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환상
 
 
 
   학생의 이름은 묘진
   
   묘진은 이즈사의 다리(정확히는 발목)를 잡고 덜덜 떨면서도 흘긋흘긋
   해골 가면과 토끼탈을 보았다
   
   그들을
   중계 화면에서 본 적 있었다
   TV쇼
   첫 번째 서바이벌 시즌 [천공의 유적지 : 영웅의 시작]을
   그들이
   결승전까지 보여줬던 에피소드들
   
   화제였었다
   
   둘이 맞붙는 결승전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거 다 주작이잖아
   학교에선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애들도 있었다
   
   하긴
   저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그들의 소식을 들으며
   닿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하여
   
   억울함을 갖고 있었다
   
   나도 잘 살고 싶다
   
   -
   
   그들이 앞에 있던 것이다
   
   해골 가면과
   토끼탈이
   
   그들에게 손을 대면
   나를 더럽다 생각할 거야
   죽여버릴… 거야
   학생이
   처음 보는 이즈사의 발목을 잡았던 이유는 이랬다
   
   비 내리는 갈대숲에서
   
   일단 여기 너무 음침하다
   얘 좀 진정시켜야 할 것 같네
   
   이즈사가 입을 열었다
   
   -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엠비언트 음악이 들리는
   주인이 대낮부터 졸고 있는 장사 안되는 곳이었다
   
   이즈사는 K와 랑을 만나기 이전부터
   켜둔
   옵저버의 위치를 살짝 조정했다
   (옵저버는 게임 내 현상을 거짓 없이 기록하는 기계로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환상 능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이즈사가 가지고 있는 옵저버의 경우 게임 내에서 단 하나뿐인 최고 등급 아이템으로 어떤 경우에도 진실만을 비춘다)
   
   음료 나오면 시작하자
   
   -
   
   아무튼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즈사는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 왜 갈대숲에서 누더기 갈색 망토를 쓰고 있었는지
   
   자신은 현재 비히 왕의 퀘스트를 진행 중이며, 이것은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고유 퀘스트로
   그중
   은연중에 유통되고 있는 ‘어떤 물질’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왕의 얘기를 듣고
   
   오게 되었다
   
   다중적으로 진행되는 비히 왕의 퀘스트는 오픈 월드라서 이곳저곳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에 시간이 무지 걸리지만
   
   마침
   
   비 내리는 갈대숲은
   다 같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곳이라서
   
   오게 되었어요. 얼마 전, 갈대숲에 제보가 들어왔었거든요. 수상한 자가 서성인다고
   
   공식적으로 말할 때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이즈사를 바라보며 K는 생각했다
   여기 파리가 왜 이렇게 많지
   
   -
   
   파리가 얼굴에 날아들 때면
   손을 휙휙 거리며
   
   얘기는 이어졌다
   
   비히 왕에 대한 얘기를 들은 뒤로
   묘진은
   이즈사를 다르게 보게 됐다
   
   비히 왕과
   개인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이라니…
   
   그러나 이 경외감과는 반대로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들이 자신에게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어쩌면
   다름을
   
   더 친절하니까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주는 것에 따스함을 느꼈다
   
   학생은 파리를 쫓아내며, 자기 얘기하는 이 분위기가 웃기면서도 편했다
   말도 조금은 덜 더듬게 됐다
   
   -
   
   학생은 ‘어떤 물질’에 대해
   
   밀딜이라 불리는 이 물질은 환각 효과가 있는 마약으로 극도의 쾌락을 얻고 싶은 이들이 위덴 지역에서 수입한 물질임을 밝혔다. 차세대 마약, MZ 세대 마약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과도하게 흡입할 경우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소문이 있다…
   
   이때 랑이
   위덴이면 실제 지역 이름이네. 연관이 있을까요?
   
   물었던 것을
   이즈사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하듯
   말을 흐렸다
   
   아마 갖다 붙였을 거야. 이 게임은…
   
   그나저나 어째서 그런 소문이 있는 거야?
   이즈사는 급히 화제를 돌리려는 것처럼
   묘진에게 물었다
   
   음… 그건 말이죠. 환각의 끝에… 악마가 있다고 해요. 악마와 마주치면 악마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고 해요. 당신은 내가 보이는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상태인가
   
   나는 사라지고 싶은가
   이곳에서 떠나고 싶은가
   
   악마와의 대화 이후… 돌아온 자들은 모두 그래도 살고 싶었다
   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요
   
   실제로… 사라진 이들은 모두 우울해 보였다고
   들었거든요
   
   -
   
   그래서 마음에 병든 사람들이 찾는 약이기도 해요
   밀딜은
   
   여기까지 말한 뒤 묘진은 자신이 시킨 트로피컬 크러쉬!를 한 모금 마셨다
   
   한번 해보고 싶은데?
   이즈사의 말에
   
   K가 빤히 쳐다보았다. 뜨악한 표정을 실제로는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즈사는 생각했다. 해골 가면, 육안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퀘스트] 완료도 됐거든
   
   이즈사는 완료되었다는 표시로 반짝거리고 있는 퀘스트 창을 봤다. 완료 버튼을 누르자 새 퀘스트로 갱신되었다

   [퀘스트] 밀딜을 흡입하자
   어떤 물질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밀딜을 더 파헤치세요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흡입해보라고 하기도 하니깐, 아하하…
   
   왠지 갑분싸된 분위기를 뒤로 하고
   이즈사는 묘진에게 검은 봉투를 얻어 저 바깥으로 나갔다. 음습한 골목에서 한번 맛만 보고 온다고 얘기했다
   
   묘진은 끝까지 말렸다
   
   한번 흡입하면
   정말
   인생 망한다고
   
   이즈사는
   검은 봉투를 흔들거리며
   
   빙긋 웃었다
   
   너는 했는데
   인생 안 망했잖아
   
   -
   
   묘진은 어떤 감정을 참았다. 창문을 보고 있었다. 이즈사가 나가서
   
   엠비언트 음악이
   공간에 조용함을 덧칠했다
   
   가게 주인은 여전히 졸고 있었다
   
   파리가 얼굴에 가득 달라붙었는데도
   
   -
   
   괜찮아요?
   다들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이즈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워낙 적게 해서 그런가? 아무 일도 없네
   
   그리고
   
   또 퀘스트 바뀌었다!?
   
   가자, 가자
   일단 나가자
   
   그들은 나가서
   
   뜨거운 햇빛의 거리를 걸었다. 파리가 달라붙지 않는 거리였다. 별 시답잖은 농담에도 묘진은 웃을 수 있었다. 웃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묘진이 그들의 뒷모습을 약간은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때. 삶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옵저버는 이 모든 일을 기록하였고

기록과 환상

김병관

2023
시, 244행에 1,996자. [퀘스트]를 수락합니다.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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