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34_크루슈
 
 
 
   달라
   다르다고
   
   랑은 생각했지만
   
   과연 다른가
   
   그래픽 세계의 이야기는 유저와 NPC를 어떻게 가르는가
   
   합목적성으로
   
   -
   
   빈 축구장. 가만히 있는 잔디들
   정적
   
   뻐꾸기 34_크루슈가 연신 내뿜는 담배 연기만 움직임을 가져갔다
   
   다음에 올 말을 기다리면서
   
   -
   
   그럼, 여기에 나온 이유는?
   약간은 씁쓸해진 분위기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이즈사였다
   
   글쎄
   죽으려고?
   
   분위기가 조금 더
   공기에 압류되기까지 1초가 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뻐꾸기 34_크루슈는
   주변 반응을 살피다 담배 피우는 손을 잠시 뗐다
   
   분위기 조금 너무한데? 나름 진지하다고?
   
   뻐꾸기 34_크루슈는 [천공의 유적지 : 영웅의 시작] 3 Round 꽃집 담화에서도 누군가 기다린 적 있다. 뻐꾸기 34_크루슈는 꽃집에 한창 앉아 기대하고 있었다. 뻐꾸기 34_크루슈의 꽃집에
   끝끝내 사람은 오지 않았다. 3 Round 종료 알림에
   문을 열어보니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풍겨왔다. 시체들이 보였다. 피 웅덩이를 본 적 있다. 3 Round 종료 시점에
   
   나는 < 외부인 >을 기다리고 있었지. 웃기게도 < 외부인 >은 늘 우리의 ☐을 ☐☐가니까. 나는 ☐☐기고 싶었던 거지. ☐☐당하고 싶었다. 이곳에서의 일은 이제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궁금한 걸 다 물어보면
   그 말을 해주라
   
   뻐꾸기 34_크루슈는 랑에게 시선을 던지며,
   
   너와 만났던 그 사람을 어떻게 숲속으로 보냈니?
   
   -
   
   이즈사가 뻐꾸기 34_크루슈에게
   500명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일했던 공장에 대해 묻고 있을 때
   
   랑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얼굴은 같을지라도 꽃집에서 만난 크루슈랑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다
   더 이상 대화에 참여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비꼬기만 하고 중요한 말은 다 흐리고.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눈길도 주지 않았다
   
   뻐꾸기 34_크루슈는 자신의 농담에 삐진 랑의 모습을 보며 큭큭 거렸다
   담배 한 대를 또 꺼냈다
   불을 붙였다
   벌써 여덟 개비를 연달아 피우는 것이었다. 라이터 소리가 익숙해질 때
   
   공장
   500명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일했던 공장
   거기서도 담배를 태웠지
   쉬는 시간은 따로 없고
   공장 뒤에서
   잠깐
   햇빛을 볼 수 있던 우리는
   거기서도 말을 하지 않았지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여기서 열차로 20분. 얼마 안 가면 안개 도시 역 폐공장 단지가 나오는데,
   
   어
   
   뻐꾸기 34_크루슈의 입에서 나오는 담배 연기가 아닌
   검은 연기가 그의 몸으로부터 피어났다. 신발 쪽부터 형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너희를 만난 건 잘한 일 같네
   왠지 그런 예감이 들었었거든. 오늘 나는 어떤 식으로든
   없어진다
   
   몸이 검은 연기로 피어올라 소멸하는 모습에서 뻐꾸기 34_크루슈는
   말없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랑에게
   
   그러니까 표정 풀라고
   
   말했다. 랑은 누군가 사라지는 모습을 또 바라만 보게 됐다
   뻐꾸기 34_크루슈가 소멸해간다
   
   손이 없으니까
   담배도 못 피우네
   
   검은 연기가 느릿하게
   뻐꾸기 34_크루슈를 섭식한다
   
   자세한 ☐☐을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
   
   연기의 종착지가 뻐꾸기 34_크루슈의 얼굴을 향해간다
   
   그렇게… ☐☐☐☐☐되어 있나 봐
   
   하나의 삶이 바스러져 간다
   얼굴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뻐꾸기 34_크루슈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형체와 함께
   여기 남아 있었을 때
   
   이곳을
   구해줘
   
   필터링 없이
   닿았던 유언
   
   실은 말하고 싶은 거였다

뻐꾸기 34_크루슈

김병관

2023
시, 123행에 1,210자. 그렇게… ☐☐되어 있나 봐….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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