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피셜 : 2막 시작
오늘이지? 히네가 말했다
원목 벤치 그늘에서
축하한다고
그 말엔 어떤 악의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랑은 오늘따라 햇빛이 알 수 있게 따가웠다
불과 몇 분 전 일이다
히네는 악의적 편집을 자신이 한 거라고, 너 내가 썅년으로 만든 거라고
랑은 듣고만 있었다
넌 뭐든 쉬워 보였거든
얼굴 예쁘지
공부 잘하지
랑은 듣고만 있었다
관계에 애쓰지 않아도
모두 우러러보니까
그런 일(사기꾼의 딸 얘기)이 있었는데도 말야
그랬지?
햇빛이 침묵을 머금고 있었다
사과하려고 부른 건 아니야
히네는 랑을 빤히 쳐다봤다
네가 나를 욕하고 때리더라도
먼 과거의 일이 되더라도
미안하진 않을 거야
랑은 듣고만 있었다
원목 벤치의 그늘이
랑과 히네의 얼굴을 머금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히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 네가 무지 싫었어
-
랑은 몇 분 뒤 홀로 원목 벤치 그늘에서
하염없다
랑은 거기서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조용함을 이기는 게 방법이었을까
랑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숨어 있는 감시 요원도
없이
-
랑이
최우수 학생으로서 구령대로 가는 빛나는 걸음일 때
한 걸음
장면이 지나간다
장면은 랑이 고목에 매달려 있을 때를 그린다
랑은 자신을 쳐다보는 수만의 시선을 느꼈다
한 걸음 더
장면이 지나가면
최우수 학생으로서 랑은
자신을 쳐다보는 수백의 시선을 느낀다
계단을 오를 때. 한 걸음
상승
장면이 지나갔다
랑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이
봉을 겨우 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그날 모두가 열중쉬어 자세에서 쟤 왜 저래? 킥킥거렸고 안쓰러운 장면에 선생들은 난감했지만
랑은 상을 받은 뒤, 마이크 앞에 섰다
-
거기서 무엇을 말해야 했을까, 생각합니다
당시엔 그것이 최선이라 느꼈어도요
전교생은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다
랑은 차분히, 그러나 딱히 준비해오진 않은 말들을
해 나갔다
살아가는 건 매일
계절을 보는 일이 아닐 겁니다
비가 내리면 비를 보고. 눈을 보면 차가움을 알고
오늘은 원목 벤치 그늘에서 햇볕을 쬐었습니다
여름을 아는 것처럼요
보이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처럼
살아가는 일이 매일의 계절이라면
좋았을 거예요
살아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니까
보이지도, 다가오지도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도
사랑했어도
상처받아서 울어도
기뻐 웃어도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어서
오늘 친구와 절교했어요. 어쩌면 모두와 평생
어울리지도 않을
인생을 보내며
저는 살아갈 거예요. 여름을 아는 것처럼 있을 테니까
그래도 살아가고 싶어요
상 받았다고 자랑도 하고 싶고
감사합니다
-
랑의 전교생 앞에서의 담백한 고백은 분명 다른 효과를 주는 듯했다
말이 전부 이해 가지 않더라도
우와 뭔가 이상한데 멋진 애
참 이상한 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애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애
여러 갈래로
제 나름대로 길을 형성해내고 있었다
비난과 비웃음, 지금까지의 모욕과는 조금 다른
랑이 랑으로서
바깥에 보여준 자신
-
맞은편
건물 옥상에선 망원경으로 이를 지켜보는 가면 2인조가 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어때?
존예
그리고 말도 잘하던데요? 뭐 쟤들은 다 모르겠지만
내 딸이라서 그런가? 확실히 음,
근데 붉은 달이 저주를 없애준 건 맞나 보다. 계단 올라갈 때 생각보다 잘 버티네?
뭐… 전력은 아니긴 했지만요. 계속, 걸어놓을까요?
됐어. 이제 2막 시작인 셈이니까. 랑은 그에게 더 다가갈 거야. 키튼은 구원이 되겠지
우리는 잠시 지켜보다
쾅
비행기를 터트리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