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공장에서
 
 
 
   랑은 수면 음악을 들은 적 있다. 컨테이너에서 혼자였을 때
   기포소리가 들리는 수면 음악은 나른했다
   최대 음량으로 키우지 않아도 생각에 연루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랑을 미워했을 시기
   잠을 자고 또 자면
   모자랄 때까지 자면
   정신이 어쩔 수 없이 또렷해지는데 사람들이 다 랑을 미워했을 시기
   음악은 미워하지 않았다
   
   안개 속을 걸으면
   예전 기억이 났다
   안개 도시의 음악은 수면 음악처럼 평화로워서
   
   손으로 이어져 있어도
   옆 캐릭터가 잘 안 보이는 이 땅에서
   
   이즈사와 랑은 손을 잡고 나아간다
   안개를 뚫고
   
   K 어때?
   
   고요함이
   에? 하고 고개를 치켜들며 사라진다
   랑의 손이 바삐 움직이지만 딱히 채팅을 치진 못한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네? 어떤. 뭐요?
   고장 난 로봇처럼 대답해버렸다
   이즈사는 랑의 반응이 귀여웠는지
   둘이 맨날 붙어 있잖아. 새벽에도. 그래서 뭐 하는데?
   뭐 할까
   랑은 달력의 지난날이 K가 전부여서 떠올리지 않아도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그냥 뭐 놀죠! 이것저것
   이즈사는 안개를 헤쳐 나가다 랑을 더 놀리고 싶어졌다
   안개 속에서
   둘은
   멈추고 얘기하고
   손을 잡고 있으면서
   
   둘은 조금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이즈사는 랑을 신나게 놀리다가
   
   엌
   이즈사의 요정 캐릭터가 뭔가에 부딪혀 화면이 흔들렸다. 거대한 벽이었다
   뻐꾸기 34_크루슈가 말한 공장일까? 싶어 둘은 벽을 더듬으며 움직인다. 한참을 더듬다 문을 찾을 수 있었다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 어수룩한 문의 구동이 후각과 맞닿자
   일제히 캐릭터들의 컨디션 상태가 –1 하락했다
   냄새는 즉각적이고 시각은 어둠을 뒤따라오는 중이다
   딸깍딸깍
   이즈사가 전기 스위치를 찾아낸 소리다. 오래전 폐쇄된 곳이라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즈사가 라이터를 켰다
   
   불에 그슬려 보이는 어둠
   
   컨베이어 벨트 위
   아무렇게나 나뒹굴어진 꽃들
   포대
   바닥에 흩뿌려진 흰 가루들
   
   둘은 같이 둘러보았다
   
   랑은 꽃을 주워보았다. 현실 세계에서 많이 본 꽃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설명을 읽어봤다
   
   [가루가 묻은 월계화] : 월계화에 마약 밀딜이 코팅되어 있다
   
   꽃을 들고
   슬쩍 보이는 공장의 벽면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병아리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 게임의 총괄 디렉터 오트보르자의 사진이
   성장 일기처럼
   작았을 때
   사춘기였을 때
   엄마에게 혼났을 때
   대학교 졸업했을 때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랑은 자신이 이즈사를 만난 뒤의 어떤 위화감이 이 이야기의 시작에 존재할 거라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 뻐꾸기 34_크루슈와 숲속으로 사라진 크루슈. 하두의 안개. 뒷세계의 폐공장 단지. 월계화. 그리고 감옥 수감 중에 보았던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
   현재가
   
   이곳에 있다고
   
   -
   
   다음에 또 보자고-
   
   -
   
   사람들이 다 나를 미워했을 시기
   사기꾼의 딸이어서
   날달걀을 맞고 돌아온 집
   그 당시
   냉장고에 붙어 있던 메모
   엄마의 깔끔한 필기체가
   이 공장의 흐트러진 물건들과 닮아 있네요
   
   -
   
   비약인 걸까
   랑의 자신이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 떨림은 물론 손을 잡고 있던 이즈사에게도 전해진다
   이즈사는 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이때
   
   짝짝짝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에 그슬려 보이는 어둠
   
   이제는 어엿한
   양복을 입은
   병아리가

폐공장에서

김병관

2023
시, 120행에 1,139자. 월계화를 보며 떠올린 사람.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mail : comfortvelocity@naver.com
Instagram : @melonanea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