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스마트한 이미지였다
   평소 그가 말하는 것이나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 저것이 인텔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화면의 병아리만 유명했다
   실제 그의 모습을 아는 이가 없는 만큼
   소문만 무성했다
   어디 보안국 소속이라느니
   10대 천재 해커라느니
   외계인이라느니
   진위를 알 수 없는 얘기들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둠 속에서 박수를 짝짝짝 치며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등어반크림수프반. 그리고 CARROT RABBIT
   당신의 첫 번째 서바이벌 시즌 [천공의 유적지 : 영웅의 시작]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지요
   항상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랑에게 꽃을 건넨다. 월계화였다
   
   곧 플라워데이니까요. 오트보르자는 꽃을 건네며 음흉하게 웃었다
   하지만
   건넨 팔이 그대로 굳어 있게 된다. 랑이 꽃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꽃을 받긴 받았다
   그대로 오트보르자의 얼굴을 향해 던져졌을 뿐이지만
   
   꽃잎이 흩날렸다
   
   그것은 즉각적 반응이었다. 조롱과 꺼림칙함이 건네는 꽃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오트보르자는 무릎을 꿇고 꽃잎을 주섬주섬 손바닥에 주워 담으며
   꽃을 건네고 거절을 당하다니
   저는 너무 슬퍼졌답니다
   우는 이모티콘을 띄우는 모습에 
   
   랑은 할 말을 잃었다
   코팅된 월계화
   짐작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게임인가?
   게임은 무엇인가?
   
   한 가지 가설 : 이 게임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가?
   
   …
   
   랑은 한 가지 가설을 세우고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머리가 왜인지 지끈거렸다
   지금 이 상황이 수레라면 기억은 그 안에서 덜컹거리는 물품들
   월계화의 효능을 설명하던 뉴스의 아나운서, 꽃을 주고받는 교실의 아이들, 게임 속 공장에서 500명의 크루슈가 같은 티셔츠를 입고 꽃에 코팅을 하고 있다. 플라워데이, 2차 보이드, 붉은 달과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히아신과 비었던 컨테이너. 관련 없는 이미지들이 서로 악수한다
   랑은 실제로 머리가 너무 아파 화면을 쳐다보지 못하였다
   
   아 흠흠… 혹시 머리가 좀 아프신가요. 말이 없어지셨는데?
   오트보르자를 낄낄거리고 있었다
   랑은 그의 채팅에 구역질이 났다. 화장실에 가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수레가 덜컹거린다
   언덕을 내려가며 수레가 덜컹거린다
   전속력으로 수레가 밑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물품들을 다 토해내고
   수레만 홀로 언덕 밑으로
   
   탁
   오트보르자가 손을 튕기며 핑거 스냅 자세를 취했다
   
   랑은 머리가 갑작스레 상쾌해짐을 느꼈다
   하아…
   현기증 이후 변기의 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물이 고여 있었다
   지쳐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스피커로
   목소리가 전해진다
   
   그냥 장난인 겁니다. 장난. 다들 왜 이렇게 진지하신 거예요

경계

김병관

2023
시, 79행에 992자. It's just a joke. joke. Why is everyone so serious?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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