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장의사
휴가차 영월에 가는 길이었다
‘진달래 장의사’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장의사에 진달래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어울리지 않아서 어울렸다
나는 지금 ‘진달래 장의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영월에 있는 누군가가 이 시를 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진달래 장의사에서 일하는 장의사가 이 시를 읽을 가능성은?
장의사를 찾으려던 사람이
장의사를 찾으려다
자신과는 무관한 영월의 어느 장의사에 대한 시
사실은 장의사가 전혀 절박하지 않은 이 시를 읽을 가능성은?
시골에는 장의사가 많다
썩 이상하지는 않다
시골에는 노인이 많으니까
죽은 사람을 정리해주는 사람도 자주 필요할 것이다
필요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필요를 가늠하다보면
확실히 진달래 장의사의 간판은
짙은 푸른색이었다
내가 자주 고르는 옷 색깔이다
옅은 분홍색의,
아주 간단한 꽃모양 마크가 붙어 있었고
이파리는 다섯 개였다
진달래 꽃잎은 다섯 개.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진달래 장의사에 대해 좀더 말해보고 싶은데
더 생각나는 것은 없다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꽃,
누군가 떠나는 길에 즈려밟는 꽃,
이건 내가 겪은 진달래가 아니다
이 인상에서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다
포털사이트에 진달래 장의사를 검색해봤다
나 말고도 진달래 장의사를 떠올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본 진달래 장의사의 사진을 찍어서
각자의 인터넷 공간에 올려두었다
나는 그 사진들의 요모조모를 살펴보고
내가 보았던 인상과 어딘가 다른 곳을 찾는다
얼마간 다르기를 바라면서
또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진달래 장의사
funeral director, Jin-Dal-Rae
김코
Kimko
2020
시, 40행에 573자.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인상을 위한 기록.
Poem, 40 line and 573 type. Records for impressions on travel.
도배
오후부터 염소의 얼굴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상한 냄새가 나는 방에서다
함께 살고 싶은 염소를
이 방에 들일 수는 없지만
들어서고 나면
함께 살고 싶은 염소가 생각나는 방
이 방의 벽지는 낡았지만
우리에게는 성냥이 있다
염소의 얼굴을 허공에 긋다가
실패하면
불을 던질 수 있다
보기 좋은 간격으로
잿더미는 쌓여 있고
하다만 염소는 물렁 네모
찰랑 동글한 몸으로
바닥에 고여 있음
남아 있던 벽지로
창문을 가리면 어떨까
제대로 저녁일 때
벽면에 묻은 곰팡이를
깨끗이 긁어낸다면
그동안 생각나버린 염소의 얼굴을
사면에 바를 수 있을지도
가정은 텅 비었다
도배
Wallpaper
김코
Kimko
2020
시, 24행에 223자. 이곳은 염소로 도배된 방.
Poem, 24 line and 223 type. This is a room plastered with goats.
non0agi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