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전 3
 
 
 
   가만히 있던
   보스의 눈을 바라보니
   
   급작스레
   목이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랑은
   실제
   의자에서 떨어지게 된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는 상황
   죽는다는 고통만이 머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프다
   
   괴롭다
   
   점차 생이 저물어간다는 느낌만 선명했다
   
   이때
   랑이
   몸을 바닥에서 버둥거리다
   컴퓨터 화면으로 본 장면은
   
   이즈사가 단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토끼탈을 쓴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등어반크림수프반. 그리고 CARROT RABBIT
   당신의 첫 번째 서바이벌 시즌 [천공의 유적지 : 영웅의 시작]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지요
   항상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꽃을 건넸다
   
   랑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꽃을 받아들었다
   
   멀뚱히 서 있었다
   
   오트보르자는 당황한 듯했다. 전처럼 음흉하게 웃지도 않았다
   
   …화 안 내주세요?
   오히려 화를 안 내서 섭섭하다는 듯 삐져있었다. 양팔을 꼈다
   
   랑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분명 이전의 상황이다
   흔히 회귀라는 영역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일이 설명되지만
   
   과연 회귀일까?
   
   이번에
   오트보르자는 춤을 추지도
   깝죽거리지도 않았다
   
   양팔을 낀 채 가만히 있었다
   랑도 가만히 있었다
   
   랑은 이즈사를 쳐다보았다
   
   이즈사가
   자신의 목을 향해 단도를 뻗는 순간이었다
   
   -
   
   이후
   몇 번을 죽었는지 모르겠다
   
   죽으면서
   알 수 있던 건 점차 과거로 세이브 포인트가 옮겨진다는 것이었다
   
   뭘 해도
   죽기만 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랑은 생각했다. 정신이 소진되어 갔다
   
   -
   
   좁은 컨테이너 안이다
   히아신은 잠시 가만히 있다 말했다
   
   점이나 보러 갈래?
   
   빨간 천막 예언자를 만나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점 본 적 있어?
   히아신은 말했다
   
   랑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점을 보면 좀 잡념이 사라지더라
   
   히아신과 랑은 천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빨간 천막 예언자는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천막 예언자는 랑을 지긋이 쳐다보다
   말했다
   
   오랜만이네?
   
   이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랑은 생각했다

보스전 3

김병관

2023
시, 111행에 748자. 응, 오랜만이야.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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