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해루질
승강장에 나란히 앉은 우리가 같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밤의 긴 머리가 우리의 머리 위로 포개지고 있는데 내가 바라보는 것을 너도 바라보고 있다면
저 멀리 유성처럼 달려오는 열차를 그대로 보내줄 수 있을까 빛 한 점 없는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가끔 파도치는 소리와 현수막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방파제 아래로 문득문득 보이는 해루질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같은 방향이라면 풍향계가 어김없이 돌아가고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에 올라탄다 해도
나는 바닷가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해루질을 마친 사람들이 빛의 파편을 하나씩 쥐고 밤의 방파제를 건너오고 있다 열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반대편을 향해 네가 밝은 손을 흔들고 있다 그곳에는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니면 승강장을 떠나가는 열차가 있을까 나는 알 수가 없지만 너의 손은 잡고 싶어서 밤의 긴 머리를 장막처럼 걷어내며 일어섰는데
전방이 백색의 미지였다 한낮에 떨어지는 유성처럼 한 무리의 발걸음 소리가 희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어느 방향으로든 손을 뻗으면 소매를 접어주려는 손길이 있다 더는 돌아올 것도 떠나갈 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네가 바라보는 것을 감응하고 있다
야간 해루질
Night Snares
이기현
Lee Kihyun
2020
시, 9행에 459자. 밤, 바다, 그 속의 희미한 불빛으로 지음.
Poem, 9 line and 459 type. Made by dim light inside of night and sea.
폴터가이스트*
아무 이유도 없이 죽게 되면 누가 내 죽음을 슬퍼하는지 시체 옆을 기웃거릴 거야 그러다 기뻐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함께 기뻐할 줄도 알아야지 아, 하면 아, 하고 벌어지는 입으로 이곳이 내가 죽은 곳이자 살았던 곳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거야 그게 자 없이 칼로 여러 번 그은
백지 같은 환청에 불과할지라도 물은 갈라도 물이고 종이는 접어도 종이일 테지만 내 목소리는 나아가며 다방면으로 출렁이는 소릿결이 될 테니까 수조 안의 생물과 수조의 막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다른 주파수로 대화가 가능해질 거야 그럼 지금이 우리가 일으킨 가장 어린 떨림이야 말해줄 수 있겠지 소릿결이 닿을 때마다 기쁨도 슬픔도 삶도 죽음도 다 함께 출렁거리는
수면 위에서 실은 언제나 함께 있는 기분이야 고백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내 죽음 따위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사람들의 매일 아침 인사가 비인칭을 지닌다고 할지라도
어디선가 계속해서 당도하는 떨림이 있어서 죽어서도 다가가고 싶은 막이 있을 거야 그럼 환각이어도 좋으니까 아주 잠깐 아무 이유 없이 좀비처럼 일어서는 육체를 가지게 될 거야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끝까지 말을 거는
가련한 생물을 그리워하게 되어서 그게 사인이 될까 봐 쓰러지는 자신의 육체를 끝없이 두드리는 영혼이 있을 거야
*독일어로 '노크하다(polter)'와 '영혼(geist)'을 합친 단어로,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물체가 움직이는 현상을 뜻함.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이기현
Lee Kihyun
2020
시, 6행에 460자. 비인칭과 유령 같은, 혹은 이유 없는 소음들.
Poem, 6 line and 460 type.Impersonal and ghostly, or strange noise.
tinannhuj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