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꽝스러운 노력
양 손목에 쇠줄을 차고
인솔되는 사람들
감염자들은
밖에 나오려면 안정제를 필수로 먹어야 해서
다들 얌전했다
그들은 축 늘어져 보이기도 했다
독수리의 사념탑
독수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랑은 노을을 뒷배경으로 하는
버스를 타러 갔다
하두
외곽도로를 달리는 7012번 버스는 노선도를 따라 루벡으로 간다
루벡에는 끝내 돌이 되어버린 2차 보이드 감염자들의 석상이 있다
끝의 장소다
랑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연 굳었던 것을 생각한다. 때는 1차 보이드
어느 날 돌이 되어버린 그녀는 땅으로 안녕을 전해야 했다
감염의 위험이 있어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못한 채 땅으로 가야만 했다
부서져야 했다
랑은
릴스에서 산산조각이 난 돌들을 되돌려내라고 말하는 복원 운동을 본 적 있다
돌은 차분했다
-
돌아올 때 버스는 길을 기억했다
랑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숲. 나무들의 잔상을 보며
죽음으로 다가선다는 건 무엇일까
형체가 흐릿해져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진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괴성을 지르는 초기 증상과 달리 말기에 갈수록 몸이 돌이 되어가는, 생기를 잃어 가는
죽음에
버스는 갈 길 갔다
-
평소처럼 돌아와 < 애프터 셀렉트 >에 접속했다
야영지의 텐트로 이동했다
마이룸이라는 기능은 자기 공간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었다
만화책을 어질러두거나 할 수 있었다
TV가 켜져 있었다
연극 무대 < 원숭이들의 왕 >이라는 영상을 틀어 놨었다. 코미디인 이 연극은 원숭이들의 왕이 바나나를 너무 좋아해서 늘 바나나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세계의 바나나를 모두 다 먹어버려 바나나가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원숭이들의 왕에겐 이제 몇 개의 바나나밖에 남지 않았다. 왕은 바나나를 먹고 싶었지만 이제 쉽사리 그럴 수는 없다. 바나나를 들었다가 다시 땅에 내려놓는 장면이 반복된다
왕이 바나나를 들면
신하들이 어어? 안 됩니다
다시 왕이 바나나를 들면
신하들이 왕의 손목을 일제히 잡으며 어어? 안 됩니다
그 장면을 랑과 K는 좋아했다. 원숭이들의 왕은 좋아하는 것이 앞에 있지만 영영 사라질까 봐 먹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이 앞에 있지만 영영 사라질까 봐
우리가 혹여 지쳐 있다면
우스꽝스럽게
노력을 하자
훗날 랑이 K의 기억을 되찾고 싶었을 때. 그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한 건 우스꽝스러운 노력일 것이다. 그게 둘의 일인 거니까. 모형 바나나를 앞에 둔 채
기억이 안 난다면 바나나를 들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