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둘은 싸웠다
   둘은 정확히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싸웠다
   랑은 게임으로 자기 계발했다
   
   수증기 가득한 사우나탕에서
   축하 풍선이 올라오는 졸업 축하 학교 맵에서
   아이돌이 공연하고 있는 스테이지
   스타디움 뒤편 주차장에서
   
   둘은
   
   오늘은 어디서
   
   랑은 게임에 접속하면 K를 찾았다. 전패를 기록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노트에 구도를 적어가며 열심히 분석했다
   K
   권총을 든 원거리 캐릭터 피사
   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근접전은 약하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다른 플레이어와 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수업은 듣지도 않고 랑은 떠올렸다
   K와의 대치를
   권총 무기술의 근접 움직임을
   거리에 상관없이 날아오는 총탄의 궤적을
   멀리 떨어지면
   오히려 손을 쓸 수도 없어지는 스킬의 다양성을
   
   머릿속에 움직임 하나하나
   
   아르바이트 중에도
   움직임 하나하나
   
   잠들 때도
   
   -
   
   한 달 전
   원수는 외나무다리 맵에서 붙었을 때
   랑은 느낄 수 있는 격차를 느꼈다
   무엇을 해도 이길 수 없겠다는 벽을
   
   그러므로 과정이 좋았다
   부딪히고 쓰러지는 게 좋았다
   전력으로 무너지는 게 좋았다
   인정이 좋았다
   
   -
   
   랑은 오늘도 누워 있었다
   HP가 20가량 남은 상태로
   
   하늘을 보고 있다
   인조 잔디의 촉감이 좋았다
   오늘의 맵은 축구장이었다
   
   매번 극소량의 HP만을 남긴 채
   둘의 대결은 끝이 난다
   죽이면 캐릭터가 사라지니까
   
   물 마실래요?
   
   K는 생수를 건넨다. 랑은 받는다. 둘 사이에 이제 이 정도의 거리감은 없다
   랑은 바람의 이펙트를 본다
   생경하게 흔들리는 잔디의 움직임을 본다
   야외 축구장의 탁 트인 평지가 바람의 모션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줬다
   
   랑은 마침내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쪽으로
   
   랑은 누워 있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은 움직였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래픽이
   위안을 줬다
   
   평소와 달리 감정이 찾아왔다
   할 말을 하고 싶었다
   
   저는 해방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랑은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고민이 많았거든요
   저 사람은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할까
   사람들은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할까
   시간이 지나고 멀쩡한 척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옛날에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곳은 사람을 사고, 팔고
   갈취하고
   때리고
   울고
   또 그것이 통용되고
   저는 거기 서 있었어요
   
   이 게임에서 대범죄자가 되고 싶었던 건 그 마음에서였어요
   복수
   남을 탓해버린 거
   남에게 향하는 거
   그게 편하니까
   이런 식의 해방을 원했던 거 같아요
   
   어때
   패배감이?
   
   가만히 멈춰서 보는 난 어때 보여?
   
   저는 알아주길 바란 거예요
   너희가 나 미워했으니까 소심한 복수라도 할래
   
   약간 이상할까요?
   
   그래도 지금은
   당신과 싸우면서, 이런 게 다 뭘까 싶기도 하고
   
   그냥 즐거웠어요
   
   랑은 화면 밖으로도, 게임 안에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바람에 인조 잔디가 흔들렸다
   K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경찰들이 또 랑을 잡으러 왔다
   
   저놈 잡아!
   완전 평지다. 오늘은 잡는다
   
   K는 랑과 함께 있을 때
   이런 상황이 많다 보니 이제 아예 투명 망토도 구비해놓고 다닌다
   
   여기로
   투명 망토 안으로 들어오라는 K의 손놀림
   
   랑은 잠시 멈칫거렸다
   
   어서요
   K의 손은 다급했다. 랑은 가까스로 K의 투명 망토 속으로 들어간다
   둘의 흔적은 사라진다
   
   서로의 호흡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둘은 투명 망토 안에서 곁이라는 말이 되고
   
   조금 걷다
   
   이제 그만할래요
   
   랑의 말에
   둘은 멈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대범죄자는 이제 그만
   
   랑은
   투명 망토를 벗으며 안녕이라 말하지 않았다
   
   감옥에 갔다 올게요
   편지 써주실 거죠?
   
   K는 랑의 손을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랑이 두 손을 들고 경찰에게 다가가는 모습만을 눈에 담았다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심을 존중한 것이어서. 마지막이 아니란 걸 K도 알고 있으니까
   
   투명 망토는 투명의 속성을 유지했다. K는 유령처럼 랑이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랑은
   양손에 수갑을 채운 채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보지 못할 투명에게
   
   둘은 암호처럼

서로

김병관

2023
시, 170행에 1,407자. 어때, 패배감이?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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