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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는 가장 태초의 모양


만난 사람: 황예솔(소설가)

묻는 사람: 김도경


‘월간 사람책’은 공통점 안팎으로 정독하고 싶은 ‘사람책’들을 만나는 대담 기록입니다. 물음과 응답 속에서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열여덟 번째 사람책에서는 꾸준히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동그랗게 모여 무언가를 지키고 바라보는 사람을 애정하는 황예솔 작가를 읽어보았습니다.


Q. 황예솔 작가님, 안녕하세요! 공통점의 열여덟 번째 사람책으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독자분들께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예솔입니다.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이전에는 독립창작자로 활동했습니다. 공저로 글항아리에서 나온 『여섯 개의 폭력』과 독립창작물 『친애하는 서로에게』, 『쉼표, 한창때 우리』 가 있습니다.
 
Q. 우선 늦었지만 등단 축하드려요! 등단 후 이래저래 정신없이 보내실 거 같은데요. 요즘 근황이 어떻게 되시나요?
 
워낙 등단을 오래 준비했고 어릴 때부터 소설가라는 직업을 꿈이라고 생각해 와서 얼떨떨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어요. 한국일보에서 준 작품 액자가 침대에 옆으로 누우면 보이는데 지금도 가끔 ‘저게 진짜 내 등단작?’ 이러면서 안 믿길 때가 있어요. 4월에 등단작 이후 두 번째 원고를 마감하고 나서야 조금 실감이 났어요. 이제는 그동안 써온 소설을 퇴고하고 신작을 구상하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에요.
1._6월_17일,_산청에_있는_밀당_책방에서_신춘문예_당선을_어떻게_준비했는지_이야기하는_자리가_있었어요_._.jpg
신춘문예 당선 후, 산청의 밀당 책방에서 소회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Q. 예솔 작가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수상 소감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어요. “최근에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 말이 함유하는 뜻은 소설이나 글을 쓰는 것이 고된 창작 노동에 비해서 직업으로 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보상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창작이 분명 노동임에도 경제적 보상이 그리 크지 않다는 말에 특히 공감했어요. 아무래도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창작으로 따라오는 보상으로는 막막할 때가 있으니까요. 작가님은 창작자로서 어떻게 경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누군가 제게 ‘요새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백수지, 뭐.’ 라고 대답해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고 자기 전까지도 쓰는 글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으니까요. 등단작만 하더라도 구상과 퇴고, 투고를 반복하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작품에 들어간 시간을 모두 시급으로 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신춘문예 상금 500만원이 많다고 놀란 친척 어른께 제가 냉소적으로 ‘제 나잇대 잘 버는 직장인 월급 수준이지 않겠어요’하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창작자와 소설가로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삶이 힘들어지면 또 다른 경제 활동을 찾아 나서게 되겠지만, 지금은 잠시 미루면서 제 생활에 몰두하는 중이에요. 이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세상에 나가게 되면 고료나 다른 경제적 보상이나 기회가 또 주어지지 않겠나 기대하면서요. (희망 회로 팽팽 돌리는 중) 물론 저는 부모님의 집에서 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긴 해요.

Q. 저는 창작에 있어서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저 역시 동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작가님 역시 수상 소감에서 함께 문학 공부하는 친구들을 언급한 걸 봤어요. 혹시 하옥단문이 무슨 뜻인가요?
 
‘하옥단문’은 단국대 문예창작과에서 만난 16학번 동기들이 모여 만든 친목 동인이에요. ‘하버드 옥스퍼드 단국 문창’의 줄임말로... 저희끼리 자부심을 고양 시키기 위해서 그만큼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라는 뜻으로 만들었어요. 하하하. 저희는 사실 만나면 문학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그냥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면서 놀 때가 더 많아요. 가끔은 이 친구들에게 제가 얼마나 멍청하고 어이없는 생각과 짓거리를 했는지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일상 중에 스스로 이상한 생각을 해내고, 이 친구들을 열받게 하기 위해서 꼭 말해줘야지, 하면서 혼자 흐뭇할 때가 있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갓 성인이 되었을 시절,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모였던 친구들이 이제 막 사회에서 일인 분을 해내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요. 예전에 박덕규 교수님께서 ‘문학의 길은 걷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그대로 남아있으니, 언제든 걷고 싶을 때 돌아와 걸으면 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여기에 길이 있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친구의 존재가 참 소중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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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건물 복도. 일상 속에서 뭔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고등학생 때도 텅 빈 교실에 내려 앉은 빛을 보고 한참 서서 '이 순간이 그리워지겠지'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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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옥문단의 영이가 교환해서 읽고 있는 시집에 써준 쪽지.
Q. 2019년 손바닥문학상 수상, 2021년 『여섯 개의 폭력』 공저 참여, 2022년 『친애하는 서로에게』 독립출판, 2023년 『쉼표, 한창때 우리』 독립출판 등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오셨더라고요. 책 마케팅도 열심히 하신 게 보였거든요. 또 서간문 형식으로 내셔서 편집자적인 눈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책들은 직접 기획하시고 작가 셀렉을 하신 건가요?
 
네, 글항아리에서 나온 『여섯 개의 폭력』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 기획하고 출간한 독립출판물이에요.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팬데믹 때 사회 초년생이 된 심정을 담은 편지글로, 시 쓰는 조민주와 함께했고요. 『쉼표, 한창때 우리』는 천안 청년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27.5도 호프’ 모임에서 함께 만들었어요.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독립출판물을 전국의 책방에 입고하는 과정에서 책방지기님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처음 독립출판을 배운 새벽감성1집과 북마켓에 셀러로 초대해 주신 다시서점, 두루미책방에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북마켓에서 만난 시민, 독자 분들이 따뜻한 시선과 응원을 많이 보내주셔서 계속 글을 쓰는 힘이 되기도 했답니다. (책이 좋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쉼표, 한창때 우리』에 참여한 작가들은 천안에 거주하는 창작자분들께 원고를 부탁드렸는데, 문단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도 있고 최종심에 꾸준히 거론되는 창작자들이라 책의 가치(?)가 점점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입고 되어있는 책방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가 가능합니다. (몇 권 안 남았어요...!ㅎㅎ)
 
Q. 작가님의 작품 중 손바닥문학상 수상작품 「유해동물」,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상작품 「호버링」을 읽어봤는데요. 저는 약간 청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춘들의 이야기를 독립영화처럼 천천히 잘 담아내시는 듯 했거든요. 또 폭력성에 대한 시선도 인상적이었어요. 두 작품이 겪은 폭력은 분명 다르지만, 인물들이 어떤 폭력에 대한 내재된 분노들이 엿보였던 거 같아요. 두 작품에서 다룬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유해동물」은 학교 폭력에 대해서, 「호버링」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폭력성을 다루려고 했어요. 학교 폭력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결코 개인과 개인 간의 폭력이 될 수 없고, 그 안에 있는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하게 되면서 순환되는 폭력의 고리가 만들어져요. 소설 내에서는 피해자인 ‘여빈’이 비둘기를 혐오하고, 시간이 흘러 해리성 기억장애를 얻은 가해자 ‘승이’를 찾아가서 정서적으로 자극하려고 시도하지만, 끝내 포기하면서 피해자가 겪는 오랜 고통과 허무에 대해 말하고자 했어요. 여담으로,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 < 더 글로리 >라는 드라마가 나왔는데,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 더 글로리 >에서는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어요. 어쩌면 소설과 드라마의 장르적 차이 같기도 했고요.
「호버링」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연루되어있는 개인의 무력감을 다루고 싶었어요. 우리는 각 개인의 사정을 모른 채 자신의 편리에 이끌려 소비하고 행동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잖아요. ‘김초’가 배송센터에 일하러 가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그가 그 시스템에 연루되면서 소팅로봇에게 물품을 스캔하는 것으로 건너편 노동자에게 과도한 물량을 넘기게 되고, 그 노동자가 쓰러지게 되고, 그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진 것을 떠올리게 돼요. 결국에 ‘김초’는 이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는데, ‘김초’가 도망을 선택한 것을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에 대해 생각했어요. 결국은 시스템의 잘못이잖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것을 끊임없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죠. 쿠팡과 SPC 등에서 끊임없이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내가 편리를 위해 구매하는 로켓배송 물품과 배고파서 무심코 사 먹는 빵이 그 폭력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 또는 그런 죄책감을 개인이 느끼게 되는 시스템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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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조민주와 함께 독립출판한 에세이집『친애하는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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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창작 모임 27.5도 호프에서 함께 만든『쉼표, 한창때 우리』
Q.「호버링」을 읽고는 되게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쌓아온 필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선택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느낌도 받았어요. 우선 첫 문단에서 문장력, 묘사 흡입력 등을 보여주고 인물 설정 빌드업 쌓고 이런 부분이 본인의 실력을 초반에 잘 보여주는 듯도 했어요. 또 드론 동아리의 드론, 아빠의 병원에서 드론 등 연결점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신경 쓰신 게 보였거든요. 작품 들어갈 때 플롯이 좀 궁금해지더라고요. 플롯을 세세하게 잡는 편이신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플롯을 먼저 고려해요.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도 문단별로 위치를 옮겨가면서 어떤 전개가 더 효과적일지 고민하고요. 가끔은 한글파일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페이지별로 어떤 장면을 배치할 것인가를 스토리보드 만들 듯이 구상하기도 해요. 따로 메모장을 켜놓고 여러 장면을 먼저 스케치하고 한글파일에 옮기면서 쓰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호버링」을 쓸 때는 처음에 3인칭 시점으로 썼던 작품이라 화자인 ‘김초’가 어떤 장면을 보았을지 상상을 많이 한 편이에요. 독립영화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어떤 매개물을 이용한 장면들을 많이 생각해냈던 것 같아요. 계속 김초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샤워하거나 이동하는 교통수단 안에서 떠오른 장면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메모해 두곤 했어요. 등단을 목표로 작품을 쓸 때는 심사위원이 A4용지로 내 글을 읽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모니터에 한글파일 화면을 축소해서 각 장마다 어떤 장면이 들어가 있는지,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의 분량은 각 장마다 어느 정도 배치되어 있는지를 살피기도 했어요. 그래서 빌드업과 디테일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작품에서 나오듯이 ‘호버링’은 드론을 운행할 때 정지비행을 뜻하는데요. 정지비행이 잠시 쉴 수 있는 안온한 순간처럼도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이런 요소, 요소들이 청춘미가 느껴지게 했나 봐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창작 활동에도 빗대어서 생각되긴 했어요. 정지비행은 어찌 보면 도약을 위한 시간일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모든 청춘들에게 보편적이지만, 적확한 모티프였던 거 같아요. ‘호버링’으로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완전 초고였던 작품은 2024 문화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던 「소팅의 방식」이라는 소설인데, 이 작품에는 소팅 로봇만 있었고 드론은 없었어요. 무거운 소재를 나누고 드론을 작품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초고에서 두 편이 갈라져 나왔고, ‘호버링’의 뜻이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되었어요. ‘호버링’에 대한 설명 중, 단지 드론을 운행하는 데에 필요한 단계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잠시 멈춘 채로 균형을 잡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말처럼 읽혔거든요.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어야 잘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으로 읽히길 바랐어요. 스스로 글을 쓰면서 남들이 볼 때는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나만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멈춰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Q.「호버링」 전반적으로 요소, 요소를 잘 안 놓치시고 차곡차곡 쌓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의 심폐소생술-상하차 현장에서 심폐소생술’ 연결이라든지, 거시적으로는 일용직 노동자를, 미시적으로는 청년 인물 감정선을 오가는 시선 등이 디테일하면서도 작품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했어요. 어느 부분에서는 완성도를 높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자유롭다는 인상이었어요. 그게 드론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고요. 혹 작가님이 작품 내에서 조금 더 신경 썼거나 계속적으로 수정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도입부의 근린공원 장면은 투고 몇 주 전쯤에 덧붙인 문장들이에요. 그동안 같은 초고에서 갈라져 나온 소설은 최종심에 언급되었는데, 비슷한 완성도인 것 같은 「호버링」은 심사평에 언급되지 않아서 그 이유가 뭔지 혼자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가 쓰고자 한 장면들은 다 썼고 인물들과 관계성도 충분히 구체화한 것 같은데 첫 장에서 시선을 끌지 못해서 그런가 싶었어요. 그래서 도입부에 알레고리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장면화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호흡과 음악과 담배 연기가 보이지 않는 공기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근린공원 장면으로 그려내고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 나도 모르게 연루되는 사회에 대해 말하고자 했어요. 작품의 중반과 후반에 심폐소생술이 나오는 두 장면은 처음 썼을 때부터 거의 수정하지 않았어요. 단문에서 느껴지는 긴박함과 날것의 리듬이 느껴지길 바랐거든요. 각각 장면마다 힘을 주거나 빼는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야! 네가 여기 있네?"

함지는 드라마 속 추노꾼처럼 눈을 번뜩였다. 팔뚝을 쥔 손에 어찌나 힘을 주는지 멍이 들 것처럼 아팠다. 나는 함지의 손에서 벗어나려 뒷걸음질 쳤다.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왜 나 피해?"

날카롭게 꽂히는 함지의 말에 조용히 셔틀을 기다리던 근무자들이 숨죽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피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버스가 도착했다. 함지는 내 옆에 딱 붙어 자연스럽게 새치기로 버스에 올라탄 후, 나를 버스 창가 쪽으로 밀어 넣고 본인이 통로에 앉았다. 새치기당한 사람들이 항의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창밖을 보며 함지를 애써 외면했다. 함지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였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아? 네가 망가뜨린 드론 물어낼 돈 벌러 가는 거야."

  ―황예솔 소설가의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버링」 일부.
Q.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을 위해 소설이 움직이는 느낌도 받았어요. 인물들이 너무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플롯이 움직이고 설정이 움직이는 느낌이랄까요. 작품 속 인물들에게 애정이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예전에 소설 수업 들을 때 교수님이 작품 속 인물들이 꿈에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나 애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애정이나 애증이 없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탄생시킨 인물들이고, 모진 상황에 몰아넣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는 거니까, 소설 속 화자는 물론이고 모든 인물에게 애정과 애증을 느껴요. 하지만 ‘인물을 위해 소설이 움직인다’, ‘인물들이 너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은 제가 합평에서 가장 많이 단점으로 지적 받은 ‘소설이 착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기본적으로 저는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인류애가 있는 편이어서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소설에도 그런 저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은데, 고치고 싶은 단점으로 생각해요. 앞으로는 인물들이 다치거나, 세상의 풍파를 겪는 소설도 쓰고 싶어요.
 
Q. 저는 예솔 작가님의 시도 읽어봤잖아요. 그래서인지 시의 화자와 소설 주인공이 묘하게 만나지긴 했어요. 두 인물이 같다는 아니고, 내면아이가 닮았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조금은 자전적인 요소도 있었을까요?
 
둘 다 제가 쓴 글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읽힐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생각이나 감정이 투영될 수 있겠지만,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적은 아직 없어요. 그보다 그 인물의 이야기나 시속 화자로 읽히길 바라면서 창작해요. 처음 하고 싶은 말은 저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말일 수는 있어도, 퇴고를 거치면서는 저와 멀어지는 방식으로 쓰고는 해요.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소설이나 시가 아닌 산문집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앞서 살짝 말했듯이 시를 오래 써오셨다고 들었어요. 시와 소설이 가지는 매력이 다를 것 같은데 알려주실 수 있나요?
 
시는 언어를 절제하는 방식으로 쓰고 소설은 장면과 묘사를 풀어놓는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저는 산문 전공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시를 공부하면서 훨씬 많이 성장했어요. 저만의 언어 호흡이나 이미지를 구현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그것을 소설이라는 장르에 접목할 때 독자들을 더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시로도 독자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갈고 닦는 중입니다.
9._천안에_있던_책방_악어새에서_문우들과_많은_이야기를_나누고,_글을_썼어요_._지금은_공간을_잠시_떠났지만,_악어새의_추억은_여전히_둥지에_남아있어요_._.jpg
천안에 있던 책방 악어새에서 문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썼다.
Q. 앞으로 창작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쓰고 싶은 작품과 고치고 싶은 작품들에 대한 계획이 잡혀 있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나갈 것 같아요. 단편 소설을 창작하는 데에 집중하고 틈틈이 시와 동화도 습작하고 싶어요. 앞으로 발표되는 작품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다음 질문은 공통점의 공통 질문입니다. 작가님과 ‘공통점’을 지닌 건 무엇인가요?
 
동심원을 이루는 것들이 떠올라요. 최근 산청에 있는 밀당 책방에서 독자와 만남을 가졌는데 책방 테이블 곳곳에 분홍색의 동그란 꽃이 장식되어 있었어요. 독자 중 한 분이 코끼리마늘꽃을 꺾어 책방에 선물해 주신 것이었는데요. 그 꽃을 보고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런지, 우리가 모인 모양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동안 모두 저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셨거든요. 저는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것이 좋고 계속 시선이 가요. 공연을 보러 가도 꼭 시작 전에 조용하게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요. 길을 걷다가 민들레 꽃씨가 동그랗게 돋아난 것이나, 밤송이가 열매를 지키러 가시를 동그랗게 두른 것을 한참 자리에서 바라본 적도 있어요. 동그라미가 가장 태초의 모양처럼 느껴져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을 지키려는 힘이든, 바라보는 힘이든, 동그랗다는 것. 살다 보면 동심원의 중심이 되기보다 부드러운 털이나 씨앗, 또는 가시가 될 때도 있겠지만, 저는 계속 그 안에 있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님께 전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해볼게요.

‘신인’이라는 말을 곱씹게 됩니다. K-pop을 오래 좋아해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인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제 제가 신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합니다. 욕심이 많은 저를 어떻게 봐주실지 걱정이 앞서지만, 저라는 사람을 오래 지켜봐 주셨으면 싶은 또 다른 욕심을 부려봅니다. 저는 한 아이돌을 20년째 좋아하고 있어요. 신인 때부터 중견이 될 때까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더 뜻깊답니다.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잘 준비할 테니, 저에게 귀 기울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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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민들레 꽃씨와 밤송이의 동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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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올림픽공원의 KSPO 돔. 공연을 보러 자주 가는 곳인데, 가끔은 이곳에 평행우주가 있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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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
김도경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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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basun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