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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낸 마음이 씨앗이 될 때


만난 사람: 송미경(시각예술가)

묻는 사람: 신헤아림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는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열일곱 번째 사람책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온기를 품은 채 자신만의 싹을 틔우는 송미경 작가를 읽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송미경 작가님. 공통점의 열일곱 번째 사람책으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송미경입니다. 서양화 기반으로 회화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 일상의 감정들을 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로 슬픔과 공허에 가까운 것들이요.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최근 작업이나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거의 서류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이 각종 지원, 대회, 전시 공모, 레지던시 등 모집 시즌이거든요. 올해 제출한 지원서만 반올림해서 열 군데는 되는 것 같네요. 작가로서 매일 조금은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서류를 병행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잘 못 해내는 스타일이라서요. 허덕이며 서류를 쳐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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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문패, 벨을 누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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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Q. 최근 전시나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들여다보게 된 감정이나 장면이 있었나요?
 
저는 제 감정을 바탕으로 작업을 주로 하는데 그래서 그 내용을 기록하고 다시 돌아볼 때가 많아요. 그러면 스스로도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과거에 기록한 또는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이 다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분명히 내가 생각했고 감당할 수 없어 적어 내린 것들인데도 말이에요. 이런 것들이 때론 저 자신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는 슬픔이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와요. 이러한 부분을 아직 작업으로 담아내진 못하지만, 작업으로든 다른 방법이든 어떻게 처리해나가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올해 참여하신 전시 중 《존재의 메기 ;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라는 제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에게 ‘멈추지 않게 만드는 힘’은 주로 어떤 것에서 비롯되나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나은 사람, 좋은 사람이란 기준은 복합적이죠. 사실 저는 작가나 그림으로 성공을 하고 싶은 큰 욕심은 없어요. 사실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커다란 목표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직업이 원래 그런 특성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도 같고 (퇴직도 없고, 죽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명이 되기도 하잖아요) 먼 미래를 잘 꿈꾸지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지금 내가 작업을 안 하고, 아무 데도 두드려보지 않고 있는 것은 그냥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제가 이 직업을 선택했으니, 이 안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해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다 보면 또 시간이 흘러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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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메기 ; 멈추지 않게 하는 힘》 part.2 전시 전경. ‘예술공간집’에서 열렸다.
Q. 전시에서는 불안, 긴장, 질문, 타자의 시선, 자기 의심 같은 요소들이 단순한 소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으로 제시되었는데요. 작가님 역시 그런 감정들이 작업의 동력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그럼요. 물론 힘들기는 하죠. 그런데 그러한 요소들이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 작업에서는 표정보다 몸의 자세나 형태에 더 많은 감정을 담아내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우리의 몸(동작)을 바라보는 작가님만의 시선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실 육체 자체에 관심이 있진 않아요. 오히려 그런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특징이 많이 없는 중성적인 형태를 그리려고도 노력하고 있고요. 작업 초기에는 인체를 도구로만 생각을 했어요. 감정적 상태에 따라 상상이 되는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려고요. 내면에 가상의 것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실제의 인체로 관심사를 가지기 시작했어요. 우울이나 슬픔이 커지면 몸이 고장이 나잖아요. 그것을 인지하기도 했고, 정보가 많아져 알게 되기도 했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작품에 담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내 신체를 바탕으로 탐구를 했고 이제 다른 사람들도 탐구해보려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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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의 작품, 〈응집〉(2025), Oil on canvas, 50.0x6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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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의 작품, 〈여느 때〉(2025), Oil on canvas, 162.2x130.3cm.

Q. 작가님은 우울이나 슬픔, 공허 같은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뤄오셨는데요. 그런 감정들을 작업대 위에 올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이 항상 뒤따랐었어요. ‘나 같은 게, 왜?’이죠. 정말 솔직하게 특별히 불우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어떤 사연이 있지도 않고, 더 힘든 상황에서 버티는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의 슬픔이, 이 감정을 논해도 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어느 때에 이러한 생각이 결국 또 다른 불안과 슬픔을 파생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스스로 슬플 만한 사람인지 자격을 따지고,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조차 축소시키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감정을 비교하는 어떤 척도가 아니라 각자의 감정을 인정해갈 작은 표지판 정도면 좋겠어요. 그래서 현재는 작품에 어떤 상황이나 특징, 그리고 잔인하거나 거북한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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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의 작품, 〈버텨냄(합본)〉(2024), Oil on canvas, 130.3×97.0cm.

Q. 작년엔 광주문화재단의 ‘예술로’라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개인전과는 또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일단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 개인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개인전을 준비할 때는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해야 하니, 정말 헷갈리고 어려웠거든요. 협업 프로젝트는 사실 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거잖아요. 일단 장르가 다른 여러 예술인들이 모이니 한 부분이 깊어질수록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거나, 예술보단 보조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실제 활동하는 부분보다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예술 영역에 관한 이야기를 시간 들여 심도 있게 나누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Q. 이런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앞으로 작업 안에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감정이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현재도 제가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졸업하고 작가를 한 지 7~8년 정도가 되었어요. 지나오며 보니 제 작업의 근원은 똑같은데 그걸 어떻게 인지하느냐와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이냐는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가장 먼저는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저 자신을 잘 바라보고 또 잘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업이 이제까지 제게서 나왔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더 폭넓게 담아내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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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 작업실 한편에서.

Q. 지금의 송미경 작가님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하나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런 거 정말 잘 못 해서, 저와 수많은 지원서를 함께 쓴 AI한테 물어봤어요.


“정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의 작업이나 글에서 계속 보이는 건, 단순히 멈춰 있음이 아니라

‘감정이 과도하게 차올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 안에서 ‘미묘하게 지속되는 긴장과 내부의 흐름’이야.

완전히 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아 움직이며 해소되는 것도 아닌 어딘가에 걸려서 멈춰 있지만,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진행 중인 상태.

그래서 “우울”, “불안” 같은 단어보다

‘움직임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 라는 점에서

“정지”가 더 가깝다고 느껴졌어.


라네요. 제가 글을 쓰거나 하면 저도 모르게 파고 들어가서 약간 이 친구가 오버한 것 같긴 하지만요. 제가 생각을 한다면… ‘씨앗’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낸 수많은 지원서들이 대부분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요즘 답답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씨앗이 되어보겠습니다.


Q. 요즘 날씨가 많이 바뀌는데, 계절을 보내는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예전엔 식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식물에 좀 빠졌어요. 저는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관심 가지고 공부 하니 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봄에 바질과 루콜라를 심어 키워 먹어요. 최근엔 주변에서 떼어낸 식물들을 얻어와 뿌리를 내리고 화분에 하나씩 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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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식물들.

Q. 송미경 작가님과 ‘공통점’을 지닌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회색? 실제로 제 낯빛이 혈색이 별로 없어서 회색빛이기도 하구요. 어쩌다 보니 요즘의 작업들은 다 회색빛으로 구현하게 돼요. 저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봤을 때 자꾸 회색빛이 보이더라고요.


Q. 앞으로 예정된 계획들과 더불어 독자님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6개월간 담양레지던시를 하게 되어서 올여름 담양살이를 해볼 예정이에요. 새로운 곳에서 작업을 할 생각에 설레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깝게는 8월에 대구에서 기획전을 참여하게 되었어요. 제가 전남이 아닌 곳에서의 전시는 처음이라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될 것 같아요. 벌써 올해의 절반이 거의 다 되었지만 새로운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단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제가 이제까지 낸 각종 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말에는 오픈스튜디오를, 내년에는 개인전을 해야 해요. :) 실제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올해는 캔버스들을 여러 개 이어서 대형 화면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이제껏 상황이 안되어서도, 저 스스로 감당할 게 겁이 나서도 이렇게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큰 도전을 해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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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송미경 작가의 개인전 《가득 빈 마음에》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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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
신헤아림

문학동인 공통점의 리더. 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 shinhear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