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서 나눈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책으로,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활동을 시작해 ‘제1회 동행문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한 김보나 시인과의 대화를 기록해보았습니다.
Q. 김보나 시인님, 안녕하세요! 시인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활동을 시작한 김보나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처음으로 슈톨렌을 먹어봤습니다. 하얗고 폭신하면서도 상큼했어요. 생일 케이크 대신 받았는데 겨울에 태어나서 기쁘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었습니다. 참, 늘 키보드로 글을 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만년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슈톨렌을 처음 드셨군요! 겨울과 참 잘 어울리는 빵이죠. 그나저나 만년필이라니,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거네요. 키보드로 쓴 시와 만년필로 쓴 시는 달라진 게 있을까요?
키보드로 쓸 때는 보다 길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드리는 느낌이 즐거우니까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느낌(보통 느낌으로만 끝남)이 든다고 할까요. 언제든 지울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 파일이 많아져요. 활자로 표현된 글은 쓰는 동시에 퇴고를 하기가 용이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 쓰고 있는 글에 어울리지 않으면 없애고 다른 곳에 써야 하는데 지우긴 아쉬우니까 새 파일을 열어 쓰게 되죠. 만년필로 쓰는 시는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니까 한 호흡에 주로 한 문장이 허락됩니다. 키보드로 쓸 때보다 느려지고, 들숨과 날숨이 자연히 섞여 들어갑니다. 빠르게 써 내려가지 않으므로 문장과 다음 문장을 잇는 사이에 호흡과 사유, 망설임이 섞여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문장엔 취소선을 긋지만 그 문장은 여실히 남아 있으므로 퇴고할 땐 ‘이 문장은 그때 이런 느낌으로 썼군’ 식으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편하고요.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것…….(웃음)
김보나 시인의 필기구. 만년필은 워터맨의 ‘뉴 헤미스피어’.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주신 것을 쓰고 있다.
Q.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야말로 만년필의 가장 큰 역할이죠. 김보나 시인님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시를 쓰게 되신 건가요?
Q. 중요한 시기마다 좋은 은사님들을 만난 덕분에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거네요. 만일 교사가 되었다면 시인님도 누군가에게 분명 좋은 스승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문학을 가르치는 일과 창작하는 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사범대 졸업을 앞두고 교생 실습을 갔던 일이 떠오르네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고전시가 「가시리」를 가르쳤어요. 입시제도 아래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정답을 전제로 하여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분석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시험에서 ‘틀리지 않기’가 주된 목표가 되지요. 이에 비해 쓰는 일은 틀리는 것, ‘시’라고 배운 것을 어떻게 줄타기할지 즐겁게 궁리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Q.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에 어떻게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카페 핀드’에서 퀴어 문예지 『큐연』 낭독회에 참여 중인 김보나 시인. 「신의 딸을 사랑해도 될까요?」라는 짧은 소설을 실었다.
Q. ‘텍스트-어드벤처’라는 말이 흥미로워요. 다양한 화자에 이입하는 일종의 ‘모험’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짐작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나오게 된 주제일까 궁금합니다.
시집을 묶다 보니 저의 유소년기부터 청년기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이 고루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딘가로 떠나며 동료를 만나고 저마다의 위태로움을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려 고투하는 과정이 모험이라면, 한 사람의 생애는 누구에게나 모험 그 자체 아닐까요. 실은 ‘나의 모험 만화’라는 표제작이 있어서 그것을 제목으로 삼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주제인 것 같기도 해요.
토지문화관에서 함께한 동료들과 김보나 시인. 맨 앞에서 하트를 하고 있다.
Q. 듣기만 해도 마음이 찡해지네요. 말씀대로 레지던시에서는 동료 예술가들을 여럿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김보나 시인과 공통점이 함께했던 ‘포에틱-사운드-스테이지’의 한 장면.
Q. 저희야말로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리죠. 또, 작년에는 시 「첼리스트」로 ‘제1회 동행문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하셨어요. 이 시를 저희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도 “밤의 연주회”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이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된 시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첼리스트」를 쓸 땐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주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첼로 대여점을 발견했지요. 첼로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사람만큼 큼직하고 존재감이 있더라고요. 특유의 중저음은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지요. 「첼리스트」는 『문장 웹진』에 발표된 작품인데요, 등단 이후 간만에 찾아온 청탁인지라 얼마간 무게감을 느꼈어요. 좋은 시를 써내고 싶단 압박감이 있었는데, 그럴수록 조급해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시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 산문을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산책길을 진솔하게 써내려 가다 우연히 이 문장이 찾아왔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지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자 무언가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Q. 시에는 “악기를 하나쯤 다루고 싶”다는 구절도 있고, “첼리스트”나 “연주회”라는 시어도 있고, 무겁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은 음악이 내재된 듯한 시였어요. 혹시 시인님은 즐겨 듣는 음악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레프(ALEPH), 밍기뉴(Mingginyu). 이유운 시인님께서 소개해주신 유튜브 ‘윤시월’ 채널의 플레이리스트〈곡우 >가 있는데요, 그 플레이리스트를 여는 첫 곡입니다. “사랑을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만의 방식으로” 글 쓰기 전에 집중하고 싶어지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듣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나왔어요. 하루는 이 곡을 크게 틀어놓고 글을 쓰는데, 동생이 슬쩍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어요. 한창 집중하느라 뒤도 돌아보지 않았더니 동생이 한마디 남기곤 나갔습니다. “성스럽네….” 나쁜 일이 벌어져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넬의 〈Fantasy〉를 듣기도 합니다. “돌려놓을 수 있다 해도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느껴 버린걸, 없던 일이 될 순 없어(…)It won’t disappear, 그냥 받아들여”
Q. 저도 들어봐야겠어요. 특히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요. 요즘 집중이 잘 되지 않던 참이거든요.(웃음) 좋은 음악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문학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Q.《나츠메 우인장》은 저도 좋아했던 만화인데! 어쩐지 《굿바이》도 취향에 맞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공통점과의 인터뷰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요, 시인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4절기 가운데 ‘하지(夏至)’인 것 같습니다. 1년 중에 낮이 제일 긴 날이래요.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이날 가장 짧아지고요. 양력으로 대개 6월 22일 무렵이라고 하는데, 열두 달 가운데 중간쯤에 위치한 것도 저와 닮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을 종종 듣기에 골라보았는데…… 사실은 추구미인 것 같습니다. 빛과 어둠 중에 고를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밝은 쪽에 서 있길 택하는 사람이요.
갑상샘 수술 이후 커피보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김보나 시인의 보이차.
스크린도어에 소개된 김보나 시인의 시 「망상 하천」. 잠실, 금호, 마곡, 하남시청, 태릉입구역에서 이 시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