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이야기 속 인물이 사랑스러워서
밤새 그가 나오는 장면을 읽고 또 읽었어
그는 분명 내가 쓴 이야기 속
내가 쓴 묘사로 만들어낸 인물이었는데
어쩐지 그가 나를 조물처럼 위로하고 있더군
내가 듣고 싶던 말을 정확하게
그가 건네고 있더군
내가 반복해서 읽는 장면 속에서
새벽 눈길을 닦고 찻물 끓이기를 반복하는 그
생각해보니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어
언제나 삼인칭 대명사로 불리고 있었지
그를 지나치는 행인에게도
철새와 겨울나무와 눈 내리는 거리에게도
적막한 삼인칭 속에서 이름 없는 그가
찻잔을 감싸 쥐고 눈 내리는 밖을 보고 있었어
내가 그를 겁이 많고 유약한 외톨이라 썼기 때문일까?
그는 겁이 많고 유약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었어
마른기침을 뱉으며 홀로 눈길을 걸어갔지
이대로라면 그가 쓸쓸히 지워져야만 하는
이야기가 되었기에
복선을 지우고 개연성을 부수며 그를 살렸어
그는 사실 누구보다 단단하고
다정하다고
그러니 살아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들려달라고
그는 끄덕이며 내가 듣고 싶던 말을 했어
너는 사실 누구보다 단단하고
다정하단다
그러니 살아서 네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렴
그건 분명 내가 쓴 이야기 속
내가 만든 인물이 건네는 말이었는데
마침내 주인의 응답을 마주 듣는 조물처럼
그 장면을 읽고 또 읽었어
그 장면 속에서 올겨울을 보냈어
새소리 같은 삼인칭을 느끼며 손엔 찻잔을 쥐고서
눈을 맞는 나무와 행인들을 바라보면서
삼인칭 소설
조온윤
2025
시, 45행에 520자. 적막한 삼인칭 속에서 보낸 겨울.
첫울음을 터뜨린 나에게 그가 말했지
라훌라!*
그때부터 나의 삶은
거꾸로도 똑같은 이름이 되었어
생일 다음에 일생이 시작되던가?
한 글자 더, 생과 생 사이에는 고(苦)가 끼어 있네
울음과 음울은 순서를 바꾸며 찾아오고
때로 웃음 뒤에 쓴웃음이 새치기해도 눈치채지 못했어
이대로 눈감은 채로 있고 싶어
일몰이 오기 전 모든 시간은 몰일이었지
세상의 행불행을 죄다 모아 반으로 나누면
나는 몇 글자를 가지게 될까?
절반만 괴롭게 살고 싶어, 일주일을 가르면 며칠이 될까?
그런 물음 속에서 속절없이 일백일, 일천일이 흘러가
똑같아 보이는 나날의 반복 속에서
서정과 정서가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표정 같다는 걸
이별과 별리가 가끔은 다른 뜻처럼 읽힌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돼
행과 복, 비와 애, 씀과 삶, 너무 커다란 한 글자는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나의 기일은 일기에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자비로운 신에게 허락을 구해
거꾸로 돌아가
첫 행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첫울음을 터뜨린 그에게
내가 말했지
야 이 삶은 좋은 삶이야
* 싯다르타의 아들로, 그가 태어날 때 싯다르타가 ‘장해물’이라는 뜻으로 탄식한 말에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회문의 자서전
조온윤
2025
시, 34행에 384자. 야 이 삶은 좋은 삶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