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아가는 손
열차는 폐공장 단지로 향한다
안개 도시 역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더 짙다
랑과 이즈사는 나란히 열차의 좌석 A-23, A-24에 앉아 있다
나란히 앉아 그들이 바라보는 건 빈 좌석이다
열차에 둘뿐이다
키튼이 병원에서 연락이 와 게임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열차에 타기 전
엄마가 갑자기 심하게 아프셔서 가봐야 한다고
원래 이즈사의 계획은 랑을 옆에 앉힌 뒤
정면의 키튼을 놀리는 식으로 친밀도를 올리려 했는데
앞에 빈 좌석뿐이라니
열차에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둘만 찰싹 붙어 있는 것이라니
이즈사는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려
광대 짓을 시작한다. 조그마한 요정들을 소환해
저글링을 보여준다
오
랑이 흥미를 보인다
사실
요정들이 자발적으로 이동해 저글링처럼 보이게 하는 기행이다
요정들이 돈다
서른 마리까지 소환한 이즈사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다 페이크지만
그렇기에 어이없고
요정들만 머리가 어지러워 열차의 빈 좌석에 찾아가 쓰러졌다
요정들은 머리를 짚고 있다
악덕 사장님…
랑의 반응에 이즈사는 소리쳤다
아니야!!
요정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위기가 나아져 둘은 이것저것 얘기 나눴다
아, 맞아. 묘진한테 메시지 하나 보내놔야겠다
이즈사는 홀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통업자는 잘 만났어. 우리는 지금 안개 도시 역으로 가는 중
잘 지내고 있어
약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좀 참아보고
일 마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U^
묘진에게 칼답이 왔다
별일 없어서 다행 다행입니다. 맛있는 건 이 근처에 새로 생긴 피자집이 있는데
괜찮은 듯해요. 다들 피자 좋아하시면
한번 물어봐 주세요
그럼 건강하게. 안녕
피자 좋지. 피자 어때?
이즈사가 랑에게 묘진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랑은 괜찮다는 표현을 하며
다른 생각의 길로 빠진다
‘건강하게’
랑은 키튼을 떠올렸지만, 온라인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걱정이 몰래 몇 킬로미터를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좋아하는 건 뭐야?
랑은 걱정을 잠시 넣어두고
만화책. 만화책 좋아해요
후. 『슬램덩크』는 꼭 봐라…
오 봤죠. 당연! 만화 좋아하세요?
당연하지
둘은 만화 얘기로
그건 그 부분이 좋았다느니, 그 캐릭터가 멋지다느니
서태웅이니
송태섭이니
강백호니
덕질을 하다
『NANA!』에 대하여
다리를 다치고 더는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나나의 이야기에 대하여
작가 크리스탈 크리스탈에 대하여
랑이 흥분해 칭찬할 무렵
열차가 안개 도시 역에 도착했다. 이즈사는 굳이 크리스탈 크리스탈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생각했다. 자신에게 < 애프터 셀렉트 > 클로즈베타 초대 코드를 줬던 크리스탈 크리스탈.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원흉에 대해. 자신만 유저였던 그 시절. 몇 년의 시절에 대해
랑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탈 크리스탈은요.『NANA!』란 작품을, 이 만화책을 오직 한 사람에게 바치고 싶었다고 해요
둘은 열차에서 내려
안개 도시 역을 걸었다. 옆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그래?
그럼 손잡을래?
언뜻 맥락 없어 보이는 이 대화에 랑이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 건 아무래도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갈 길이 그래서
이즈사는 랑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 사람에게 바칠 안개는 아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