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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타기


만난 사람: 정보영(시인, 에세이스트, 문화예술기획자)

묻는 사람: 장가영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는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열여섯 번째 사람책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를 시소 타듯 오가며, 서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세상을 희망하는 정보영 시인을 읽어보았습니다.


Q. 보영 님, 안녕하세요! 공통점의 열여섯 번째 사람책으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쓰는 정보영입니다. 주로 시와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시집『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를 출간했습니다. 이 외에 앤솔러지 시집 『지구 밖의 사랑』, 에세이집『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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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
책 제목을 들은 사람들은 보통 “어? 나 그 책 아는데.”라고 한다. 그런데 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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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 시집『지구 밖의 사랑』 
창작 동인 ‘행성’에서 ‘사랑’을 주제로 출간한 앤솔러지 시집
기획부터 목차 구성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모든 부분을 아주 꼼꼼히 엮어서 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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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 
첫 단독 시집이다. 에세이집과 앤솔러지 시집을 낼 때는 엄청 설렜는데, 이 시집을 낼 땐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건 아닌데, 오묘했다. 내 손을 떠났으니, 이제 알아서 잘 훨훨 비상하길 바랄 뿐이다. 
Q. 최근에 경사가 많았던 것으로 알아요. 일단 가장 큰 변화이자 가장 축하해드리고 싶은 일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올 연초에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호애 님과 결혼하셨는데, 작가 부부의 신혼 생활은 어떤가요?
 
감사합니다! 일단 둘 다 살이 쪘습니다. 계속 찌고 있습니다. 둘이서 이것저것 잘 해 먹거든요. 그리고 꼭 맥주를 곁들이게 돼요. 이상합니다. 혼자였다면 차려 먹지도,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텐데요. 어쨌든 둘이라서 가능한 먹부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같이 책을 읽기도 하고, 작품에 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지내요. 주변에서 묻길, 작가 부부면 작품 얘기를 하다가 싸우지 않냐고 하는데요. 둘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나누면서 오히려 힘을 얻게 돼요.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보게 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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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애와 결혼. 이때 신부 리프트 타고 신랑인 내가 내려왔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기 전 정말 떨렸다. 
리프트가 내려가는 순간, 박제 각이 나와서 어쩌지 싶었다. 가영이가 카메라 들고 있는 걸 봤다.
Q. 여러모로 시너지가 나는 신혼 생활을 즐기고 계시는군요! 앞서 소개해 주셨듯이 작년 11월에 출판사 걷는 사람에서 첫 시집을 내셨지요. 공통점 동인 시집도 걷는 사람 출판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어, 보영 님의 시집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보영 님의 첫 시집 『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을 읽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는 여름, 생활감, 애인이었어요. 이렇게 시집으로 엮고 보니 보영 님이 스스로 감각하는 본인의 시 세계는 어떤 것이던가요?
 
먼저, 내 시 세계가 뭐지? 생각해 보면, 중심에는 ‘사랑’이 있어요. 창작 동인 ‘행성’에서 함께 동인(앤솔러지) 시집을 낼 때, 제목에도 ‘사랑’이 들어가더라고요.(지구 밖의 사랑)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도 ‘사랑’이 들어가요. 자연스럽게 나는 항상 ‘사랑’을 이야기하겠구나 싶었어요. 제 시 세계의 중심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각하는 부분은 ‘미래’라고 해야 할까요. 최근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외할아버지가 안장된 현충원에 함께 안장되셨어요. 묵념을 하고 난 뒤에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화장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유골은 언제까지 보관하는 거지?’ 같이 묵념을 한 현충원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60년 동안 보관하고 폐기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는 엄마, 외숙모, 작은 외삼촌, 큰 외삼촌 등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요. 60년 뒤에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미래엔 다 사라질 테니까, 순간에 조금 더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쉽게 말해, 있을 때 잘하자. 그러다 보니 일상의 어떤 기쁨, 슬픔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미래의 시간과 겹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많이 듣는 악뮤의 노랫말이 떠오르네요.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미래에 기억될 이 순간. 그 순간을 시로 쓰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생활로부터 비롯된 이야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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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새꾸 보리. 고향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 때 친동생이 보리를 데리고 왔다. 동생은 보리에게 명했다. “보영이 형을 행복하게 해줘야 해.” 보리를 떠올리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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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에 푸릇한 잎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쑥쑥 자란다. 너무 무성해져서 당근잎을 따서 먹어보았는데, 맛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소중한 푸릇함이다.
그리고 사랑이 제 시 세계의 중심에 있다 보니 ‘너’라는 가상의 타자(애인)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게 꼭 애인이 아니어도 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더라고요.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 등에게서 느낀 사랑의 감정을 애인과의 상황으로 치환하여 많이 썼어요. 다채로운 사랑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 부분은 제가 좀 더 시 세계를 확장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여름에 관한 시가 많은 건 제가 여름을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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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평양냉면. 햇볕 쨍한 여름.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애정하는 대학원 형들과 맛있게 취했다. 
슬슬 날이 더워지면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면 평양냉면 생각이 난다.
Q.『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의 「캘린더 넘기기 Φ」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사랑의 원자재값을 계산해 보자면 오늘이 며칠인지 가물가물하다/그런데 사랑은/어떻게 하는거지?/그렇담 이제부터 더는 할 말이 없군 그래/우리는 끝내 어쩔 수 없지 사랑하기 위해서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저는 이 구절에 한참 머물러 있었어요. 사랑의 원자재값과 사랑하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손익 분기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부분을 알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 같고, 분명 공감이 가는 구절인데 왜 공감 가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어요.
 
요즘은 모든 게 수치화되는 것 같아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 같은 거요. 가끔 저도 놀라는데요. 친한 친구가 최근에 아파트를 샀어요. 축하한다는 말 다음으로 나온 말이 “그래서 얼만데?”였어요. 이런 버릇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불쑥 튀어나오는데요. 뭐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시급으로 하면 얼마지? 생각하곤 해요. 친구가 아파트를 샀을 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정적인 게 있기 마련인데, 그걸 늘 놓쳐요.
그리고 온전히 마음만 쓰면 손해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한 것 같아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요구하는 것이 응당 맞지만, 그 외 내가 순수하게 쏟은 열정에 대한 눈초리는, 뭐랄까요. 좀 아파요. 글쓰기 할 때 좀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돈을 떠나서 열심히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대부분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사회적 시선은 대체로, 돈도 안 되는 거 왜 하느냐예요.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랑 자체도 무가치해지는 것 같았고, 또 돈도 없고 돈이 안 되는 걸 하는 나의 사랑은 얼마인지, 원자재값으로 치면 어떻게 되지? 생각해봤어요. 돈이 없는 나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값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무가치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하죠. 관계라는 건 금방 휘발돼 버리기도 해서, 투자 대비 손해를 보지 않는 구간인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그러니까 타인과 관계 맺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어요. 그리고 손익분기점이라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할게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구교환)을 오버랩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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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 넘기기 Φ」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크류바를 먹을 수 있다는 거 그거만큼 사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다음에는 하겐다즈 스트로베리 파인트를 사 먹자
낭독회 때 이 시를 낭독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날 이벤트로 하겐다즈 스트로베리 파인트를 사놓았었다. 
집에 와서 작은 스푼으로 아껴 먹었다. 「캘린더 넘기기 Φ」의 마지막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문학 얘기는 그만하고 아이스크림이나 사러 가자
Q. 보영 님의 시를 읽다 보면 착하고 조용하고, 하고 싶은 말을 잘 참고, 소소한 행복을 잘 느낌과 동시에 소소한 고통도 잘 느끼는, 그런데 어디엔가 혹은 누군가들에게 껴 있는 듯한 화자를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화자는 어디에서 연원한 것일까요? 그리고 다음 시집의 화자도 이 화자에서의 연장선에 있게 될까요?
 
앞서 말씀드렸는데, 타인과 보내는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제가 말을 하는 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씀 주신 화자는 저로부터 연원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느낀 게…화자가 매가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타자와 관계하고 세계를 감각하는 화자를 중심에 두려고 해요. 『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로 치면, 3부에 등장하는 화자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자고 말하는 화자.
 
Q.『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시집으로 낭독회도 진행하셨지요. 시를 통해 독자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지요? 어떠셨는지요?
 
신기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환희롭고 기쁘고 소중하고...그랬습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읽고 좋든 싫든 일종의 감화를 경험한다는 건 참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힘을 듬뿍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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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낭독회. 카페 밑줄에서 김현 시인의 초청으로 듀엣 낭독회를 가졌다. 
첫 낭독회였고,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걱정하면서 밑줄로 갔다. 
다행히 많은 독자분이 함께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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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쇄라니... 2쇄라니!
1쇄만 어느 정도 팔려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쇄를 찍게 되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Q. 2022년에 낸 에세이집『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에서는 경제적 여유를 좇는 삶과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집중하는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무엇이 진짜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 부분이 많이 나와요. 글을 오래 써 왔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다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사실 둘 다 놓칠 수 없이 중요한 삶의 부분이기 때문이겠죠. 그때처럼 지금도 비슷한 상태인가요? 아니면 이 삶과 저 삶 사이의 균형을 잡는 노하우가 생기셨나요?
 
제가 진짜...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낙관적이고 낙천적이었나 봐요. 밝은 미래만 보고 즐겁다 즐겁다 하면서 20대를 보냈어요. 훅 가더라고요. 어릴 땐 서른이라고 하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현실 자각 타임이 왔어요. 이상과 현실을 구분해야 했는데, 저는 늘 이상적으로 현실을 바라보았어요.
지금은 그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시소 타기 같아요. 때로는 글이라는 이상으로 기울었다가도 다시 먹고 사는 현실로 기울고 그래요. 노하우라고 하면, 없는 것 같아요. 현실은 늘 괴로워요. 그래도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건, 먹고사는 게 글과 관련된 것들이라서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시소 타기는 죽을 때까지 안 끝날 것 같아요.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날 것 같아요.
 
Q. 저도 노하우 없이 그저 시소 타기하는 처지에 있기에 다시 한번 공감합니다. 에세이를 보다 보면 보영 님은 농담을 즐겨 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실제로 농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요. 보영 님이 생각하는 농담의 기능과 농담을 잘하는 방법이 있나요?

그런가요? 농담을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농담의 기능은 편안함이에요. 긴장된 마음을 조금 허물고 경계를 조금 풀게 하는 게 농담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외형적으로 우락부락한 것도 있고, 원체 뭔 말을 하다 보면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부러 농담을 하려고 해요. 어릴 땐 장난기도 많아서 그때의 버릇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기도 하고요. 농담 잘하는 방법이 있으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Q. 사석에서 볼 땐 저는 보영 님이 농담을 잘한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니 천부적인 재능일 수도 있겠군요. 보영 님의 에세이에 말단비대증을 진단받고 뇌 수술을 두 번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자연스럽게 죽음과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이 이후로 인생이나 시에서 찾아온 변화는 무엇인지.
 
인생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저는 삶도 문학도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크리스마스 날, 말단비대증 수술을 했는데, 이게 한 번에 잘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어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더라고요. 평소에 두통을 겪은 적이 거의 없어서 두통의 심각성을 몰랐는데요.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이외에도 저혈당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몸으로 겪으니 무섭더라고요. 여러 가지 신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평소에는 당연했던 것이 당연해지지 않게 되는 순간이었고, 내가 간과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싶었어요. 저를 좀 더 객관화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더 생각해보는, 상상의 폭을 넓히게 되었어요.
그리고 20대엔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요. 병을 통과하면서, 죽음이라는 게 참 가까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병을 떠나서 어쨌든 나는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왜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떠올려봤어요. 죽음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죽음을 통해서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더더욱,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상의 어떤 순간을 포착하게 되었고, 일회성으로 흩어질 어떤 순간을 영원히 남기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 때문에 한편으로는 시가 낭만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이 부분을 경계하면서 썼고, 좀 더 객관적 시선으로 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튼 삶과 시 모두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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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강변의 윤슬.
별거 아닌 순간이 빛나고 있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나 여름이 있고 그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의 시를 썼다.
Q. 2024년도와 2025년도 연속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 청년인문실험 >도 기획하고 진행하셨잖아요. AI에게 본인 시의 문체를 학습시켜서 쓰게 하고 진짜 본인이 쓴 시를 비교 대조한 뒤 소논문 형식으로 제출한 실험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실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피아 게임해 보셨나요? 5~6명의 시민 사이에 마피아가 한 명 있고, 시민이 의기투합하여 마피아를 지목하고 찾아내는 게임. 때로는 밑도 끝도 없이 냅다 ‘너 마피아지?’ 의심하고 무고한 시민을 마피아로 몰아서 죽이는 게임. 마피아를 찾으면 평화가 찾아오는 게임.
글도 대신 써주는 AI 시대에 과연 창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하게 되었고, 마피아 게임에서 착안하여, 마피아 글쓰기 인문 실험을 해보았어요. 이 실험에 참여한 작가들은 시편, 시작 메모, 시론 등 사전에 협의한 자료를 AI에 입력해요. 그리고 역시 사전에 논의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실시해요. AI에게 작가의 작품을 보다 자세하게 분석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최종적으로 AI가 시 한 편을 써내요. 그럼 이 AI시(A)와 작가가 쓴 미공개 시(B)를 동료 작가에게 보여줍니다. 가령, 마피아가 AI시(A)인데요. 둘 중 어떤 게 AI가 쓴 시인지 찾아내야 해요. 찾아낼 때 감으로 찾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보았는지 근거 보고서를 작성하고, 결과적으로 A와 B중 어떤 것이 AI가 쓴 시(마피아)인지 솎아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창작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재정의해 보았어요.
근데 저는 AI시를 못 찾을 뻔했어요. 진짜 진땀이 났어요. 동료 작가들도 찾기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모두 마피아를 잘 찾아냈어요. 결과적으로 아직 AI가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는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에 「생성형 AI 시대, 인간 창작의 고유성에 관한 실증 연구」라는 논문도 발표하게 됐어요.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올해도 〈청년인문실험〉을 이어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존 실험의 한계를 보완, 확장하여 실험을 진행해 보려고 해요. 실험 관련해 궁금하신 분께서는 언제든 DM 주세요. (인스타그램 : @information_zero0)
 
Q.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어떻게 했길래 AI가 시인의 시풍을 따라 유사하게 썼을까 궁금해지네요. 그렇다면 이것과 연장선의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AI가 문학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글쓰기 외 일을 할 때 AI를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AI에게 어떤 요청을 하면 정말 안성맞춤으로 척척 해내는데요. 물론 어떨 땐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해서 느낌표를 마구 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가려운 부분을 잘도 긁어줍니다. 그래서 AI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제 얘 없으면 어떡하지?’
그러나 AI가 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창조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AI는 명령에 따라 직조된 정보를 조합하여 나열해요. 모방에 가깝죠. 창조라는 건 아예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AI에게는 감정과 감성적 사고가 없어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AI가 감정을 갖게 된다면 그땐 정말 인류가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현재 AI가 문학에 끼칠 영향은, 문학의 고유성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교 자체가 비약일 수 있지만 인터넷 신문이 나왔을 때, 종이 신문 망했다고 했는데 안 망한 것처럼, 전자책이 나왔을 때, 종이책이 망했다고 했는데 안 망한 것처럼. 문학은 망하지 않고 더 주목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AI가 쓴 책도 나오겠죠. AI와 협업한 책도 나오고 있죠. 근데 AI는 감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정이 없어요. 주어진 정보를 조합하고 모방하는 AI는 인간의 창조 영역 중 극점에 있는 문학의 위상에 돌을 던지겠지만 그럴수록 문학은 더 공고한 힘을 가지리라 생각해요.
 
Q.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AI가 이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다 흡수한다고 해도 닿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영 님은 < 미래-문학 > 웹진도 기획하고 발행하고 계시지요? < 미래-문학 >의 지향점과 웹진 발행에 대한 소회도 듣고 싶습니다.

네, 웹진  < 미래-문학 >을 작년에 창간했어요.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이 야심을 이어갈 수 있게 많은 관심 부탁해요. < 미래-문학 >의 지향점은 간단해요. 신인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것입니다. 신인이라면 시, 소설, 평론을 포괄합니다. 소설은 언제나 지면이 부족하고, 시 역시 발표할 지면을 확보하기 쉽지 않죠. 평론은 말하자면 주문 제작을 받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좀처럼 없습니다. 

*〈미래-문학〉보러 가기 ☞ 링크

물론 요즘엔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고, 특히 시집 출간도 굉장히 활발해요. 2010년대까지만 해도 등단 제도를 거친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내는데 평균적으로 4년 정도 걸렸어요. 요즘에는 1~2년이면 시집이 나와요. 시를 읽는 사람이 많고, 시집 출간 기회를 많은 시인이 갖게 되는 건 정말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시인-시집 출간 과정이 아이돌 시스템과 같다고 생각해요. 출판 시장 역시 자본의 논리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스타가 필요하고, 생성-양산-생성-양산을 반복해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메이저의 구멍은 좁고, 마이크를 쥐지 못하는 신인 작가들이 있을 텐데요. 2000년대 초반, 천년의 시작과 문예중앙 시인선 등이 그러했듯, 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이 한국의 미래 문학이 될 수 있도록 웹진을 운영해 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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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작가들에게 더 많은 지면을 내어주고 싶은 < 미래-문학 >
Q. 이 야심찬 기획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럼 사람책 공통 질문을 드릴게요. 보영 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은 무엇인가요?
 
저와 공통점을 지닌 것은 ‘문턱’입니다. 저는 한쪽에만 머물지 않아요.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에세이를 쓰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해요. 뿐만 아니라 문학과 문화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기도 해요. 그리고 문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고요. 또 문화예술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넓은 범위로 보면 문화예술 아래, 문학의 영역에서 여기저기를 분주히 오가고 있어요. 문학과 학문, 예술과 정책, 감각과 논리, 개인적 서사와 사회적 담론, 창작과 교육, 직관과 근거 사이를 계속 오갑니다. 그래서 저와 닮은 것은 완성된 건물보다 건물과 바깥을 잇는 문턱, 하나의 방보다 방과 방 사이의 통로, 한 장르보다 장르들이 만나는 접촉면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사람책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을 공유해주세요.
 
현실과 이상을 오가며, 시소 타기를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최선을 다할까 싶지만 어쨌든 현실을 살기 위해 돈을 벌 거고요. 그 돈을 발판 삼아 이상 쪽으로 솟구쳐 넘어가서 최선을 다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작업을 반복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심 갖고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문학을 통해, 글을 통해 그리고 공통점의 ‘월간 사람책’을 통해 연결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선사시대 인류의 유골을 보면 살해당한 흔적이 태반이라고 해요. 뼈가 예리한 것으로 잘려 있거나 두개골이 뚫려 있거나. 그러니까 자연사보다 살인을 당해 죽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1만 5천년 전에 부러졌다가 붙은 대퇴골을 보고 여기서부터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해요. 대퇴골은 허벅지 뼈인데, 이 뼈는 회복하는데 6주 이상이 걸려요. 지금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그때라면 어떨까요.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 뼈가 붙은 흔적은 누군가가 돌봐줬다는 증거죠. 긴 시간 부상자를 보호하다가 자신도 죽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돌봐준 거죠. 서로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때, 상처 입은 사람을 향해 누군가 한 명쯤은 손을 내밀 거라고 믿어요. 저는 계속 손 내밀어 보려고 해요. 독자 여러분도 함께, 외우지 않은 사랑의 손길을 내밀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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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마감을 한다. 주말 밤에는 맥주로 마감의 마감을 한다. 이 맛에 마감하지. 다시 평일을 맞이한다. 마감의 마감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평일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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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애 장소는 우리 집 식탁.
앉아서 밥 먹고,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보고, 드라마 보고, 웬만한 걸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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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
장가영

시와 시를 닮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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