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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밝은 쪽에 서 있기


만난 사람: 김보나(시인)

묻는 사람: 공통점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서 나눈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책으로,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활동을 시작해 ‘제1회 동행문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한 김보나 시인과의 대화를 기록해보았습니다.


Q. 김보나 시인님, 안녕하세요! 시인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활동을 시작한 김보나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처음으로 슈톨렌을 먹어봤습니다. 하얗고 폭신하면서도 상큼했어요. 생일 케이크 대신 받았는데 겨울에 태어나서 기쁘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었습니다. 참, 늘 키보드로 글을 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슈톨렌을 처음 드셨군요! 겨울과 참 잘 어울리는 빵이죠. 그나저나 만년필이라니,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거네요. 키보드로 쓴 시와 만년필로 쓴 시는 달라진 게 있을까요?

 

키보드로 쓸 때는 보다 길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드리는 느낌이 즐거우니까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느낌(보통 느낌으로만 끝남)이 든다고 할까요. 언제든 지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 파일이 많아져요. 활자로 표현된 글은 쓰는 동시에 퇴고를 하기가 용이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 쓰고 있는 글에 어울리지 않으면 없애고 다른 곳에 써야 하는데 지우긴 아쉬우니까 새 파일을 열어 쓰게 되죠. 만년필로 쓰는 시는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니까 한 호흡에 주로 한 문장이 허락됩니다. 키보드로 쓸 때보다 느려지고, 들숨과 날숨이 자연히 섞여 들어갑니다. 빠르게 써 내려가지 않으므로 문장과 다음 문장을 잇는 사이에 호흡과 사유, 망설임이 섞여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문장엔 취소선을 긋지만 그 문장은 여실히 남아 있으므로 퇴고할 땐 ‘이 문장은 그때 이런 느낌으로 썼군’ 식으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편하고요.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것…….(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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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나 시인의 필기구. 만년필은 워터맨의 ‘뉴 헤미스피어’.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주신 것을 쓰고 있다.

Q.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야말로 만년필의 가장 큰 역할이죠. 김보나 시인님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시를 쓰게 되신 건가요?

 

저는 교육학과를 전공으로 하고 국문학과를 복수전공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만난 국어 선생님이 제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늘 글쓰기에 대한 염원이 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모른 채 혼자 써 내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만난 국어 선생님은 저의 글쓰기를 모든 방식으로 응원해 주셨어요. 독후감을 적은 노트에는 인상적인 문장에 줄을 그으며 짧지 않은 답글을 손수 달아 주셨고, 몇몇 학생들과 교외 백일장을 데려가 주기도 하셨지요. “보나야, 넌 글을 써야 해.”라는 말을 육성으로 들었을 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자질을 자기 자신보다 먼저 알아보고 응원하는 사람이요.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대학에 갔고, 국문학과 수업을 들었습니다. 문법 영역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문학 영역은 재미있었어요. 3학년 1학기 때에야 들은 ‘시 창작 수업’이 제 손에 본격적으로 노트와 펜을 쥐여 준 것 같아요. 시인이신 한영옥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직접 시를 옮겨 쓰시는 분이었습니다. 조금은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직접 낭독하시는 시들을 듣고 있으면 활자 하나하나가 귓가에 들려오고 절로 숨죽이게 되었습니다. 혼자 적던 시들을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은 것도 그 봄이 처음이었죠. 전공생도 아니고 복수전공을 하는 제 과제에조차 선생님께선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정성껏 평해 주셨어요. 누군가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으면 성심껏 쓰고 싶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출한 과제에 선생님께서는 이런 평을 연필로 적어 주셨습니다. “전문가의 소질이 엿보입니다. 계속 정진하시길…….” 그 연필 흔적에 기대 조금씩 써 나갔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뒤에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상자 놀이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사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김보나 시인의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상자 놀이」 전문.

Q. 중요한 시기마다 좋은 은사님들을 만난 덕분에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거네요. 만일 교사가 되었다면 시인님도 누군가에게 분명 좋은 스승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문학을 가르치는 일과 창작하는 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사범대 졸업을 앞두고 교생 실습을 갔던 일이 떠오르네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고전시가 「가시리」를 가르쳤어요. 입시제도 아래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정답을 전제로 하여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분석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시험에서 ‘틀리지 않기’가 주된 목표가 되지요. 이에 비해 쓰는 일은 틀리는 것, ‘시’라고 배운 것을 어떻게 줄타기할지 즐겁게 궁리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Q.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에 어떻게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친구들과 2주에 한 번꼴로 모여 서로의 시를 읽고 평하곤 했어요. 모임 이름은 ‘렙업’. 그 외엔 ‘청탁을 받고, 마감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주된 루틴이었습니다. 이전에 김소연 시인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주변 작가들을 보면 다 비슷한 시기와 기한 속에 글을 쓰고 있다고요. 대체로 각 문예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호 청탁을 받아 글을 쓰니 그렇다며 어떤 작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마다의 리듬과 호흡으로 가능한 글쓰기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말씀이었는데 ‘자기만의 리듬과 호흡을 가진 글쓰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문학과지성사’로부터 시집 제안을 받았고, 그것이 글쓰기의 큰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한 권의 시집엔 대체로 오십여 편의 시가 필요하잖아요. 저는 발표한 원고가 많지 않아 오십 편에 한창 미달한 상태였는데요, 이 점이 오히려 ‘한 권의 시집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곧 시인님의 첫 시집을 만나볼 수 있겠네요! 축하드립니다. 어떤 시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제는 ‘나의 모험 만화’입니다. 만화라는 콘셉트 아래 일종의 ‘텍스트-어드벤처’를 지향합니다.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독자는 화자에 이입하여 여자와 남자, 유년과 노년,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등 다양한 경계를 오갈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분들께서 모험 만화를 읽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각,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느낌, 누군가에게 반하는 마음, 그를 잃는 느낌 등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되어 다양한 삶을 추체험하는 경험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쁨, 슬픔, 상실감 등 살아간다는 느낌을 새로이 느끼고 반추할 수 있도록 하는 시집이 되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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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핀드’에서 퀴어 문예지 『큐연』 낭독회에 참여 중인 김보나 시인. 「신의 딸을 사랑해도 될까요?」라는 짧은 소설을 실었다.

Q. ‘텍스트-어드벤처’라는 말이 흥미로워요. 다양한 화자에 이입하는 일종의 ‘모험’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짐작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나오게 된 주제일까 궁금합니다. 


시집을 묶다 보니 저의 유소년기부터 청년기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이 고루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딘가로 떠나며 동료를 만나고 저마다의 위태로움을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려 고투하는 과정이 모험이라면, 한 사람의 생애는 누구에게나 모험 그 자체 아닐까요. 실은 ‘나의 모험 만화’라는 표제작이 있어서 그것을 제목으로 삼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주제인 것 같기도 해요. 


Q. 시인님은 도전해보고 싶은 모험이 있나요?

이런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네요. (잠시 생각) 아, 해외 록 페스티벌에 가보고 싶어요.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이나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같은 곳으로 떠나 어릴 적부터 사랑한 아티스트의 목소리에 영혼을 빼앗기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밴드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어색하게나마 몸을 흔들면서요. 다시 생각해보니 노천탕만 찾아다니는 모험, 캠핑장에 텐트를 직접 쳐보는 모험, 오로라를 보러 떠나는 모험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Q.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강원도 횡성과 강원도 원주에서 입주 작가로 지내셨다고 들었어요. 강원도에서의 세 계절은 시인님께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올해는 봄에는 횡성 ‘예버덩문학의집’, 여름과 가을엔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읽고 쓰며 지냈습니다. ‘예버덩문학의집’에서 강을 보고 숲을 거닐고 너른 텃밭에 감자를 심기도 하며 점차 맑아지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집을 오래 떠나는 일이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예버덩문학의집’에선 뜻밖에 동갑내기 시인을 만나 경쟁을 펼쳤어요. ‘수토화 작전’이란 이름 아래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새 시를 발표했는데요, 주 2회 신작시를 쓰는 일이 어려웠지만,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경쟁심이 발동해 좋은 원고들을 쓰고 모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도 숙식도 해결되는 데다 ‘예버덩문학의집’을 운영하시는 조명 시인님께서 글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셔서 첫 시집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토지문화관’에서 나눈 우정의 기록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토지문화관’은 작가 이외에도 미술작가, 음악가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에게 열려 있었어요. 식빵과 계란을 구워 먹으며 작가들과 서로의 작업에 대해 논하던 아침의 식당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모두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지기 전엔 주변에서 봉숭아를 꺾어 와 새끼손톱을 함께 물들였어요. 레지던시에서 나온 뒤에도 은은하게 물든 붉음을 바라보며 혼자 마음 찡해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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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에서 함께한 동료들과 김보나 시인. 맨 앞에서 하트를 하고 있다.

Q. 듣기만 해도 마음이 찡해지네요. 말씀대로 레지던시에서는 동료 예술가들을 여럿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번역가 시미즈 치사코 님이 아닐까요. 『토지』 번역본 완간을 앞두고 ‘토지문화관’을 찾아 이곳에서 번역을 마치셨다고 해요. 토지 번역본 완간은 일본이 세계 최초라고 하네요. 추후 가을에 한국에서 ‘세종문화대상’을 수상하셨는데, 레지던시 생활이 끝난 뒤였지만 광화문으로 찾아가 함께 축하하기도 했어요. 토지에선 여러 해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스페인 작가 알렉스와 좋아하는 책에 대해 물어보다 우연히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둘 다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짧은 영어로 불꽃 튀게 나누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생각해보니 ‘예버덩문학의집’과 ‘토지문화관’에서는 모두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곤 했어요. 그리고 저는 어느 날의 산책에서 화관을 선물 받게 됩니다. 봄엔 아동문학 작가 이옥수 선생님께, 여름엔 수필가이자 소설가이신 김혜영 선생님께 받았어요. 자연에 해박하고 눈 밝은 두 분은 길을 거닐다가도 지천으로 피어난 풀과 꽃을 요리조리 엮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왕관을 만드는 섬세함과 손재주를 가지셨어요. 뭘 만드시지? 하고 봤다가 완성된 화관을 웃으며 제게 씌워 주시던 얼굴들을 잊지 못할 거예요. 화관을 빚고 씌워주고 그것을 받아 웃는 두 사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웃던 사람들과 흔들리던 나무 전부요.

Q. 지난해에는 공통점이 개최한 낭독 공연 ‘포에틱-사운드-스테이지’로 공통점과 함께하신 적이 있죠. 시인님이 시구절 중 ‘딸기’를 함께 외쳐 달라고 요청하시는 등,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낭독 무대를 만드셨던 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인님은 그날 공연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는지 궁금합니다.

시를 발표하는 지면도 신인에겐 드문데, 자신의 시를 소리 내어 나누는 낭독회라는 자리도 참 귀한 것 같아요. 에무시네마 아래 공연장인 ‘팡타개러지’에 들어섰을 땐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넓고, 본격적인 공연장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관객들로 자리가 가득 차 다시금 놀랐습니다. 육성으로 읽는 시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하고 감동받았습니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히 집중해주시는 분들께 ‘눈으로 읽기’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시는 제가 썼지만, 읽을 때만큼은 독자에게 오롯이 돌려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해서 조심스레 관객분들께 시 일부를 소리 내어 외쳐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함께 “딸기!” 하고 외쳐 주실 땐 정말 행복했어요. 역시 읽는 사람이 있어야 쓰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의 존재감이 온몸으로 전달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시를 나누어 읽어 준, 흔쾌히 목소리를 빌려준 동료 시인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시가 한결 풍성해졌어요. 시를 쓴 사람은 여자이지만 남자 목소리로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는 시가 있었어요. ‘목소리가 바뀌면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점을 실감하며 시에서의 ‘화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고, 이후의 시 쓰기에도 영향을 받았어요. 실제 시인인 저를 연상케 하는 화자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화자를 쓰게 된 것도 공통점과 함께한 낭독회 이후인 것 같아요. 아직 시집도 없는 신인에게 귀한 자리를 내주신 덕에 읽기와 쓰기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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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나 시인과 공통점이 함께했던 ‘포에틱-사운드-스테이지’의 한 장면.

Q. 저희야말로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리죠. 또, 작년에는 시 「첼리스트」로 ‘제1회 동행문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하셨어요. 이 시를 저희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도 “밤의 연주회”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이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된 시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첼리스트」를 쓸 땐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주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첼로 대여점을 발견했지요. 첼로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사람만큼 큼직하고 존재감이 있더라고요. 특유의 중저음은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지요. 「첼리스트」는 『문장 웹진』에 발표된 작품인데요, 등단 이후 간만에 찾아온 청탁인지라 얼마간 무게감을 느꼈어요. 좋은 시를 써내고 싶단 압박감이 있었는데, 그럴수록 조급해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시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 산문을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산책길을 진솔하게 써내려 가다 우연히 이 문장이 찾아왔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자 무언가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Q. 시에는 “악기를 하나쯤 다루고 싶”다는 구절도 있고, “첼리스트”나 “연주회”라는 시어도 있고, 무겁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은 음악이 내재된 듯한 시였어요. 혹시 시인님은 즐겨 듣는 음악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레프(ALEPH), 밍기뉴(Mingginyu). 이유운 시인님께서 소개해주신 유튜브 ‘윤시월’ 채널의 플레이리스트〈곡우 >가 있는데요, 그 플레이리스트를 여는 첫 곡입니다. “사랑을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만의 방식으로” 글 쓰기 전에 집중하고 싶어지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듣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나왔어요. 하루는 이 곡을 크게 틀어놓고 글을 쓰는데, 동생이 슬쩍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어요. 한창 집중하느라 뒤도 돌아보지 않았더니 동생이 한마디 남기곤 나갔습니다. “성스럽네….” 나쁜 일이 벌어져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넬의 〈Fantasy〉를 듣기도 합니다. “돌려놓을 수 있다 해도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느껴 버린걸, 없던 일이 될 순 없어(…)It won’t disappear, 그냥 받아들여”

유튜브 채널 ‘윤시월’의 플레이리스트 〈곡우〉

Q. 저도 들어봐야겠어요. 특히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요. 요즘 집중이 잘 되지 않던 참이거든요.(웃음) 좋은 음악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문학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만화 《나츠메 우인장》을 좋아합니다. 기이한 존재를 볼 수 있는 소년이 요괴와 얽히면서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기도 하고(혹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전해질 수 없는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세계를 이루는 존재들을 바로 보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따뜻한 에피소드가 많아서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일본 영화 《굿바이》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악단이 해체되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장례지도회사에 우연히 입사하게 되며 죽은 자를 보내는 일을 배우게 되지요. 앞서 제 시 「첼리스트」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해주셨는데 그런 느낌이 좋으셨다면 이 영화도 좋아하시게 될 것 같아요.(영화를 소개하려 정보를 찾으면서 알게 된 건데, 주인공 직업이 첼리스트였군요! 대학생 때 한 번 보고 잊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Q.《나츠메 우인장》은 저도 좋아했던 만화인데! 어쩐지 《굿바이》도 취향에 맞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공통점과의 인터뷰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요, 시인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4절기 가운데 ‘하지(夏至)’인 것 같습니다. 1년 중에 낮이 제일 긴 날이래요.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이날 가장 짧아지고요. 양력으로 대개 6월 22일 무렵이라고 하는데, 열두 달 가운데 중간쯤에 위치한 것도 저와 닮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을 종종 듣기에 골라보았는데…… 사실은 추구미인 것 같습니다. 빛과 어둠 중에 고를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밝은 쪽에 서 있길 택하는 사람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지난 2월 3일은 입춘이었습니다.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자 봄이 들어서는 날이죠. 그날 만난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 ‘입춘대길’은 알겠는데 ‘건양다경’이 무슨 뜻이죠?” 제 시 「망상 하천」에 가져온 말인데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어물거렸습니다. “햇빛이 많아지니 경사도 많아진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보았습니다. “建陽多慶: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고 기원하는 말.” 그러고 보니 인간과 다른 종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기원’하는 능력이 아닐까요. 지금 없는 것일지언정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이 인간에겐 있습니다. 안팎으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이지만 봄은 봄. 모두 자신만의 바람을 하나씩 품고 이 봄 따스하게 시작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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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샘 수술 이후 커피보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김보나 시인의 보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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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에 소개된 김보나 시인의 시 「망상 하천」. 잠실, 금호, 마곡, 하남시청, 태릉입구역에서 이 시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