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타임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의 일과란 친절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
   보내야만 해서
   18 to 24
   
   로이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코코 카드 주세요, 랑에게 말했다
   현재는 이벤트 기간
   새로 출시된 셀렉트 버거 세트를 사면
   신작 RPG 게임 < 애프터 셀렉트 >의 캐릭터 카드를 고를 수 있다
   랑은 주문 리스트를 확인한 뒤
   매대 수납함에서 코코 캐릭터 카드 한 장을 뽑아 건네주었다
   코코는
   차원의 지팡이를 이용해 이계의 마법으로 적을 처단하는 캐릭터
   특히 10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덕질 요소를 갖춘 카리스마가 카드 전면에도 드러나 있다
   코코보다 세 배는 더 커다란 차원의 지팡이, 크기가 커 프린팅도 잘린
   무기를
   코코는 싱긋 웃으며 들고 있다.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다
   
   저희 다섯 개 시켰는데요?
   로이에 학교 중학생들은 랑에게 짜증을 냈다
   앗,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랑은 주문 리스트를 다시 확인한다
   셀렉트 버거 세트 X 1
   셀렉트 버거 단품 X 2
   스파이시 버거 단품 X 1
   클래식 버거 세트 X 1
   적용 대상은 셀렉트 버거 세트만 해당하여 캐릭터 카드 또한 한 장임을 랑은 확인했다
   
   설명했다. 이벤트 명시 사항을. 공지의 위치를. 정확한 정보와 고객에 대한 공감을. 불편 사항에 대한 이해를. 끝으로 죄송함을
   
   아, 그럼 바꿔주세요. 전부
   
   랑이 시간제로 일하는 이 패스트푸드점은 주문을 무인 기계로 받은 뒤
   주방에 전달되는 시스템으로
   이미 주문을 들어갔으나
   랑은 메뉴를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고
   버거와 세트는 준비되고 있었다. 나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러니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데
   
   진짜 개짜증나
   
   로이에 학교 중학생들은 매대 앞에서 자기들끼리 성질을 내고 있었다
   소규모는 집단의 광기를 받아들일 최초의 수단이다
   타인의 아웃사이드 라인이다
   하지만 매장은 음악 소리가 큰 편
   소리와 소리가 서로 만나 보강간섭이 시작된다
   일시적 증폭
   소리가 겹쳐 커지는
   로이에 학교 중학생들의 불만이 지속되지는 않아 음악이 크다
   매장이 음악으로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경우
   
   중학생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테이블로 사라졌다
   
   요즘 많이 팔리죠?
   점장은 랑에게 근교에 좋은 카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주말에 뭐 하는지 묻는 사람이다
   랑의 신비한 분위기와 예쁜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네
   
   손님은 온다
   
   리시드 주세요
   코코를
   오신카를
   …
   
   셀렉트 버거 세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랑은 바쁘고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의 일과란 친절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
   보내는 것이어서
   18 to 24
   그나저나 광고를 요즘 많이 한다고 해도
   이 정도 인기라니
   
   그러니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데
   오늘은 카드가 다 떨어졌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과를 마치고서
   
   어디 방향으로 가세요?
   
   멀리 여행 다녀오려고요
   
   24시 야간 버스를 타고 랑은 여행 떠나지 않았다
   금요일이 아니었더라면 다른 이유를 댔을 것이다. 점장의 플러팅을 피하기 위해
   
   마른 컵라면 용기. 라벨지를 두른 빈 물병. 물기 없는 수세미. 열린 창문으로 공기의 전생. 화이트톤 인테리어. 그러니 하얀 침묵
   랑은 집에 돌아와
   석양이 진다
   1인칭 슈팅 게임 < 오버워치 >를 한다. 캐서디란 캐릭터의 궁극기를 쓴다. 캐서디는 말한다. 석양이 진다
   게임 진짜 더럽게 하네
   오늘도 채팅창은 평화롭다. 극찬을 들으며 새벽을 정주행하고 있다. 랑이 게임에 빠지게 된 이유
   게임은 자신을 숨기는 데 유효하며, 드러내는데 유효하다
   내일은 주말이기에 랑은 밤새 게임이나 할 생각이었으나 게임 내 보이스톡. 점장이 생각나는 목소리가
   목소리 너무 예쁘세요, 하는 탓에
   게임도 지고
   기분도 졌다
   스윗한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나 빠짐없이
   
   랑은
   < 오버워치 >를 종료하고 새벽의 환향을 본다
   불을 끈
   화이트톤 인테리어가 모니터의 144hz 빛의 분산으로 춘광사설春光乍洩*을 말한다
   
   생각 없이 킨 웹사이트에선 < 애프터 셀렉트 >의 광고가 나오고 있다
   무한 자유도 RPG < 애프터 셀렉트 >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랑은
   RPG는 혼자 하면 재미없어 안 해왔던 것인데
   이번 주말을 보내기엔 어쩌면 최적이라는 생각을. 킬링타임으로
   
   그리고 인기가 너무 많으니 한 번쯤은 좋겠지
   
   랑은 게임을 받으며 회원가입하고
   트레일러 영상을 하나 봤다
   
   그들은 영웅. 우리도 길을 걸을 수 있겠죠
   천사는 날개가 없으면 외로울까요?
   많은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빛에 다가선다
   빛은 사라진다
   
   게임이 켜진다
   커스터마이징으로 초대된다
   이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익명성 속에서
   랑은 커스터마이징 중 토끼탈을 쓰고 당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 생각도 나고
   히아신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 모습은 왠지 유머가 넘쳐 보인다
   모니터 속
   토끼탈로 정체를 숨기고 당근을 쥔 캐릭터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다른 타입의 운명으로 느껴짐
* 봄의 풍광이 문득 드러나다. 혹은 은밀한 부위를 갑자기 드러낸다는 뜻.

킬링타임

김병관

2023
시, 112행에 1783자. 그들은 영웅, 우리도 길을 걸을 수 있겠죠.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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