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전 2
 
 
 
   훗날 이 이야기 목격담은 빛의 공간을 보았다는 게시글에서 시작된다
   저기 문 보임?
   게임 내 스크린샷을 찍고
   그림판의 펜을 이용해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해놨다
   확실히
   있다
   빛의 공간이
   하늘에 떠 있는 문과 같았다
   강렬히 빛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저게 뭐 어쩌라고요? 싶은 느낌이겠지만
   고인물 유저들은 저 공간이 무슨 의미인지 단숨에 알아낼 수 있었다
   < 애프터 셀렉트 >의 트레일러 영상에서
   많은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빛에 다가섰다
   
   캐릭터는 빛을 머금고 사라진다
   
   -
   
   여기저기서 찍힌
   작고 미약한 것이었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공간으로
   빛의 공간으로
   문으로
   
   들어간 캐릭터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싸움이 끝난 뒤
   
   -
   
   랑과 이즈사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거대한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눈은 눈
   다른 모습이 더 있는 것이 아닌
   눈은 눈
   
   눈
   앞에 선 두 명의 용사가 있었다
   
   눈은 공격하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었다
   
   응시하듯
   탐색전을 벌이는 듯
   
   랑은 그러나 압도되진 않았다. 혼자였다면
   조금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옆에
   같은
   눈높이로 서 있는
   이즈사의 존재가
   우리는 지금 보스전에 같이 임하고 있다고
   잘
   모르겠지만
   최종전인 것 같다고
   이 뒤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눈앞에 있다고
   
   -
   
   그 용기가 검을 들게 했다
   다가가게 했다
   당근을 쥐고
   토끼탈은 눈에게 다가간다
   눈은
   여전히
   가만히
   있다
   베였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허공으로
   피가 흐드러졌다
   
   요정들도
   뒤이어
   전투 태세를 갖췄다
   
   이전에
   오트보르자를 베었던 것처럼
   둘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맞춰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눈은 상처가 났다
   눈은
   눈을 감았다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화면에 어둠이 찾아왔다
   
   -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야
   나는 빗속에서 새의 날갯짓으로 돌아다닌다
   연기하는 배우처럼
   
   당신은 비에 젖은 새인 것 같았어요
   그건
   누가 말한 거였더라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나는 돌을 맞았다
   
   발코니에서
   엄마가
   
   티타임을 가질 때
   야구 배트로
   뒤통수를 친 적 있다
   나는 2층의 높이에서
   
   떨어졌다
   
   고목에서
   떨어졌다
   
   이후로
   
   나는 아마 되도록 멀리 두 다리로 걸었으며
   
   나는 아마 되도록 멀리 두 다리로 걸었으며
   
   나나는 다쳤음에도
   타자석에 올라선다
   
   다리를 다치고 더는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나나는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여 지쳐있다면
   우스꽝스럽게
   노력을 하자
   
   영영 사라질까 봐 먹지 못하는
   
   좋아하는 것이 앞에 있지만
   사라질까 봐
   
   먹지 못하는
   
   미온수 한 병을 마시고 봤던
   시티 라이트
   
   -
   
   어두운 화면에서 랑이 깨어난 건 이즈사가 흔들어서
   랑을 톡톡 치며 괜찮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아마 환술계인 것 같아
   이즈사의 에피나 캐릭터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랑은 자신의 캐릭터도 땀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헛것을 보여주며
   가짜를 보여주며 혹은 진짜를 보여주며
   
   정신 착란 공격을 하는 듯했다
   
   끔찍하다
   오트보르자와 상대했을 때 화장실을 갔던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눈은 여전히 눈
   눈
   앞에 선 두 명의 용사가 있었다
   
   눈은 공격하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었다

보스전 2

김병관

2023
시, 185행에 1,104자. 그것이 삶이라고 해도.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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