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은
김도경: 대학교 소모임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저희가 해온 활동들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동인시집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를 출간하며 여러 사람에게 격려를 받기도, 대학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공통점이 타 문학 동인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사실 문학 지면의 부족함으로 모이게 되었으니까요. 등단과 비등단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 지면을 만드는 일이 시작점이었어요. 독립문학잡지가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하죠. 우리만의 실험적인 활동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시 낭독이 지니는 예술로서의 가치, 시와 미술 작품을 연결하는 작업, 온라인 작품 전시(문장을 클릭하면 다음 시로 이어지는) 등 독립문학이기에 해낼 수 있었던 창의적인 실현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공통점 동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이 ‘기존의 문학적 틀에서 벗어난 독립문학 활동을 한다는 것’으로도 느껴져요. 그리고 우리들이 계속해온 활동들이 누군가의 새로운 도전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도 믿고 있어요. 우리 역시 여러 독립문학잡지에 자극을 받으며 작업을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이런 흐름이 지속되길 바라요. 물론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는 일도 값어치가 있겠지만 자기만의 형식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 역시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게는 동인 활동이 기존의 문학적 발화와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목소리를 발현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조온윤: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작은 결정을 내리는 데도 모두의 의견을 모으고 때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열띠게 논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함께 걷는 사람과 발을 맞추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이인삼각처럼요. 아니, 우리는 모두 열한 사람이니 십일인십이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 사람뿐이라 해도 보조가 어긋나는 순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텐데, 하물며 열한 사람이 방향과 호흡을 맞추며 한 걸음씩 내디디는 이 과정들이 순탄할 리는 없습니다. 함께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문학을 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하나같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익숙한 이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사람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두기란 필연적으로 실패로 향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동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우리는 늘 느슨한 연대라든지, 주변을 살피는 세심함이라든지, 듣고 보면 고갤 끄덕이게 되는 당연한 덕목들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보다는 또 하나, 서로를 견딜 줄 아는 인내가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저는 온통 비협조적이고 자기주장만 강한 문우들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함께해왔다고 여기며 제 인내심을 스스로 높이 사곤 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들도 그 시간 속에서 자꾸만 자신을 예속하고 차이점 대신 공통점만을 강조하는 저를 견디며 곁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지난 십여 년간 동인들과 가장 많은 다툼을 일으킨 사람은 저입니다. 평소 저의 과묵하고 소심한 성정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제 속 깊은 곳에는 고집 센 외골수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고집쟁이는 무슨 일이든 제 마음에 차지 않으면 직접 손을 대야 직성이 풀리는, 알고 보면 본인이 그 누구보다 비협조적이고 자기주장만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속을 아는 가까운 친구일수록 다툼이 잦을 수밖에요. 다행이라면, 가장 최근에 있었던 다툼은 바로 이런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십일인십이각은 속도를 내는 것보다 생각의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고서 어서들 오라고 옆 사람들을 채근하고 있었던 거죠.
십 주년을 맞아 첫 동인시집도 펴냈겠다, 이어질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 시간에 저는 왜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성하고 있는 걸까요. 동인의 미래를 전망하려면 외려 동인의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떤 길을 왔는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는 공동체는―그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는 해도―왜 그곳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동력과 자각을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물론 이 공통점 동인도 여느 공동체처럼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도 압니다. 문학사 속 수많은 동인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나이를 먹어서, 다른 길로 전향해서, 서로 크게 다투어서, 혹은 평안 속의 자연사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흩어지게 될 테죠.
이 미래의 어딘가에 끝이 있다는 걸 알기에 저는 동인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혼자가 아닌 여럿으로, 개인이 아닌 동인으로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뜻이 같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주어지는 지면이 없다면 세상에 내보일 지면을 스스로 만들고, 서로의 문학을 따라 읽고 생각을 나누며, 각자가 만들어가는 세계를 응원하는 일들을 계속해볼 예정입니다. 십 년 전 문학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 십 년 뒤에도 함께하자고 말하던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서요.
그러므로 문학동인 공통점은 앞으로도 다 같이, 더 멀리 가기 위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오롯이 혼자였다면 어딘가에 지쳐 멈추었을지도 모를 문학의 길에서, 언제든 옆을 보면 나란하게 걸음을 맞추고 있는 문우가 되어주면서요. 언젠가, 공통점이란 이름이 옅어지고 문학으로 같은 통점이 되어보겠다는 우리의 노력이 결국 실패라고 불릴지라도, 그날이 오늘은 아닐 겁니다.
광주라는 연결점
이서영: 문학동인 공통점은 광주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저마다의 삶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로컬과 일상의 조건에 뿌리내리면서도 이 네트워크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제게 여러모로 특별한 상황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특정한 시기가 끝나고 난 이후에, 혹은 공통된 장소를 떠나고 난 이후에야 또렷해지는 관계의 조건, 혹은 감각이란 무엇인지 자연히 생겨나는 물음들도 있으니까요. 결국 이런 질문은 시대 혹은 지정학적인 경계를 비롯하여, 다양한 조건을 넘어서 만날 수 있는 동료란 무엇인지, 그때 가능한 연대와 공감을 개인의 문학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시도와도 맞닿아있을 것입니다.
초기 멤버들이 광주에서 공통된 작가 형성 경험을 가졌다는 것도 이 모임의 성질과 방향성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요소일 것입니다. 지역에서 독립무크지를 발행하는 일로 파생되었던 공통점 동인이 이른바 주변부 감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각자의 문학과 삶 안에서 구조화하고 있는지, 무엇보다 작품 안에서 직접 살펴볼 필요도 있겠지요. 아울러 근래 자주 나오는 담론인 트랜스로컬리티의 개념을 단체 안에서, 혹은 개인의 상태 안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사실 시야말로 접촉과 연결을 가장 독창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장르인데, 시인들의 모임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네트워크는 얼마나 독창적인지 자문하는 것이야말로 핵심적인 일일 테니까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모하면서도, 각자 다른 삶을 살아내면서도 내 눈 바로 앞에 다가온 동료의 문장을 얼마나 깊게 체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 우리는 ‘우리’라는 주어를 얼마나 창의적인 방식으로 가동할 수 있는지 함께 묻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김조라: 미래… 라는 말을 생각하다가 저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과거로 돌아가야만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때의 미래가 지금이니까요. 저는 2010년에 광주에서 상경하여, 2015년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9년에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는 독립서점에서 일을 하며 시나 소설을 썼습니다. 혼자서 쓰다가 2024년에 공통점 동인이 되었어요. 서울에서 함께 글을 쓰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었고, 저도 독립서점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글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제가 공통점 동인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고요. 이렇게 과거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 지금의 제 미래가 되었습니다.
2025년에 문학동인 공통점이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대단히 무언가를 바꿔놓거나 엄청나게 특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존재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요. 이를 테면 촛불을 들고 제자리에 서 있는 일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저 멀리서 작은 촛불을 발견하고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 사람은 미래의 사람입니다. 미래에 올 사람.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미래에 끼어들 수 있는 것,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