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절 동호회



   희망을 수표 뭉치처럼 쥐고서
   호기롭게 뿌리고 다니던 시절의 우리가
   배 나온 회사원이 되어 다시 모였네

   여럿이라서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생활 흠집이 난 낯빛을 화면에 띄우고

   카메라 가까이에 잔을 대고 건배하며
   서로의 오래된 실패담으로 서글퍼지네

   그렇지만
   시절을 말하면 웃게 되잖아
   아무도 타인의 맞닿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도 미래를 모르지 않았던 시절을

   화면이 목소리의 주인을 번갈아 비출 때
   누군가는 혼자 일찍 취해 시절처럼 말했다

   그래도 저장공간 속에는 우리가 가득 있다며
   어느 날 가상 화폐를 꽃과 차로 교환하고
   서로가 홀로그램으로 변해 나타난다 해도
   추억은 절대로 파산하지 않을 은행이라며

   민망한 말로 어색해질 때마다
   고장이라도 난 듯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우리는 맥주캔을 약속처럼 들고 건배하지

   너는 너의 인생이 담긴 장치에서
   나는 나의 인생이 담긴 장치에서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면서

   우리 시절 저장공간의 화면은 어둡고
   아늑하게
   물들어가네

우리 시절 동호회

조온윤

2022
시, 26행에 453자. 디지털 풍화된 사진 파일 보며 추억 잠기기.


시작 기록

그때가 되면 떠올리겠지. 우리는 멀리서도 잔을 들고 건배했다고. 폭삭 늙어버린 채로 우리는 서로의 실패한 꿈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먼저 일찍 취해서 우정 운운하는 닭살 돋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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