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제게는 기현님의 첫 시집이 굉장히 독창적인 문학적 공간으로 느껴졌는데요. 그게 감각적 층위에서는 좋은 의미로 낯설지만,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나 감응 같은 것은 마음 깊게 다정하고, 인류 보편이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정서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기현 님의 시집은 사랑하는 일과 마음, 기억하거나 잊거나 잊혀지는 일들을 중요한 축으로 삼아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있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시집 안에서 시들을 배치하거나 구성하시게 된 기준도 궁금해요.
이 시집은 코로나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시집을 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집에 틀어박혀 시만 쓰던 시기에 대부분 쓴 시들이에요. 신인상을 받는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고 당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던 시기인 데다가 일적으로 상당히 정신과 육체가 고통스러웠던 때였어요. 정신 없이 날들을 보내다가 등단 후 1년 동안 쓴 시가 고작 다섯 편도 되지 않아 자괴감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고 코로나 기간 동안 광주에서 지냈던 기간 만큼이나 시를 썼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집 투고를 시작했고, 부제를 각 부에 속한 시들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의 한 구절로 지었어요. 각 부마다 그래서 감정이 비슷한 시들, 예를 들면 1부의 경우 대상의 부재를 실감하는 감정들이 주를 이룬다면 2부는 그 실감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의 단절로 인한 분노와 절망, 불안의 감정들을 주로 형상화한 시들이고 3부는 그 관계 속에서 부재하는 타자와 화해와 불화를 동시에 겪는 시들이 나와요. 4부와 5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부재나 단절 속에서도 출몰하는 타자의 모습들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던 시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쩌면 이 시집 자체는 그 감정들에 대한 기록물이면서 동시에 타자에 대한 제 나름의 고백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저,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들을 엮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해석하고 즐기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Q. 고백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요즘은 일상도 시간도 너무 빨라서, (자기)고백은커녕 나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일도 버거울 때도 있으니까요. 기현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런 고백의 과정이 세계의 시간을 어느 정도 유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기현님께서는 최근의 시간을 어떤 물성처럼 감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저는 술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술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마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최근에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는데, 간 수치나 콜레스테롤 등이 엄청 높게 나온 거예요. 그도 그럴 만한 게 시를 쓸 때는 늘 곁에 술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도 술자리에서 보는 게 대부분이었고 술에 취하거나 숙취를 겪고 있는 날들이 많았어요. 요즈음 문득문득 떠오르는 소설도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였어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알코올 중독자로 나오거든요. 술로 인한 착란 속에서 나타나는 문장과 심리 묘사들이 난해하기도 하지만 정말 읽는 내내 술에 취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잘 표현한 소설이에요. 실제로 작가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해요. 아무튼,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그때부터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제일 염려되는 건, 하루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어요. 공원에 버려져 있던 하루를 데려오면서 하루의 죽음까지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는데 이 몸 상태라면 그 결심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만일, 내가 먼저 죽으면 내가 없는 세상에서 하루는 내가 더는 세상에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텐데, 하루는 그저 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결국 또 버려졌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금주를 시작했는데 분명 실패를 하겠지만 저는 계속 시도를 할 거예요. 실패하더라도 술을 마시는 빈도를 줄인다면 다음 건강검진 전까지 간 수치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하루가 제 삶에 없었다면 간 수치 따위 개의치 않고 술을 계속 마셨을 거예요. 그러니 적어도 하루가 눈감는 날까지는 살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최근의 시간을 통과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술이라는 물성에서 도망치기.
Q. 줄곧 이야기해왔지만, 기현님께서 쓰시는 시들이 말 그대로 “감각적”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요. 첫 시집에서 제시되는 시적 장면들은 여러 겹의 감각적 층위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충돌하고, 뒤얽히더라고요.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청각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지점들이었어요. 「휘슬블로어」는 그런 의미에서 매력적인 시인데요. 개인적으로 이 시를 쓰시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A. 휘슬블로어는 우리나라 말로 내부고발자라는 뜻인데요. 이 시는 광주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해의 겨울에 썼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 저는 신안동에 살고 있었고 광주역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어요. 아마 그때 신춘문예 투고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을 거예요.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그 카페에 앉아 시를 쓰고 퇴고를 반복했어요. 그때 함께 읽었던 소설이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었는데, 그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일부 이 시에 녹아든 것 같아요. 사랑과 치욕의 사이에서 충돌하던 문장들이 호루라기 소리처럼 들려왔던 것 같아요. 또, 소설과 무관하게 내 내면의 부조리함과 세계의 현실 같은 게 상당히 닮아 있음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어요. 무언가 그때의 저는 광주에서 인천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면서 포기했던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사랑에 가까운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