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Round - 꽃집 담화
 
 
 
   히네는 쉬는 시간
   자고 있는 랑을 굳이 깨워 하소연했다
   아니 남자친구가 있잖아
   멍한 상태로 랑은 히네의 싸운 얘기
   들어줬다
   
   어떻게 내가 바퀴벌레가 됐는데 바로 죽인다고 해?
   얘기를 들어보니
   요즘 유행하는
   바퀴벌레 테스트(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너 어떻게 할 거야)를 남자친구에게 물어본 모양이었다
   랑은 피곤했다
   나빴네, 나빴다. 반응해주고 자고 싶었다. 히네는
   얘기를 제대로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피곤해하는 랑을 보며
   반응이 왜 그래? 난 진지하게 물어보고 있는 건데
   화내는 동시에
   
   시간이 사과에 빚을 졌다
   
   미안
   요즘 계속 밤을 새우다 보니 피곤했나 봐
   
   쉬는 시간을 다 써 랑은 히네에게 용서를 구했다. 종이 치고 자기 반으로 돌아가는
   히네의 뒷모습에서
   랑은
   현실에 조금 지쳤다
   피곤해…
   
   [천공의 유적지 : 영웅의 시작]이 시작된 이후로 랑은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랑은 햇살이 가득 담긴 차창 밖 체육 수업을 준비하는 다른 반 애들을 오해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오기 전까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모습이
   즐겁다면
   
   랑은 생각한다. 관계는 왜 내게 해를 끼칠까
   왜 너는 굳이 쉬는 시간에 자고 있는 나를 깨운 걸까
   너는 친구일까
   
   랑은
   수업 시간 내내 깊은 잠에 들었다
   
   표정이 왜 그래? 좀 웃어요. 예쁘게 생겨선
   손님이 햄버거 세트를 가져가며 말했다
   
   점장이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 수 있는데
   
   퇴근 버스에서
   라디오
   
   현자의 다음 행보에 대해, 말씀에 대해, 창궐한 병에 대해
   
   노인들은 배낭을 메고 랑 포함 사람들을 열심히 밀치며 자기 갈 길 갔다
   
   랑은
   
   -
   
   눈에 띄고 싶지도 갈구하고 있지도 않잖아. 가만히 눈을 감은 것인데. 자는 척인데
   왜 자꾸 칼로 눈꺼풀을 위로 들어 올려
   
   잠깐
   생각했다가
   
   -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집에 오니 이상하게 정신이 멀쩡해짐을 느꼈다
   결국
   오늘도 컴퓨터 책상 앞
   < 애프터 셀렉트 > 로딩 화면을 본다
   
   친구도
   길드도
   들어와도
   아무런 인사
   없는 공간에서
   랑은
   안락함을 느꼈다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눈사람 몬스터를
   일격으로 죽였다
   눈사람 몬스터는 죽으며
   녹았다
   녹아
   고인 물이 되어
   랑은
   고인 물을
   쳐다봤다
   토끼탈이 보였다. 토끼탈은 왜
   토끼탈
   랑이 영혼에 심혈을 기울일 때
   물은 비치는 성질로
   이 공간의 현실감
   
   눈이 내리는 중
   
   랑은
   눈을 좀 맞다가
   3 Round 전용 맵으로 이동하기 위해 호루라기를 불었다. 거대한 새가 눈을 뚫고 날아와
   500개의 꽃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선별 과정의 마지막은 500명 중에서 단 2명만을 뽑는 것
   각자 자기의 꽃집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다른 유저들의 살생과 방해에 맞서
   꽃집에 들어가
   꽃집 주인 NPC와 대화의 끝을
   봐야 하는
   (꽃집 주인 NPC와 대화 도중이더라도 다른 유저는 창문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침투 또한 가능하다)
   
   -
   
   항상 이 시간에 들어오더라고?
   1 Round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집단의 인원 몇몇이
   랑이
   모습을 드러낸
   꽃집 앞에서
   큭큭
   웃었다
   그들은 랑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손을 들며 인사했다
   
   그들의 손이 잘렸다
   토끼탈에
   피가 잔뜩 튀었다. 난도질이
   4명의 시체를
   만들었다
   
   바로 죽였어야지
   알았으면
   
   꽃집 앞에는 피 웅덩이가
   그곳엔 토끼탈이
   
   랑이
   꽃집 문을 열었다
   
   꽃집 주인은 플라워박스를 만들고 있었다. 꽃집 주인은 랑을 조금 쳐다보다
   
   호흡
   언어 입력 시간에 따라
   이모티콘에 따라
   진심인지
   진심은 아닌 일이겠지만
   꽃집 주인과 만나면 정말로 현실과 마주하는 기분이고
   
   피가 좀 많이 묻으셨어요
   
   걱정된다는 듯 말하는 나긋한 톤에
   랑의 마음이 뭉그러졌다. 고작 그래픽인데 왜 하루의 위안인지

   한마디가 대화였다

3 Round - 꽃집 담화

김병관

2023
시, 154행에 1299자.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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