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日課)

    

   

   

   나는 하늘색 니트를 입은 아가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누군가가 돌돌 말아둔 종이를

   반듯하게 펼치는 일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과습으로 죽어가는 아마릴리스를

   살피고 있어

   

   침대맡 창문에 거미줄을 치는

   집유령거미 한 마리를 관찰하다가

   나 가끔 어제는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해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손수건과 남천나무 열매를 양손에 나란히 쥐고

   무각사의 작은 마당을 거닐지

   이곳엔 내 엉덩이보다도 작은 벤치가 있거든

   그 아래로 기어가는 아주 작은 콩벌레

   그래 그래 자세히 보면 다 살아 있는 것들이야

   

   산다는 건 자유자재로 기분을 휘두르다가도

   우뚝 서서 좌우를 살피는 일이라고

   무각사 앞에 방을 짓고 사는 귀신이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알려주었어

   나는 귀 기울이지 않는 척을 하느라

   니트에 붙은 보풀을 떼어내 동그랗게 굴렸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손도 씻지 않고

   아마릴리스를 쓰다듬고 있어

   어제보다 조금 더 죽은 것 같은 기분

   그럴 때는 내 옆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한 사람을 깨워

   

   내가 사랑하는 것들 도로 다 살려내

   내가 사랑하는 것들 그대로 다 살려내

   

   소리친 다음 침대에 철푸덕 누워서 잠을 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야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더 커지는 코 고는 소리와

   그때 내 얼굴 위로 기어가는 집유령거미

   나선을 그리며 이마에서 턱으로 미끄러지는


일과(日課)


김조라


2025

시, 33행에 491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도로 다 살려내…!


   빈 둥지

 


   

   어린 아이들은 어쩜

   높은 곳에서도 폴짝 뛰어내릴까

   햇살은 깔깔거리고 구름은

   손톱 자라는 속도로 몰려오네

   

   꼬마물떼새는 자갈밭에 알을 낳고

   조약돌 같은 알이 귀엽기도 하지

   나는 얼렁뚱땅 지은 빈 둥지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이밀고

   무엇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상록수 같은 걸 보고 있으면

   서글퍼졌다 슬퍼할 일 하나 없이

   매일매일 푸르른 나무가 미워서

   여름 갈대밭에 숨어 눈물을 찔끔

   난 억새보다 갈대가 좋더라

   갈대는 습지에서 자라니까

   

   축축한 마음으로도

   알을 생성할 수 있나 아니면

   가볍게 상승할 수 있나

   

   폭포 앞에서 개구리 두 마리에게

   폴짝하는 법을 전수받다가

   튀어 오른 물방울에 얼굴이 쫄딱 젖었다

   발바닥에 달라붙은 갈대풀과

   몰려온 구름

   개구리 두 마리는 도망가고 없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목표를 폭포로 잘못 읽음

   

   쏴아아아 비가 쏟아진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나는 빈 둥지가 걱정돼

   우산도 없이 뛰쳐나간다

   

   마치 깨질 만한 것이

   그 안에 있다는 듯이


빈 둥지


김조라


2025

시, 32행, 354자. 우산도 없이 뛰쳐나가 확인한 빈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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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라

시와 짧은 소설을 쓴다. 효천로를 지날 때 임암교에 서서 대촌천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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