은 시험지에 왼손을 짚고, 오른손으로 밑줄을 그어 가며 열심히 설명을 덧붙인다. 그 순간 서윤의 말은 그저 소리일 뿐이다. 대개 이런 순간에는 그댈 만지고 싶은 누군가의 손이 왜 숲속에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의 손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그 감각이 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해석은 지연되고 서윤의 다섯 손가락만이 눈에 들어온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서윤의 손을 붙잡는 윤서, 드디어 그 의미를 이해한 걸까?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속에 있어.’2)
 
   문득 그댈 만지고 싶은 마음에도 물성이 있다면 거기에 손을 댔을 때 온몸이 찌릿할 수도 있겠다. 그걸 입에 넣거나 삼킬 수 있다면…, 그러나 아무리 삼켜도 허기를 채우지는 못하리라. 그 마음은 무척 투명해서 눈앞에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마음을 먼저 포착한 사람은 윤서 쪽인 것 같다. ‘남의 속도 모르고.’라고 중얼거리는 윤서, 책상 위에 엎어진 의자들을 바라보며 ‘의자, 자의…’라고 중얼거리다 이제부터 엎어진 의자는 ‘타의’라고 부르자는 서윤.
   서윤은 윤서의 용기에 응한 걸까? 엎어진 의자를 타의라고 부르기로 약속하는 순간 둘 사이에 첫 언어가 심어진 셈이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생략된 어떤 순간에 윤서는 사랑을 부추길 만한 용기를 더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중요한 건 윤서의 사랑이 이미 시작되었고, 서툴지만 ‘그댈 만지고 싶’은 마음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 마음에 들어와 박힌 것은 용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랑이었을 것이고, 그가 보여준 것은 상대로 하여금 사랑을 부추길 만한 용기였을 테다.
   이때부터 둘의 사이에는 타의로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된다. 그것은 마음 혹은 언어, 어쩌면 이들에게 마음과 언어는 동의어일 수도 있겠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언어의 땅을 부지런히 일구어 나간다. 우연히 발견된 그 세계에는 타인이 알아들을 수는 있겠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언어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다.
 

   Ⅱ. 용기를 부추기는 사랑
 
   윤서를 ‘서윤!’이라고 부르며 도예실에 들어온 서윤은 가져온 책의 구절을 읽기 시작한다.
 
   ‘지난밤 나는 절망했다. 내 언어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지만 내 사랑은 언어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모든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하지만 정확히 지금 나와 동일한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3)
 
   서윤이 이 구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직접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듣지만, 그 말에 담긴 마음은 너만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둘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만다. 그 사랑을 뒤엎을 만한 타의가 작용한 탓이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들판에서 만나는 두 사람. 윤서는 타의를 뒤집어 자의로 만든 뒤 서윤 앞에 앉는다. 남들이 하는 말은 다 소리라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만 보라며 윤서를 설득하는 서윤. 내게는 다 중요하다고 비아냥거리는 윤서. 둘 사이에는 어떤 인력과 척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서로를 밀어내야만 한다는 의식이 추동하는 척력, 그럼에도 상대를 향해 속수무책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강한 인력. 그 힘들이 뒤엉켜 둘을 서로에게서 떼어 놓았다가 다시 서로에게로 충돌시켰다가 한다. 매 순간 정신이 아찔할 것이다. 평생을 두고 돌이켜보게 될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을 견디고 있으므로.
   마지막까지도 서윤은 용기를 내지만, 윤서는 그 용기를 애써 사양한다. 이때 서윤이 내뱉는 말은 용기를 부추기는 사랑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 용기를 내자고, 정말 중요한 의미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러나 윤서의 용기는 다른 방향을 향했는지 눈물이 매달린 눈동자로 ‘쌩까!’라고 소리치고 만다. 순전히 자의는 아닐 것이다. 그댈 만지고 싶은 윤서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outro. 사랑과 용기의 뒤척임을 견디며
 
   다시, 들판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윤서는 잠시 왼손을 들어 서윤의 오른뺨에 갖다 대는 상상에 빠진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4)던 문장이 떠오른다. 그러나 버티듯 무릎 위에 얹은 자신의 두 손을 만지며 그 마음을 참을 수밖에 없는 윤서. 이때 산울림의 ‘더.더.더’5)가 흐른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뒤집어 부르며 기꺼이 서로가 되어 보려던 일을 그만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서로를 향한 참을 수 없는 마음을 참아버리고 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기 위한 움직임 같기도 하다. 함께 구축한 세계를 이제 더는 돌보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속삭여 주세요 들릴듯 말듯 그 말을 더.더.더
   그냥 앉아 있어요 지금 만난 것처럼 조금만 더.더.더’6)
 
   음악과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이제 사랑과 용기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때다. 사랑과 용기의 종잡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해 줄곧 고민했으나 그 둘은 서로의 이름을 뒤집어 불러도 좋을 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사랑을 부추기는 용기가 먼저이든, 용기를 부추기는 사랑이 먼저이든, 그 순서 따위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한껏 머무르던 세계를 찢고 어디론가 나아갔을까? 그곳은 어디일까.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이 어디든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차라리 본래의 세계를 찢고 더 큰 세계로 옮겨가기 위한 용기에 가깝다. 애초에 그들은 서로의 손을 붙잡았기 때문에, 혹은 놓아버렸기 때문에 자기를 품고 있는 줄도 몰랐던 더 큰 세계를 경험했을 테니까.
   견고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던 세계를 찢고 나갈 용기,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갈 수 있는 사랑, 그리고 공들여 건설한 세계를 다시 찢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우리의 깊은 곳에서 사랑과 용기는 서로를 향해 무궁한 뒤척임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다시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랑과 용기가 계속되기를.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잡아보는 일은 아직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놓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1) 허성완, ‘위르트에서(2016)’
2) 황병승, ‘여장 남자 시코쿠’, 「여장 남자 시코쿠」
3)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4) 유희경, ‘내일, 내일’, 「오늘 아침 단어」
5) 산울림 – 더.더.더
6) 앞의 노래

사랑과 용기

김원경

2022
산문, 34문단에 3,856자. 평생을 두고 돌이켜보게 될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을 견디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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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경

뜨개질을 하면서 글쓰기를 생각한다. 새 목표는 페어아일 스웨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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