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사
 
 
 
   길드 들어올래?
   K는 ‘제발!’이란 뜻을 담아 손을 싹싹 비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해골 가면이 비굴해 보였다

   랑은 웃겼다
   나 들어갈 수 있어?

   -

   K가 소속돼있는 길드 SCENE은 입지나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SCENE의 길드 마스터 이즈사는 < 애프터 셀렉트 > 내에서 가장 바쁜 인물이기도 했다. 이즈사는 오늘도 비히 왕의 퀘스트를 깨느라 정신이 없다

   이때 K에게 온 쪽지

   신청했대

   이즈사는 잠입 도중 길드 가입 신청 리스트를 슬쩍 본다

   -

   랑은 주말을 뒹굴거리며 보내고 있다. 지금은 이즈사가 부를 때까지 대기 중인 상황이다. 만날 수 있는 장소까지 이즈사가 오는 중이다. < 애프터 셀렉트 >는 거대한 오픈 월드를 이루고 있기에 클릭 몇 번으로 이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다른 게임들과 < 애프터 셀렉트 >의 차이다. 이점이 현실성과 서사를 긴밀하게 부여한다

   이즈사는 현재 게임 내에서 퀘스트 진행 상황이 가장 빠른 인물이어서
   오고 있다

   정식으로 처음 만나는 날이다. 이즈사가 올 때까지

   랑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만화책『NANA!』를 보고 있었다

   다리를 다치고 더는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나나의 이야기. 정규시즌 꼴등팀 마지막 경기에서
   나나는 다쳤음에도 타자석에 올라선다

   그건 팬들에 대한 인사였다. 그날 투수의 공을 치고도 몇 걸음 나아갈 수 없었던 무더운 여름. 매미 소리가 경기장에 선명히 머물렀을 때. 나나는 떠올렸다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벗어날 수는 없는.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나의 담담함에 대하여

   공감대가 느껴져 랑은 잠시 만화책을 덮었다. 컴퓨터 화면을 봤다. 마이룸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곳엔 해골 가면과 토끼탈이 앉아 있었다. 실시간 상황 이모티콘을 켜두고 둘은 마이룸에서 한가로웠다
   랑의 이모티콘은 만화책 표시. K는 구름 표시. 산책하는 중

   디스코드로
   귀는 열어두고

   각자 할 거 하다
   할 말이 있을 때

   음성으로 말하는

   크리스탈 크리스탈의 작품을 보면 조금 담담해지는 것 같아
   랑이 말했다
   나도. 그래서 과하지 않은 위로가 필요할 때 그 사람의 작품을 찾아보게 돼
   K의 음성에는 오토바이 지나는 소리가 같이 묻어져 나온다

   랑은 검색창에
   크리스탈 크리스탈을 쳐본다

   예술가 크리스탈 크리스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엔 만화에 도전하고 싶다 말하는 몇 년 전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NANA!』에 대해 크리스탈 크리스탈은 이 만화책을 오직 한 사람에게 바치고 싶었다고 밝혔다

   낭만적이네

   그리고 쪽지가 왔다

   비 내리는 갈대숲으로 지금 이동하시면 될 것 같아요!

   -

   비 내리는 갈대숲이다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금방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조성돼 있다. 이즈사는 누더기 갈색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다. 갈대숲의
   보호색을 노린 것처럼

   처음 본 건데 이렇게 음침한 모습이라 죄송해요

   이즈사는 요정을 다루는 캐릭터. 에피나
   특유의 연두색 동공이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K가 말한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 거

   쉿, 온다
   이즈사는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셋은 갈대숲에 앉아 조용해졌다. 스산한 바람 소리가 갈대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

   가방 메고 왔다. 그는 가방 안에서 검은 봉투를 꺼내다 땅에 두었다
   다시 가방을 메고 되돌아갔다

   이즈사는 입에 계속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그리고 10분 뒤
   주위를 경계하며 오는 학생이 보였다

   학생은 검은 봉투를 찾는 듯했다

   이즈사는
   조용히 말했다

   가자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이즈사가 갈대숲을 헤쳐가는 걸 랑은 의식의 정직함 속에서 구경했다

   학생이 소리 하나 없이
   제압당했을 때

   눈이 풀린 학생을 랑은 바라봤다

   학생은 중얼대고 있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
   선생님이! 시켰어요
   여기에 오면 나아질 거라고… 
   그랬어요… 정말이에요… 정말

   학생은
   비 내리는 갈대숲에서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사실은 다 거짓말이라고. 이즈사의 다리를 붙잡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랑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살아가며 느끼는 위화감

   그가 한 명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즈사

김병관

2023
시, 141행에 1,498자. 길드 들어올래? 제발! 🙏💀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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