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느티나무가 흔들리고 있다
잔치나 기념할 만한 일
아님 고충 생겼을 때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아래 모이곤 했다
저기에 모입시다
누가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두,
큰 느티나무에는 큰 영혼이 있을 것 같구
조상신님
가만히 그늘에 멈춰 있어도
물결과 같이 일렁이던 잎들이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도다
비가 진노하는 날에는
푸르게 젖어가는
날이면
기도를 드리면
해 뜰 날 오구,
하다 보면
하다 보면
큰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서
잘 될 것만 같은
물결과 같이 일렁이던 잎들
희망은 엎드려 절 받기로다
풍속(風俗)
김병관
2026
시, 28행에 203자. 엎드려서 절로 받은 희망.
신선의 제자는 고행길에 오르다
덜떨어진 사내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마을 대장간에서 일한다는 이
혹, 깨달음에 도움이 될까 하여
오랜만에 요깃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소면을 들러 객잔에 들른 것이다
신선의 제자는 점소이를 부르는 겸
거, 조금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던데 저기 대장간에 말일세
슬며시 물어보았는데
큼큼, 점소이가 비루한 주문을 되뇌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면 하나 시켜놓구, 궁금한 게 있으시다네에~
신선의 제자는 잊었던 속세가 하나 하고도 여럿
이전의 날들이 벼락 맞은 듯 떠오르니
시킨 음식과 술로 처지가 결정되는
객잔의 문화로다
얼굴이 화끈거려 신선의 제자는 재빨리,
금존청(金尊淸) 하나 주시게
그리고 점소이, 음식은 이 객잔에서 제일 비싼 거로 하지
말하니, 점소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객잔 이곳저곳 다 들리게 큰소리로 주문을 외치었다
여기 어향동고(魚香冬菇) 하나! 금존청 하나!
그러고는 옆에 착 붙어 설핏 웃어 보이는 거 아니겠나
기분이 좋은 점소이는
덜떨어진 사내에 대하여 잘 안다는 듯,
술술 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어째 밥상머리 앞에서도 그러습죠
대장간에서도 그렇구, 움직일 때도 그렇구
세상에 대해 항시 파들파들 떠는 사내지요
아, 저번에는 객잔에 한 번 들렀는디
글쎄!
그날 역시 덜덜 떨면서
만두를 들면서도 덜덜
손을 덜덜덜덜
후두둑 피 안에 있는 배추, 부추, 당면이 다 떨어지더랩죠
떼잉 쯧,
일행도 없어 혀를 끌끌 차며 먹여주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잉?
회화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합디다
얘기를 들으며 신선의 제자는
어향동고와 금존청을 음미한다
버섯의 향이 입안에 가득 감도는 것과
이를 은은하게 씻겨주는 술의 궁합이 참 좋구나!
달밤에는 대장간을 방문하였다
덜떨어진 사내가 접객을 위한 것인지 앞에 쭈뼛 서 있길래
물건을 고르는 척하다
이것은 얼마요?
칼을 들어 보이니
흐익!
소리 내며 제자리에서 덜덜덜덜 떨다
대장간에서 벗어나는 거 아니겠는가
신선의 제자는 아,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꼬
뒷모습을 보며 사내가 걱정되기도 하는 한편
이상하고 이상하다
무엇이?
왜 자신은 그를 낮잡아 생각하는가?
가엽다는 마음은……
사내는 혼자 뛰다 넘어져 제 무릎을 쓸고 있다
쓸어 담고 있다
아파하는데
아무리 그리 생각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보여지는 것
무엇이 그러하거나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공(空)이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신선의 제자는 모르니……
골몰하는 동안 달이 참 청명하였다
* 동양화의 기법 중 하나. 어스름한 구름을 그려 저절로 달이 드러나게 하다.
홍운탁월(烘雲托月)
김병관
2025
시, 63행에 890자. 여기 어향동고 하나! 금존청 하나! 청명한 달빛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