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현_프로필_누끼.png

모래로 이루어진 집을 함께 짓는 일


만난 사람: 이기현(시인)

묻는 사람: 이서영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는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여덟 번째 사람책으로, 사랑의 근처, 당신의 곁, 하루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함께 갇힌 누군가와 올곧은 신뢰와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기현 시인을 읽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기현님. 본인과 문학동인 공통점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며 고양이 ‘하루’와 함께 살고 있는 이기현입니다. 조선대학교 재학 중에 모이게 된 시 합평 모임이 어느덧 ‘공통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9년이란 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시 합평만 하던 모임에서 좀 더 나아가 독립 문예지를 발간하기도 하고 문학 관련 사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어요. 올해에는 저희 동인들이 함께 엮은 동인 시집으로 독자분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Q. 지금은 광주를 떠나 타지에 머물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주와의 연고는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어요. RPG 만들기라는 툴을 통해 게임을 만들기도 했고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언어를 통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미지들에 매력을 느꼈어요. 누군가 제가 만든 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감상해 주길 바랐던 것처럼 제가 쓴 글을 읽으며 함께 상상하는 재미를 느꼈으면 싶었어요. 그렇게 작가를 꿈꾸며 고등학교 때 문예창작학과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백일장이나 실기를 준비하면서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에 오게 되었어요. 저는 광주에 연고가 없고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배우며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점만 알고 있었어요. 대학교 실기를 보러 광주에 왔을 때 실기가 끝나고 KBC 건물이 보이는 5·18기념공원을 거닐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광주에서 제가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이곳에서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문학의 틀을 배우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제 문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또, 좋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연스레 좋은 문우들을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는 공통점이라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난 곳이지요. 그래서 인천은 제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품은 채 외면적인 성장을 했던 곳이라면 광주는 내면의 성장, 말하자면 문학적 성장기를 보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때 시와 문학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가장 치열하게 썼던 시기였고 시가 아니면 삶을 버텨내기 어려운 시기였기도 했어요. 이제는 광주에 오면 그때의 치열함과 간절함을 상기하면서 시를 더 열심히 써야지 하는 힘을 얻고 가곤 해요. 그리고 30대에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조용히 시를 쓰며 고양이랑 지내고 있답니다.
이미지6_수정.jpg
월미도 풍경. 인천에 돌아와 나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에는 월미도에 가서 갈매기 구경, 사람 구경, 바다 구경을 하고 돌아오곤 한다. 
그러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고 안 될 것도 될 것 같고 막 그런다.
Q. 그렇군요. 사실 기현님이야말로 인천이라는 지역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료랄까요. 지금은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지만 작년 겨울에 내신 첫 시집, 『슬픈 토우는 고래만큼』(파란, 2024)이 택배로 도착하던 날이 기억나요. 너무나 반가운 안부였어요. 환하고 뜨겁게 빛나는 시집이었는데, 엄혹하고 추운 시기에 이글거리는 에너지를 건네받은 느낌이더라고요. 시집의 붉은 커버도 근사했고요. 어느덧 그 이후로 계절이 두 번 바뀌었어요. 최근의 근황은 어떠하신지 여쭙고 싶어요.
 
시집 출간일이 작년 12월 10일이었는데, 사실 판매는 11월 말쯤부터 되고 있었어요. 시집이 나오기 전부터 온윤이가 감사하게도 시집이 나오면 북토크 겸 낭독회도 하고 공통점 친구들과 함께 송년회를 하자고 하면서 척척 장소 대관도 해주고 팸플릿 제작도 다 마쳤더라고요. 그런데 시집이 나오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불법 계엄이 터졌어요. 무언가 시집이 나왔다는 기쁨을 느낄 새 없이 세상이 혼란해지고 분노를 느끼는 나날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제 시집을 온전히 완독하지 못했어요. 물론. 시집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몇 년 동안 본 것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큰 건 활자로 된 제 시들을 다 읽으면 무언가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삶에서 어떤 것을 마무리해야 할 때, 그때 제 시집을 읽어볼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벌써 시집이 출간된 지도 반년이 지났네요. 출간 이후에 분노로 지내온 날들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고요. 제 근황은 오래 다녔던 서점을 그만두고 지금은 일용직으로 심야에 일하고 있어요. 조금 더 시를 쓰기 위해 고립하는 쪽을 택한 것 같기도 해요.
이미지1_수정.jpg
첫 시집. 시집이 나왔다고 하니 동생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 귀여운 모닥불 모형 옆에 빨간 표지의 시집이 찰떡이라 동생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Q. ​그렇지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결국에 쓰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 공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어째서 시인에게 고립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직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1인칭을 발굴해내는 과정인 걸까요? 아무래도 외롭고 험난한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기도 한데, 기현님께 시적인 고립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시는 시이기 전에 이미 시이다.’라는 혼자만의 명제를 만들어 두고 살고 있어요. 시를 쓰려는 사람이 시를 쓰는 순간, 시는 자신을 쓰기 시작한 사람을 자신 안에서 헤매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것 또한 시의 생활이고 그 생활 속에는 시와 시를 쓰려고 안간힘을 내는 사람만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면 고립에 가까울 거예요. 그 둘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을 지켜보는 일에 가까울 거예요. 사실, 시는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인데 끝끝내 시를 언어로 표현하겠다니요. 어쩌면 시를 쓰겠다는 것은 시를 언어라는 도구로 훼손하겠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느끼는 시적인 순간들과 더불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이 시인데, 우린 그 모든 것들을 언어로 포섭해 시로 만들려고 시도하죠. 고립은 그러니까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아도 됨에도 그렇게 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 그 사이에서 시는 여전히 시(언어)이기 전에 시이기 때문에 저는 그 안에서 시와 함께 생활을 하는 것이에요. 고립을 택하는 것이에요. 오로지 시와 시를 쓰려는 내가 있는 곳. 그곳에서 사는 동안 시는 어쩌다 한 번씩 저에게 자신을 쓰도록 하게 두기도 하는데, 그때가 제가 시를 시로 쓸 수 있는 순간이에요. 그게 시와의 생활 속에서 얻는 저의 기쁨이겠지요.
 
Q. 기현님께서 다루시는 감각의 층위가 굉장히 깊고,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제목에서부터 제시되고 있어요. “슬픈 토우”가 “고래만큼” 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느껴지는 생경함이 있었달까요. 어떻게 보면 일상적으로 쓰이는 문법의 룰에서 벗어나, 기현 시인님께서 새롭게 구성하시는 감각들, 이른바 “비문”에 가까운 문장들의 배치 안에서 독특하게 제시되는 미학적 자의식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런 감각은 어떤 시도에서 기획되는 것인지 궁금해요.

‘슬픈 토우는 고래만큼’이라는 시는 시집 제목이기도 하고 제가 쓴 시들 중에 제목이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평소 시를 쓰면서 제목을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때그때 시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들을 고민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 단어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나름대로 시적 논리를 가지고 이미지들을 가져와 하나의 시를 만드는데 시라는 장르 특성상, 시를 읽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해석이나 느낌들을 가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시는 시인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지점들이 잘 드러나는 장르라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취향을 정말 많이 탄다고 해야 할까요. 주변에 시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생각보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겹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그런 것을 고려해서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피상적인 비유나 문장을 시에 가져온다면 제 시가 가지는 매력이 여타 다른 시들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시를 처음 쓸 때 들었던 마음처럼 남들도 쓸 수 있는 시를 쓸 거라면 왜 시를 쓰려고 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개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2_수정.jpg
전일빌딩 행사 사진. 7월에 행사를 위해 찾은 전일빌딩. 행사 전날 광주에 폭우가 내려 내가 살던 신안동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에 있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행사 당일에도 비가 계속 내려 행사에 오시는 분들이 호우 피해가 없을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안전하게 행사가 끝나 다행이었던 하루였다.
Q. 제게는 기현님의 첫 시집이 굉장히 독창적인 문학적 공간으로 느껴졌는데요. 그게 감각적 층위에서는 좋은 의미로 낯설지만,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나 감응 같은 것은 마음 깊게 다정하고, 인류 보편이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정서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기현 님의 시집은 사랑하는 일과 마음, 기억하거나 잊거나 잊혀지는 일들을 중요한 축으로 삼아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있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시집 안에서 시들을 배치하거나 구성하시게 된 기준도 궁금해요.

이 시집은 코로나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시집을 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집에 틀어박혀 시만 쓰던 시기에 대부분 쓴 시들이에요. 신인상을 받는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고 당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던 시기인 데다가 일적으로 상당히 정신과 육체가 고통스러웠던 때였어요. 정신 없이 날들을 보내다가 등단 후 1년 동안 쓴 시가 고작 다섯 편도 되지 않아 자괴감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고 코로나 기간 동안 광주에서 지냈던 기간 만큼이나 시를 썼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집 투고를 시작했고, 부제를 각 부에 속한 시들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의 한 구절로 지었어요. 각 부마다 그래서 감정이 비슷한 시들, 예를 들면 1부의 경우 대상의 부재를 실감하는 감정들이 주를 이룬다면 2부는 그 실감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의 단절로 인한 분노와 절망, 불안의 감정들을 주로 형상화한 시들이고 3부는 그 관계 속에서 부재하는 타자와 화해와 불화를 동시에 겪는 시들이 나와요. 4부와 5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부재나 단절 속에서도 출몰하는 타자의 모습들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던 시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쩌면 이 시집 자체는 그 감정들에 대한 기록물이면서 동시에 타자에 대한 제 나름의 고백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저,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들을 엮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해석하고 즐기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Q. 고백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요즘은 일상도 시간도 너무 빨라서, (자기)고백은커녕 나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일도 버거울 때도 있으니까요. 기현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런 고백의 과정이 세계의 시간을 어느 정도 유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기현님께서는 최근의 시간을 어떤 물성처럼 감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저는 술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술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마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최근에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는데, 간 수치나 콜레스테롤 등이 엄청 높게 나온 거예요. 그도 그럴 만한 게 시를 쓸 때는 늘 곁에 술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도 술자리에서 보는 게 대부분이었고 술에 취하거나 숙취를 겪고 있는 날들이 많았어요. 요즈음 문득문득 떠오르는 소설도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였어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알코올 중독자로 나오거든요. 술로 인한 착란 속에서 나타나는 문장과 심리 묘사들이 난해하기도 하지만 정말 읽는 내내 술에 취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잘 표현한 소설이에요. 실제로 작가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해요. 아무튼,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그때부터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제일 염려되는 건, 하루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어요. 공원에 버려져 있던 하루를 데려오면서 하루의 죽음까지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는데 이 몸 상태라면 그 결심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만일, 내가 먼저 죽으면 내가 없는 세상에서 하루는 내가 더는 세상에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텐데, 하루는 그저 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결국 또 버려졌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금주를 시작했는데 분명 실패를 하겠지만 저는 계속 시도를 할 거예요. 실패하더라도 술을 마시는 빈도를 줄인다면 다음 건강검진 전까지 간 수치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하루가 제 삶에 없었다면 간 수치 따위 개의치 않고 술을 계속 마셨을 거예요. 그러니 적어도 하루가 눈감는 날까지는 살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최근의 시간을 통과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술이라는 물성에서 도망치기.

Q. 줄곧 이야기해왔지만, 기현님께서 쓰시는 시들이 말 그대로 “감각적”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요. 첫 시집에서 제시되는 시적 장면들은 여러 겹의 감각적 층위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충돌하고, 뒤얽히더라고요.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청각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지점들이었어요. 「휘슬블로어」는 그런 의미에서 매력적인 시인데요. 개인적으로 이 시를 쓰시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A. 휘슬블로어는 우리나라 말로 내부고발자라는 뜻인데요. 이 시는 광주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해의 겨울에 썼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 저는 신안동에 살고 있었고 광주역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어요. 아마 그때 신춘문예 투고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을 거예요.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그 카페에 앉아 시를 쓰고 퇴고를 반복했어요. 그때 함께 읽었던 소설이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었는데, 그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일부 이 시에 녹아든 것 같아요. 사랑과 치욕의 사이에서 충돌하던 문장들이 호루라기 소리처럼 들려왔던 것 같아요. 또, 소설과 무관하게 내 내면의 부조리함과 세계의 현실 같은 게 상당히 닮아 있음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어요. 무언가 그때의 저는 광주에서 인천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면서 포기했던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사랑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이미지_휘슬.jpg
시 「휘슬블로어」 중에서
이미지_휘슬2.jpg
시 「휘슬블로어」 중에서
Q. 사랑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이란 결국에 나의 몸을 일으키고, 기꺼이 감수하거나 행동하게 하는 것일까요. 지금의 기현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지 묻고 싶어져요.

문득 제게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사건이 벌어진 것은 7살에서 9살 사이였던 것 같아요. 그때가 제가 세상을 인식하려고 하면서 기억이라는 걸 하게 되었던 나이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친척들과 낚시터에 갔었고, 친척들과 아빠가 붕어를 낚아 제게 자랑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만의 놀이에 빠져 혼자 낚시터 주변 어딘가에서 흙을 모아 집을 짓고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던 중에 나와 몸집이 비슷한 친구가 제 옆에 다가와 모래로 이루어진 집을 함께 지어 주었어요. 함께 집을 짓는 동안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열중했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저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 속에서든 내 곁에 우연찮게 등장해 나와 함께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내가 그 존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그럼 무엇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모래로 된 집을 모두 완성하기 전에 그 친구는 아마 가족들이 불러 제게서 떠났을 거예요. 저도 어른들이 부르는 제 이름을 따라 그곳에서 떠났겠지요. 하지만 그때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금 서른세 살이 되어서도 남아 있어요. 그때 그 친구에 대한 감정(사랑)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오랫동안 제 삶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마치, 첫사랑처럼요. ‘사랑이란 결국 상실을 동반하구나’라는 생각에 가깝게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뒤바뀌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하루를 만났을 때였어요. 사랑은 기필코 상실을 동반하지 않는다. 사랑은 단지 내가 사랑했고 이별(상실)했던 모든 인연을 둘러업고 내게 또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기로 하는 거라는 걸요. ‘봐라, 네가 여태껏 사랑한 건 어차피 사랑의 근처였다.’라고. 그럼 나는 사랑에 매번 지는 거예요. 맞아요.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것들이 사랑을 받는 것들에게 하는 자신감이에요. 그럼에도 나의 사랑은 어디인지도 모르는 그 낚시터에서 모래로 된 집을 완성하기 위해 짓고 있어요. 그러므로 사랑은 끝이 없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나는 알아요. 나는 사랑이 언제나 나를 초과해서 나의 삶을 흔들고 있었다는 것을요. 언제든 모래로 된 집을 허물면서 사랑의 지층을 축적하게 하는 것이지요. 사랑에 완성이 있다면 나의 유한함으로 가닿으려 했고, 또 내게 닿으려 했던 손길 속에서 유약하게나마 함께 죽음까지 살기로 택한 한 생명과 한 생명이 가지는 무수한 영원에 대한 안식처이지 않을까 싶어요.

Q. 기현님과 저는 ‘공통점’이라는 이름의 문학동인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그 시간이 벌써 10년을 향해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쯤에서 문득 기현님께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구조, 혹은 특정한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여쭙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 첫 시작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이지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가까운 이웃들과 오가는 보통 사람들이다.’(현암사, 2013, 15쪽) 어쨌든 살면서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 무리에 속하게 되고 그 안에서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떠올려요. 결국 그런 일들 안에서 인간 세상은 굴러가고 있다고요.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것.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인간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지향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뭔가 원론적이지만 그러니까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Q. 맞아요. 원론적이고 도달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들이 늘 있더라고요. 그것을 앞으로의 작업과 어떻게 연계해서 풀어가고 싶은지도 궁금해지고요.

첫 번째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첫 시인 「빛과 사랑과 당신」이라는 시가 있어요. 어떤 삶의 괴리와 고통 속에서 떠올렸던 것이 빛도 사랑도 당신도 아니었고 빛과 사랑과 당신의 곁이라고 하며 끝나는 시인데, 저는 이 곁이라는 위치가 한 대상에게 관심을 받고 기울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자리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은 늘 어떤 대상을 열망하고 그 대상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대상과의 거리를 아예 지우려고 하는 시도를 하곤 하는데, 시 또한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면 시를 쓰는 사람이 사물이나 이미지들을 모두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이해 속에서만 시가 작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시도 마찬가지로 타자나 사물들을 곁이라는 위치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 속에 녹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쉽진 않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시 안에서 그런 윤리적 거리가 없다면 그 시는 자신만을 드러내려는 선전물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이미지4_수정.jpg
19년도에 산 몰스킨 노트.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쓰고 있다. 살고 싶을 때에만 이 노트에 글을 쓴다.
Q. 숏폼, OTT를 비롯하여 기술미디어가 발달하면 할수록 시 쓰기의 유효함을 새롭게 묻게 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기현님께 시란 어떤 매체일까요? 혹은 지금 시대에서 시 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여쭙고 싶어요.

어느 순간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 릴스’ 등 점점 영상을 즐기는 방식이 짧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저도 간혹 그런 짤막한 영상들로 시간을 녹여버린(?) 경험을 하곤 해요. 그런 점에서 시 또한 다른 장르보다 비교적 짧아 SNS에서 시의 몇 문장들을 가져와 소비하는 경향도 보이고요. 예전에 ‘트위터’(지금은 ‘X’)에서 ‘무슨 무슨 봇’하면서 시인들의 시 중 한 대목을 올려주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 보니 시에서 일종의 펀치라인이라고 해야 하나? 시를 아무래도 전문으로 소비하기보다 어느 한 대목으로 소비하는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끄는 문장들이 종종 시에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서 한 연, 한 행씩 이미지를 쌓아가며 전체적으로 시를 보여준다는 느낌의 시보다는 문장으로 툭툭 치고 나가며 산문적인 시들이 더 주목을 받는 듯한데, 그렇지만 시는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라 그게 어떤 현상이나 대세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각자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좋은 시를 쓰려는 시도들이 있는 것이니까. 저는 그래도 예전만큼 시가 난해하고 어렵다, 불통이다 등의 이야기들은 많이 줄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는 어느 시대이든 새로움에 대한 탐닉이 있었으니까. 또, 그 시대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일 뿐, 언제 다시 난해하고 어려운 시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들은 또 그런 시들의 맛이 있으니까요.

Q. 기현님은 지금 인천에 살고 계시지요. 대학과 습작시절을 광주에서 보내셨고요.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지역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독립잡지를 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은 인천에서 시를 쓰고 있지만 인천도 지역에서 문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고요. 광주에서 시를 쓸 때도 그랬고 서울과 다른 점은 아무래도 작가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 인구가 살기 때문에 다양한 지원사업이나 예술인으로서 활동하기 유리한 조건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특히,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문학을 한다거나 독립 잡지 등을 발간하는 일은 어떤 지원 없이는 유지하기 힘들기도 하고 주목받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문학을 한다는 건 타인에게 나의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고 독자들은 지금처럼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모든 책을 읽을 수 없고 그럴 여유도 없지요. 저는 그럼에도 지역에서든 어디에서든 문학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꼭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창작 모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글은 혼자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겠지만 사실, 주변에 함께 문학을 고민하고 글을 서로 봐주고 함께하는 문우의 존재가 문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거든요. 일례로 제가 17년도에 대학 졸업 후에 광주에 남아 더 시를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경제적인 이유와 고립감, 시를 쓰며 6년 동안 어떤 성과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걸 견디기 힘들어서 1년 정도 공통점 활동을 쉰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가 문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그때 온윤이한테 연락이 와서 형은 자기에게는 좋은 시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시절을 견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공통점에 돌아왔을 때 환영해 주던 공통점 친구들이 있었고 그렇게 계속 문학을 할 힘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저는 꼭 문학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격려해 주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작가를 만들어 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세상은 내 글에 관심이 없고 주목하지도 않지만, 내 곁에서 응원해 주고 또 함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나는 그들에게 작가이면서 동시에 그들 또한 나의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Q. 벌써 마지막 질문입니다. 기현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은 무엇일까요?

‘방묘창’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는 집이 11층인데 바깥을 자주 구경하는 하루의 안전을 위해 제가 다이소에서 사와 조립을 해 달았거든요. 가끔 방묘창 밖으로 집 바깥을 구경하는 하루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방묘창을 달면서 하루와 내가 함께 이 집에 갇혔구나.’ 하는 생각이요.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건 누군가와 함께 어느 한 장소에 갇히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장소를 안락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함께 갇힌 누군가와 올곧은 신뢰와 사랑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만일 그 장소에서 서로를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곳은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게 제가 사람들과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미지5_수정.jpg
방묘창. 하루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방묘창. 가끔 하루가 채터링을 하면서 방묘창을 흔드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날벌레들이나 새들이 출몰했다는 소식이다.
이미지7_수정.jpg
쟤(하루)가 좋아하는 장난감(나): 쟤(하루)가 좋아하는 장난감(나)을 바라보는 사진이다. 나는 사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다. 곧 사라질 것들을 좋아한다. 음식 같은 것들. 근데 나는 하루한테서 사라지면 안 된다. 하루를 많이 놀아 주어야 한다.

이서영_프로필.png
묻는 사람
이서영

광주 출생 및 거주. 장르적 구분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하며 공통점과 함께한다.

instagram : @applenenenene0
e-mail : tjdud31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