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은 세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나무와 숲에 빗대어 봄
 
 
 
   랑은 1급 위험 경보 사이렌 속에 혼자 있었다
   괴물이 날아간 뒤에도
   
   정신 좀 차려보라고, 군인처럼 보이는 이가 랑의 몸을 흔들었을 때 랑은 흔들리던 글자를 기억한다. ROM
   
   이 건물의 사람들은 팔뚝에 ROM이라 적힌 군복(?)을 입고 있었다. 랑은 이들의 복장을 군복처럼 느꼈으나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니어도 무슨 상관일까 싶은 랑이
   여긴 어디
   둘러봤을 때
   채도가 낮은 민트색 인테리어의 처연함을 보았다. 랑의 눈앞엔 짙은 노란색 스포츠머리를 한
   딱 봐도 단련을 엄청나게 했을 듯한 중년 남성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중년 남성이 랑을 쳐다보며,
   
   자네… 3대 몇 치나?
   
   3대 몇 치냐는 질문은 또 참신했으므로 랑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3대요?
   
   중년 남성은 핫, 웃으며
   뭐, 장난이네만
   아무래도 여기가 친숙할 것 같진 않아서 말이지.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봤다네
   중년 남성은 목을 큼큼 풀며,
   몸은 좀 괜찮은지 물었다. 랑은 몸이 괜찮았다. 정신에 대해 물었다면, 술술 뭔가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랑은 생각했다. 왜 피로가 없지? 열, 피곤함도
   무엇도 없다
   
   중년 남성은 랑을 지그시 쳐다보다 가끔 서류도 교대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주변이 다 붕괴된 건 알고 있겠고
   피해액의 규모, 충격파의 수치 뭐 그런 걸 다 떠나서도 3대 80이 안 될 것 같은 애가 멀쩡하다…
   1급 위험과 가장 가까이,
   그리고 둘은 초면이 아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자네는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
   
   -
   
   < 애프터 셀렉트 > 로그인 화면을 띄어둔 채 랑은 있었다
   신변이 멀쩡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세계 기구 직속 부대 ROM은 인간 괴인화에 맞서 창설된 부대
   1급 위험
   괴물은
   안면의 붉은 초승달을 따 ‘붉은 달’로 불린다고 했다
   
   붉은 달
   
   랑은 괴물의 입 모양을 떠올려봤다
   내게 오기 전
   무슨 말을 했던 거였어
   
   분명한 건 만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1급 위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자. 상처 없이 자리에 있었던 자. 두 번이나
   
   나는
   뭘까?
   
   -
   
   랑을 취재했던
   중년 남성 모군토는 감시 인원이 붙을 거라고 했다. 너무 불편하게 여기진 말라고, 보호이기도 한 것이니, 핫
   
   루토나 시티 랑이 있는 거주지를 멀리서 체크하는 감시자들
   
   그러나 랑은 회복됨을 느낀다
   쿨해짐을 느낀다
   열
   붕괴
   피로도
   
   무엇도 없다
   
   ‘붉은 달’을 만난 이후로
   
   -
   
   중년 남성 모군토는 사고 관련 기사는 찾아보지 말라고 했다. 굳이 피곤해질 필요는 없다고
   랑은 그 말을 따랐다
   
   다음날 학교 게시판에
   랑, 패스트푸드 점장과 원조교제? 포스팅된 글이 있는 걸 보고(악의적 편집으로 둘 사이가 애틋하게 보이게끔 만들어 놨다)
   랑은 자신을 지난하게 괴롭혀왔던 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더럽다 진짜
   다들 지나가며 툭툭 한마디의 돌을 던져도
   
   심장은 차갑게
   
   ‘붉은 달’도 쟤가 부른 거 아니야?
   죽음이 누워있지 않더라도
   
   랑은 담임에게도 불려갔다
   
   사실 아니에요
   
   랑은 핸드폰을 보여줬다. 문자 내용으로
   점장이 꾸준하게 보낸 플러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랑의 읽씹도
   
   그리고 이 사진
   자세히 보면 입꼬리가 이상하죠. 확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픽셀이 튀어요. 누가 의도적으로 바꾼 것처럼
   저는 이때 웃지 않았거든요
   8일 전이에요
   가게 CCTV에도 기록이 있을 거예요
   
   이 정도를 저는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무엇을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보여주는 일밖에 세상엔 없는 거예요
   
   지금 라이브 방송을 당장 키고 패스트푸드점으로 가도 좋아요
   가볼까요?
   
   담임은 랑이 이렇게 빠르게, 냉정하게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뭐, 그렇지 음…
   아니, 아니. 라이브 방송까지는 하지 말고 또 일이 커지니깐? 응?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할게
   몸은 좀 괜찮지? 사실 이건 확인만 해보려고 한 거야. 전해줄 소식도 있고 해서, 하하
   음
   랑아
   네가 최우수 학생으로 뽑혔다. 아무래도 규모가 좀 있는 행사다 보니
   미리 준비를 좀 할 거야. 알고 있으라고. 이거 말하려고 부른 거였어

   최우수 학생

   랑은 허울 좋은 감투라 느꼈다. 그날 별일이나 없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며
   담임과의 얘기를 마치고 복도를 걷는

   창문으로 나무에 숨어 있는 감시 요원을 본다

   랑은
   감시 요원보다 나무에 더 눈이 갔다
   나무는 숲이 될 가능성

   숨는 게 아니라 자리다

랑은 세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나무와 숲에 빗대어 봄

김병관

2023
시, 140행에 1,525자. 일원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랑은 나무와 숲을 빗대는 방식.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mail : comfortvelocity@naver.com
Instagram : @melonanea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