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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의 필연적 오해라면


만난 사람: 김병관(작가)

묻는 사람: 이기현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는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열세 번째 사람책으로 시, 만화, 영화, AI 컨텐츠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적으로 넘나들며 이야기를 엮고, 인간관계에서 사랑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고 말하는 김병관 시인을 읽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김병관 작가님! 25년이 저물고 26년 새해가 밝았어요. 올해의 첫 사람책을 작가님과 함께하게 되어 뜻깊고 감사드립니다. 먼저,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분들께 자기소개와 인사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시가 조금 더 재밌는 사건이 되길 바라는, 또 그러기 위한 시를 쓰고 있는 김병관입니다. 저 역시 인터뷰로 시작하는 새해는 처음이라 뜻깊고 두근거리는데요. 이 페이지를 클릭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우선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Q. 최근 공통점 동인 시집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가 세상에 나왔잖아요. 김병관 작가님은 16년도부터 공통점에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해 오셨는데 동인시집에 대한 감회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뭔가 아득한 세월이 지나가는데요. 당시에는 굵직하게 느껴졌던 감정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타임라인으로만 존재한다는 걸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벌써 10년이 지나버렸구나, 싶은 마음인 거죠. 다만, 쓰고 나눴던 말들이 지금의 저에게까지 이어졌다는 것. 다른 무엇보다 세월에 대한 감사함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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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붙여둔 포스트잇들. 각종 이야기의 토대를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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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작가이자 시인.
Q. 김병관 작가님은 공통점에서 독립 잡지 외에도 많은 프로젝트들에도 참여를 하셨잖아요. 특히, 저는 공통점 아카이브를 통해 2022년부터 2024년 초까지 연재를 했던 『가우시안 블러』(총 55화)가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요. 보통 연작시라고 하면 한 권의 시집 안에 엮이더라도, 시편마다 인물이나 스토리가 웹툰이나 드라마처럼 시리즈 형식으로 나타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가우시안 블러』의 경우에는 각 시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가 녹아 있어 마치,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듯했거든요. 그걸 또한 시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이 참신했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작가님께서 후기로 이미 소회를 밝히긴 했지만 좀 더 『가우시안 블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우시안 블러』는 ‘시로 더 재밌을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았을 때, 나오게 된 대답이었어요. 언제부턴가 시를 쓴다는 게 보여주기만을 위한 애씀의 행위로 느껴졌거든요.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말들. 진정으로 속에서 끓고 있는 말들이 어떤 제한성을 가지지 않고 뿜어나오길 바랐습니다. 당시 웹소설도 많이 보고 쓰고 있던 터라, 가시적인 세계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흥미로운 세계, 인물이 능동적으로 움직일만한 세계 같은 것들요. 그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세계관이라는 것과 시를 결합해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굴러가게 되었던 거 같아요. 마침 앤 카슨과 앙리 미쇼의 작업에서 영감과 용기를 받은 상태였기에 그냥 해보자!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쓴 게 바로 『가우시안 블러』라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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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리즈물을 올리기 위해 만든 웹페이지(https://kimbyeonggwan.xyz). 느슨하고도 차분하게, 죽기 전까지 작품을 쌓아가고 싶다.
Q. 그렇군요. 무언가 김병관 작가님께서 ‘시로 더 재밌을 수 없을까?’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세계관’과 시의 결합으로 도출하는 작업이 이해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작가님이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업들이 무엇일지 저도 관심이 갑니다. 그런 점에서 김병관 작가님은 최근 시 연재물을 모아두는 웹페이지를 개설하셨잖아요. 이 작업은 이전에 연재했던 『가우시안 블러』의 연장선처럼 보이는데요. 시를 시리즈물처럼 연재한다는 방식이 저는 여전히 참신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 지금 하는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어쩌면 저는 그냥 이런 게 하고 싶었던 사람인 거죠. 사람은 살아가며 유한한 시간성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질문을 하게 되잖아요. 저에게 주어졌던 질문은 ‘가장 나다운 길을 만들어내는 시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였어요. 예전부터 같이 합평하던 동료분들은 알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야기와 세계관이 결합된 요소를 시를 처음 썼을 때부터 은근히 가져가고 있었거든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꾸준히 곁들임 요소로 활용해왔었던 거죠. 웹페이지를 개설해서 시 시리즈물을 연재하고자 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너무 좋았으니까. 지금도 이 작업을 할 땐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돼요. 서사라는 것을 여백 속에서 탄생지을 수 있겠는가. 비어짐 속에서 탄생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상상력을 빈틈없이 구석구석 채워주는 일을 소설의 문장이 한다면 시 시리즈물을 작업해내며 제가 도달하고 싶은 곳은 ‘비어 있어서 채워지는 것들’에 가까워요. 가령, 독자가 문장을 잘 따라가다 문장에 쾅 부딪히길 바랍니다. 자신의 상상으로 멈춰 있는 시간이 있기를 고대합니다. 저주처럼 박혀버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게 여기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지금 다른 여러 씬도 그렇지만 장르라는 것이 묵묵히 어떤 자태를 지켜내고만 있지는 않잖아요. 장르라는 것은 오히려 주소지의 역할을 할 뿐. 해체의 과정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시도가 장르의 저변을 더 넓힌다고 생각해요. 여러 시도를 홀연히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에 비유해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시가 재밌게 읽혔으면 좋겠다, 다른 방향으로 꽃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는 듯해요. 지금은 대체로 이런 인식 속에서 작업을 해내고 있습니다.
 
Q. ‘비어 있어서 채워지는 것들’이라는 말이 감명 깊어요. 그리고 장르라는 형식이 주소지의 역할에 가깝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저 또한 공감하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김병관 작가님께서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계시는데, 광주에 있었을 때와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 시와 글쓰기에 대한 변화 같은 게 있었을까요?

사실 공간에 따른 변화보다는 시간 속에서 제가 얼마나 더 많은 질문을 했나, 얼마나 더 깊이 질문했나. 그 밀도에 따른 차이가 더 커 보이긴 하는데요. 단 하나 그건 있을 것 같아요. 광주에 있었을 땐 아무래도 오프라인으로 합평을 매주 진행했으니까 살갗에 머무는 응원들이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면, 지금은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질문하는 힘을 키웠다는 것. 광주에 있었을 때 머물 수 있던 장소가 있었기에 지금 서울이라는 이 방대한 도시 속에서도 외롭지 않게 서 있을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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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8월 4일. 서울에서 담았던 사진. 뚜렷하게 자신의 길만을 가는 어떤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은 늘 그런 도시로 인식되곤 했다.
   다른 모방 예술에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 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기에 하나의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중 하나를 다른 데로 옮기거나 없애면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구성되어야 한다. 있으나마나 표가 나지 않는다면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2) 제8장 중에서.

『시학』 제8장. 인물을 다루는 것에 책임을 요즘 더 느끼고 있다. 단순 생성의 범주를 언젠간 뛰어넘을 것이다.
Q. 광주에서 함께 시를 썼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저 또한 김병관 작가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광주와 서울에서 가장 애정하고 영감을 주는 장소가 있다면 하나씩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질문하신 의도에 벗어날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는 하천입니다. 각종 하천이요. 제가 달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지나가는 풍경에 영감을 가장 많이 받는데요. 흘러가는 물에 유독 감응을 많이 받더라고요. 지나간다는 것을 물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Q. 하천이라는 장소가 주는 영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물로부터 지나간다는 것을 배운다는 경험은 무언가 겸허해진다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김병관 작가님께서는 문학 외에도 인접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요새 눈여겨보는 장르나 작품들이 있을까요?

무조건 만화(웹툰)입니다. 요새라기보단, 그냥 늘 애정이 가요.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르기도 하고요. 컷 하나하나에 직관적으로 머무를 수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틈날 때마다 정주행하는 작품으로는 이학의 『격기 3반』, 마사토끼와 joana의 『킬더킹』, 사코 토시오의『도박마-거짓말 사냥꾼 바쿠』가 있습니다. 쓰고 보니 어째 도박과 폭력의 만화들인데요… (그렇지만 사랑합니다) 이 작품들 모두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어 더 좋아하는 듯해요. 또, 지금 보고 있는 만화는 츠지시마 모토의『천재 마녀의 마력 고갈』이 있네요. 제목 그대로 마력이 넘쳐나던 마녀가 마력이 다 떨어진 이후 달라진 생활(?)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에는 아베 토모미의 단편들을 보며 단편을 짤 때의 요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씬이라고 좀 더 확대해 봤을 때, 주목하고 있는 장르는 AI 음악씬이에요. Udio나 Suno와 같은 사이트에선 간단하게 프롬프트만 넣어도 원하는 음악이 완성되는데요. 주목하고 싶은 건 비쥬얼라이징 작업이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Udio의 Spotlight나 Suno의 Best of v5 영역에선 음악 하나에도 AI가 만들어내는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죠. 더 많은 시각 정보. 시각 신호의 침투. 그 움직임이 집약된 현장처럼 느껴져요. 쇼츠나 릴스는 자발적 선택에 의해 신호를 끝없이 받아들인다면 AI 음악씬은 보고 싶지 않아도 시각 정보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거죠. 사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컨텐츠가 쏟아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시스템 자체가 더 쉬운 침투의 영역으로 바뀔 것 같거든요. 컨텐츠 자체가 이미 침범을 담보로 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수용은 언제나 비선별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은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어떤 걸 또 생각해볼 수 있을지. AI 음악씬은 그런 관점에서 눈여겨보는 장르라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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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 히코이치. 『도박마』의 캐릭터. 노년의 멋이 깃든 캐릭터는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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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월. 『격기 3반』의 캐릭터로 어딘가 돌아있는 캐릭터엔 항상 애정이 가는 편.

Q. 만화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소개해 주신 작품들은 작가님께 인물과 서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인 것 같아요. 또, AI 음악씬은 저도 최근에 SNS를 통해 접하곤 하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이어서 질문을 드리자면, 김병관 작가님의 시에는 아무래도 인물들이 전면으로 등장해 서사가 진행되는 구조가 많은데, 대인관계에 대한 평소 생각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께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사랑의 기회’라고 정의 내려둔 상태예요.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잖아요. 평생 자기 자신과 같이 살아가지만 그 역시 알 수 없고, 하물며 타인은 더 그렇죠. 수많은 규율과 법에 의해 본성은 가려지고. 이것이 현대사회라는 틀에서 훌륭히 작동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타인에 대해 영영 모르고.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관계란 필연적으로 오해를 갖게 됩니다.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인간관계를 ‘사랑의 기회’라고 정의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 출발하게 된 거였어요. 우리가 이미 서로의 필연적 오해라면, 사랑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는 거죠. 무엇이 어떻고. 저렇고. 이유를 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주석처럼 달리기 쉽고. 어긋남은 계속해서 어긋남에 가까워질 거예요. 사랑의 좋은 점은 이유가 필요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이 원칙을 적용해보려고 해요. 물론 사람인지라 기분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날들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자각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Q. ‘사랑의 기회’라는 정의가 정말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요. 오해 속에서도 계속해서 타인을 사랑하려는 자각이라… 저에겐 아주 멀지만 가닿고 싶은 지점 같아요. 26년에도 많은 작품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시게 될 건데, 현재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작업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러프하게 스케치해둔 것들이 많은데요. 아마 바로 다음에 나올 작품은 청소년기-농구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가우시안 블러』의 후속작인 『르메끌의 오후』도 이번 해에 내놓고 싶은 이야기고. 저 자체가 워낙 즉흥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저 역시 예측이 잘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Q. 저 또한 작가님의 다음 작품들이 나오길 기다리는 한 명의 독자로서 얼른 후속작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웃음) 마지막으로 월간 사람책의 공통 질문인 김병관 작가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은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텔지아〉에선 아주 유명한 장면이 나오죠. 고르차코프가 촛불을 들고 화면 양쪽을 오래도록 롱테이크로 오가는 장면인데요. 저와 공통점을 지닌 것은 그 촛불을 지키려는 손인 듯해요. 가벼운 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불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손. 저는 저를 믿지 못하는 기간이 엄청 길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걸핏하면 불안에 빠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루고 싶은 것들을 지켜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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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텔지아〉의 한 장면. 촛불을 지키고자 하는 손을 ‘공통점’으로 뽑아보았다.
Q. 2026년 시작을 김병관 작가님과 뜻깊은 대담으로 시작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저희의 대화를 함께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부탁드릴게요!

지금, 현재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놓을 수 있어서 저 역시 기뻤고요. 독자님들께 마지막으로 할 인사로, 자신을 좀 더 믿어 볼 수 있기를. 이 문장을 마지막에 놓아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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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머리맡에 있는 일기장과 작업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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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강가는 흘러간다는 것을 일러준다. ‘현재’와 ‘지금’이란 단어를 시각화한 게 하천과 강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나감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멀다. 그러므로 삶에 항상 가까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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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
이기현

199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instagram : @kidolmon_
e-mail : tinannhuj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