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졸업식과 꽃다발
 
김나연

   오늘은 조선대학교의 졸업식이 진행된 것 같다. 확신이 아닌 추측인 이유는 졸업식 현장에 간 건 아니고, 검은 코트를 입은 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가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들을 버스 안에서, 카페로 가는 길목에서 차례차례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울음이 터져 나온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왜일까? 졸업식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행사가 되었는데. 왜 꽃다발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걷는 졸업생들을 보니 눈물이 나오는 걸까. 그러다 곧 깨달았다.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꽃다발을 든 나. 한껏 들뜬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단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 날만 좋았지 그 이후로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다음에 있었던 일,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이 원인이 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울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확신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절망하기도 했다. 아, 나는 아직도 그 일에 사로잡혀 있구나.

   졸업할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 채, 오늘 낮에 보았던 학생들처럼 해맑게 웃으며 축하를 받았다. 동기들과 함께할 여행을 계획하며 즐거워했다. 광주로 내려갈까, 그래도 네 졸업식인데, 라는 내용의 전화가 머릿속에 잠깐 떠올랐지만 금방 사라졌다. 안 와도 돼요, 괜찮아요, 다른 애들 부모님도 다 안 와요, 나는 약간의 감정을 섞어서 대답했다. 다른 졸업식에도 안 왔으면서 갑자기? 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연례행사일 뿐이고, 엄마가 오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어차피 여행 끝나고 집에서 볼 건데 뭐.

   졸업식이 끝난 뒤, 친구들과 질펀하게 논 다음 곧장 강릉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엄마가 죽었다.

 

   다른 내용의 에세이를 쓰고 싶어도, 내 인생은 엄마로 가득 차 있어서 그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내 성격, 삶에 대한 태도, 가치관, 사소한 성향 같은 것 모두 그녀로 인해 만들어졌다. 나는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것에 불과했다. 칠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용인에 간 것도 아니고, 겨우 졸업식 꽃다발을 봤을 뿐인데. 축하의 증표가 내게는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웃기기만 하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후회로 가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게 과거란 후회와 증오뿐이다. 사랑은 그 사이에 낀 아주 작은 틈에 불과하다. 증오와 후회를 사랑이 이어준다. 사랑이 없다면 나는 그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괴로워하기만 하다가 생을 마쳤을 것이다. 때로는 후회-증오가 되기도 하고, 증오-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엄마가 그렇듯이.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죄다 뒤죽박죽이다. 어떤 글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고, 또 어떤 글은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살면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니까.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돌이켜보면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그건 엄마의 행동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냐에 달린 것 같다. 그래, 중요한 건 그거다. 타인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방식. 방식에 따라 내 태도나 가치관이 긍정적으로 될 수도, 부정적으로 될 수도 있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에세이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졸업식 꽃다발을 봐도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 세상에 없고 꽃다발은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 남게 되었다.

   나는 현재를 경험하며 과거를 떠올린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바이러스처럼, 아주 티끌 같은 공통점이라면 그게 뭐든 득달같이 달려든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로만 엄마를 기억할 수밖에 없으니까. 함께 살았던 집, 나누었던 대화, 겪었던 사건들은 더 이상 현재로 불러올 수 없다.

   보통 기억은 공통된 물건들로 재현된다. 이를테면 꽃다발이나 강릉 같은 것이다. 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개중에는 나를 웃게 만드는 물건도 있지만 울게 만드는 물건도 있다. 그런 것들을 취사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만 엄마를 기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졸업식과 꽃다발

김나연

2025
에세이, 12문단에 1,615자. 졸업 축하해.

김나연

광주에서 소설과 시를 쓰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아직도) 기초 체력 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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