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담
게임에 접속하니 어질러진 방 안이었다. 바닥에 컵이 깨져 있고 쓰레기가 흩뿌려져 있다. 창문에 커다란 거미줄이 펼쳐져 있다. 큰 거미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창문을 통해선 밖을 볼 수 있었다. 좀비들이 창궐한 모습이었다. 망겜의 흔적이랄까. 오랫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은 탓에 무한 자유도로 좀비 게임이 되었다는 소식도 확인했었다
좀비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몇 걸음씩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멈춰 이따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키튼은 자신의 캐릭터를 확인해봤다. K라고 쓰여 있었다. 스텟창도 켜보고 장비도 확인해봤다. 방 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선 해골 가면을 쓰고 권총을 든 자신의 캐릭터를 볼 수 있었다
캐릭터는 키보드의 조작에 따라 움직였다
방에서 나가 필드로 향했다
좀비들이 새로운 움직임에 반응했다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좀비들이 해골 가면을 툭 하고 쳐댔다. 툭. 툭. 그들은 그것이 시스템이라는 듯 일정 간격으로 쳐댔다
데미지가 들어오진 않았다
키튼은 움직여 도시를 걸었다. 좀비들이 따라왔다
몇몇 유저들은 좀비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군단을 꾸릴 계획을 하는 듯하다. 몇몇 유저들은 일부러 좀비에게 감염당해 좀비 플레이를 즐기는 듯하다. 좀비 플레이에 관한 글들은 인기가 있었다
아포칼립스? 좀비물?
키튼은 망겜 < 애프터 셀렉트 >를 며칠 플레이했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회사에선 직장 상사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다. 플레이를 밤새 해서 생긴 결과물이었다
확실히 재미있었다
키튼은
자신이 이 게임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키튼이 근래 < 애프터 셀렉트 >에서 한 플레이는 다음과 같다
따라다니는 좀비들을 데리고 한 실험
1. 활동 범위에서 벗어나기
→ 좀비들은 어떤 일정 범위에 속해 있는 듯하다. 자신만의 활동 범위. 때문에 설정된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자신이 본래 있던 곳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2. 지적 활동 해보기
→ 그들이 여전히 캐릭터 때리기를 즐기고 있을 때 책을 읽어보았다. 때리는 것에 반응하지 않고 독서를 하고 있으니 기겁하며 도망가는 몇몇 좀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은 뒤 토론까지 진행하려 했을 땐 주위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3. 성장시키기
→ 몇몇 유저들이 커뮤니티에 올리는 좀비 육성을 따라 해봤다. 특정 행동에 따라 좀비들은 다르게 성장했으며, 종족에 마냥 속하기보단 개개인의 고유 속성 또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령 MBTI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야 할까. 성장할수록 어떤 좀비는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고 어떤 좀비는 돌아다니는 걸 선호했다. 여기서 더 성장한다면 다른 결과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좀비 유저는 이 실험 결과에 포함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좀비가 된 유저는 일정 결과를 모두 부정할 만큼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이 좀비들은 어디에서 파생되었는가?
-
키튼은 좀비를 대상으로 한 실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소를 가보기도 했다
싸대기를 맞았다
던진 음식물을 맞았다
NPC들의 행동이었다
NPC들은 K라는 해골 가면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원망했다
대부분의 NPC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임을 키튼은 확인할 수 있었다
-
며칠을 더 플레이하며
키튼은 대화를 할 수 있는 NPC를 찾고자 했다
다들 자신만 보면 냉대했으므로
-
한 체육관 관장을 만나게 된 건 그때의 일이었다
그는 아무도 안 오는 MMA 체육관 데스크에 앉은 채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주짓수를 걸고 있는 선수의 포스터와
승리 세레모니를 하는 선수들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키튼은 체육관 관장을 저기요, 불러 보았다
흔들어 깨워보았다
MMA 체육관 관장은 비몽사몽 상태에서 일어나 키튼에게 물었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등록하시려고요?
원한에 차 달려들지 않는 NPC는 처음이었다!
키튼은 바로 체육관에 등록할 뻔했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MMA 체육관 관장은 체육관 등록이 아니란 말에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뭔데요? 하는 말로 키튼의 말에 귀 기울여줬다
-
키튼은 MMA 체육관 관장에게 이 세계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관장은 흥분해서 말했다
어느 날 하늘에 빛의 공간이 촥 열리는 거예요. 그거 못 보셨구나. 완전 멋있었는데.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조그맣던 것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두려웠죠.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커지니까?
MMA 체육관 관장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녀가 딱 내려온 거죠. 그 공간으로
이렇게 죽나 싶었어요
세 명의 영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