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내가 떠서 건넨 물속에는
작고 검은 이끼들이 떠다니고 있다
너는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보트 밖에 버린다
새로운 동굴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한다
돌아가는 보트에 앉아서
나는 네 등을 본다
너를 나아가게 하는 힘과
너에게 남아 있는 힘을 생각하면서
네 어깨에 손을 올려본다
완전히 지쳤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도
우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너에게 조금 더 자두라고 말하고
혼자 시작하는 하루
나는 빈 병에 물을 뜨다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물결들을 본다
등
Behind
모시
Mosi
2020
시, 19행에 215자. 세상의 뒷면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순간들.
Poem, 19 line and 215 type. Moments of quiet sway in the back of the world.
선순환
건너편 벤치에서 노인이 햇볕을 쬔다 나에게 아몬드 한 움큼을 건넨다 내 손에서도 갓 볶은 아몬드 냄새가 난다 나는 다이어리를 꺼내 지나간 날짜 위에 외계인을 그린다 눈을 감고 떠다니는 외계인,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외계인, 누운 채 숨을 내쉬는 외계인, 외계인이 늘어나도 외계는 조용하다 저녁에는 소파에 누워 싸인공을 만진다 실밥을 따라 공을 돌리다가 쥔다 허공으로 던지고 팔을 뻗는다 이 공을 준 친구는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거기서 그 애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었다 더는 갈 곳이 없다고 친구는 말했다 차가운 바닥 위로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나는 스툴 위에 앉아 양말을 신고 물을 올린다 아몬드 몇 개를 입에 넣는다 바닥에 누워 귀를 대면 난방 배관으로부터 소리가 들린다 물이 끓는 소리와, 멈추고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손을 펴서 바닥을 누르다가 두드려본다 몸을 나사처럼 돌리며 빈 바닥을 밟는다
선순환
Virtuous Cycle
모시
Mosi
2020
시, 1행에 332자. 사건을 공처럼 이해하기.
Poem, 1 line and 332 type. Understanding action like a ball.
plows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