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문묘에 왔나 봐.

   봐봐.

   이것은 문묘의 문. 습관의 밤으로부터 우리는 어리둥절 깨어나. 봐봐. 우리는 어두운 밤눈으로. 빗장을 풀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문묘의 틈. 바람이 든다. 봐봐. 이것은 문묘의 마루. 밑은 깊다.

   이것은 문묘의 고독이래. 당치않아. 고목이잖아. 우리는 고문서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실록을 더듬듯이. 人이 있다. 당치않아. ㅅ이잖아. 우리는 개척민의 마음으로. 사슴이다. 구름이다. 이것은 문묘의 병풍. 명월이다. 북악이야. 발췌에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어딨다는 것일까. 너 나 할 것 없는 동일인물이. 동일인물의 자연현상이. 동일인물의 살아 있는 기분이. 우리는 장갑을 끼고. 이것은 문묘의 궤짝. 주마등과 같대. 주마등이 뭐지. 마룻장이 삐그덕거린다. 이것은 문묘의 속삭임. 속삭이는 그림자. 그림자 속에 숨은 그림자. 밤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다.

   휴지를 줄래. 울고 싶다.

   이것은 문묘의 고독. 봐봐. 고독이야. 틀림이 없다. 근본이 없대. 슬레이브였대. 맞아. 이것은 슬레이브의 목소리. 삼경을 지나. 적막을 지나. 왈가왈부의 소음을 뚫고. 풍설은 밤에 넘친다. 밤말은 쥐가 옮긴다. 맞대. 우리는 판독에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슬레이브가 있다. 슬레이브가 있다. 감정의 붐빔. 앎의 당김. 우리는 슬레이브의 구슬땀을 훔치며. 먼 길을 떠나려는 것일까. 먼 길을 떠나 문묘에 온 것일까. 봐봐. 이것은 문묘의 붓. 문묘의 먹. 밑줄을 긋는다. 빗금을 친다. 정정할 것이 있다. 슬레이브였습니다.

   슬레이브가 있다. 슬레이브가 있다. 사무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동일성의 환상에 잠겨. 하나는 하나. 하나에 하나. 서로의 어깨에 길동무처럼 머리를 기대고. 봐봐. 이것은 하나의 메아리. 동이 튼다. 유서는 깊대. 우리는 떠나는 자세로. 흐림을 지나. 소실점을 지나.

   봐봐.

   문묘에 왔나 봐. 이것은 문묘의 고목.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제59호.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Ginkgo in Munmyo, Seoul

신해욱
Shin Hae Wook

2020
시, 11행에 723자. 임진왜란 당시 전소됐던 문묘를 재건하며 함께 심어진 것으로, 나이 약 400살 추정.
Poem, 11 line and 723 type. It is estimated to be 400 years old, as it was planted together to rebuild the Munmyo, which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끼어드는 글자 而



   而를 보았다. 끼어드는 글자 而

   팔려고 내놓은 물건과
   버리려고 내놓은 물건 사이

   썩는 비닐과
   수북한 낙엽 사이

   而

   마당이었다.

   而

   “임자가 있을까.” 하나가 발소리를 죽였다. 발에 밟히는 것. 흙은 곱다. 흙은 검다.

   “사물은 우리 편이라던데.” 하나가 두리번거렸다. 릴케가 그랬는데. 而. 마당은 크다. 而. 장방이 같다.

   “무의미도 크대.” 하나가 속삭였다. 뒤라스가 그랬지. 而. 냉담하대. 而. 반짝인대.

   而

   임박했어.

   而

   지금이다. 하나는 돋보기를 들고. 보기를 보자. 보기는 넷. 반짝이는 而. 전진하는 而. 끼어드는 而. 중첩되는 而. 넷으로 치자. 而. 사물의 광기. 而. 상실의 경이. 而. 들어가지 마시오. 而. 보기는 넷. 而. 정오였다.

   낙엽이 굴렀다.

   구른다는 것. 굴러간다는 것. 끼어든다는 것.

   하나가 빗자루를 들었다.

   눈이 부셨다. 상상의 밖이었다.


끼어드는 글자 而
Cut-in Character ‘而’

신해욱
Shin Hae Wook

2020
시, 19행에 331자. 사물의 띄어쓰기 사이, 생각의 행갈이 사이 끼어드는 이것.
Poem, 19 line and 331 type. The thing that interrupts between two objects, and in the middle of thinking.


williwils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