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깝죽댈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저 병아리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거라고 양복 쫙 빼입은 거 봐 한차례 고통의 순간을 보내니 랑은 현타 비슷한 느낌으로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병아리가 무반주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발라드까지 열창하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전혀 유쾌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스크린샷 버튼을 눌렀다 찍히지 않았다 총괄 디렉터의 진실.jpg 이런 글을 올리려던 건 아니었다 단지 너무 역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크린샷 버튼을 누른 건 저장으로의 기능을 바란 게 아니라 시간의 분쇄를 확인하기 위해
스크린샷을 찍어보았다 찍히지 않았다
잘 안 찍히죠? 노래를 부르다 말고 오트보르자가 말했다. 마치 랑이 뭘 하는지 훤히 안다는 듯 어떤 심정인지
그냥요. 저도 나름 고충이 많았거든요 이때를 위해 달려온 저의 고난을 누가 알아주려나요 그저 해방이라고나 할까요? 춤이나 추고픈 겁니다. 차차차. 이게 최근에 배운 스톰프라는 기술인데요?
오트보르자는 기술을 시현해내고 있었다 백댄서와 비트가 어느새 자연스레 게임에 침입한다
점차 시끄러웠다
…이게 이즈사는 혼잡한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을 담아 채팅에 전했다 …이게 엔딩이야? 당신이 춤추는 걸 바라보는 게 엔딩인 거냐고 이즈사는 묻고 있었다 소리가 시끄러웠다
다 같이!
오트보르자는 소리 지르며 신나 보였다. 폐공장의 어두움이 다 지고 남은 건 흥겨운 춤사위뿐 이즈사와 랑은 눈이 마주친다. 둘은 고개를 끄덕인다. 랑은 당근을 꽉 쥐었고 이즈사는 요정들을 소환해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둘은 춤의 선율 사이로 달려들었다 소리로 다가가는 검사 캐릭터 리시드와 요정 캐릭터 에피나의 합동 공격이 폐공장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정확히 둘의 합동 공격 1초 뒤
따흑 잠시만… 잠시만요…
오트보르자는 신음하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아파 아프다고…!
그는 온몸이 절단된 채 절규하고 있었다 랑과 이즈사는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게 총괄 디렉터? 전투력은 그렇다 쳐도 이 추한 모습은 무엇인가 스크린샷을 찍어보았다 찍히지 않았다
그가 피의 웅덩이 속에서 몸부림치며 점차 움직임이 줄어들 때 마지막 말 또한 조용히 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무슨 소리세요 …엔딩이라뇨 이제 겨우 시작인 건데 양복을 입은 병아리 남성이 피 웅덩이 속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오트보르자가 죽었다
시작
오트보르자의 말을 끝으로 폐공장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랑과 이즈사는 건물의 무너지는 잔해 사이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거대한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랑은 그 눈을 보며 전에 미노타우로스를 공략할 때 봤던 눈임을 그 거대한 눈의 보스임을 알아차렸다
보스전의 시작이었다
스크린샷을 찍어보았다 스크린샷이 찍히고 있었다
보스전
김병관
2023
시, 98행에 1,030자. 파티 구함, 보스몹 잡으러 가실 분.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