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야기 3
 
 
 
   영상 속
   랑
   키튼은 피를 토하고
   이즈사는 낙서를 끄적거리고 있다
   이때
   고스트 스토어가 손짓한다
   유령들이 그들을 공중으로 끌고 온다
   꺄르륵
   꺄르륵거리는 유령들과는 반대로
   하아
   후
   그들은 처참했다
   이것이 영웅이란 이름으로
   이곳에 있는 자들인가, 세계를 구하려는 자들의 모습인가
   공기는 어떤 비정함과 솔직함으로 이뤄져 있다
   
   랑과 키튼은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공중에 흩날리는 피. 힘없이 바람에 떠밀려간다
   
   고스트 스토어는 그들을 향해 흥이 다 깨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의를 잃으면 재미없다고요… 조금 더 재밌게 해주라고요!
   고스트 스토어는 도발한다
   세계를 지키겠다고, 그렇게 애쓰며 소리쳤으면서!
   멋진 척 다했으면서!
   동태눈이나 하고 있고!
   
   이즈사는 동태눈을 하고 있다. 허공에 멍하니 손짓을 하고 있다
   
   고스트 스토어는 타겟을 옮겨 피를 토하고 있는 랑과 키튼을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당신 둘도 뭐…
   무슨 재능이니 뭐니
   꾸며진 연극인 줄도 모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이템도 잘 나오는 것 같고
   게임 자체가 너무 편하다, 느끼지 않았나요?
   누구보다 익숙한 것처럼
   오만하지 않았나요?
   
   고스트 스토어의 혼잣말이 이 하늘을 다 사랑한다. 차지한다
   
   진짜 재미없다!
   고스트 스토어는 한숨을 푹 쉬며,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준다고 한다
   
   그러니까요. 그런 얘기에요
   제가 저기 있는 크루슈를 한 명 없애면
   
   고스트 스토어의 손짓 한번으로 크루슈 한 명이 이 세계에서 지워진다
   
   키튼 씨
   뻐꾸기 34_크루슈가 검은 연기로 사라질 때요. 그 뒤에 뭔가 일어나지 않았나요? 갑자기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던가?
   
   고스트 스토어는 말을 마친 뒤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혼자 깔깔거렸다
   
   분명 뻐꾸기 34_크루슈가 검은 연기가 되어 이 세계에서 사라지자마자
   병원에서 연락이 온 기억이 키튼의 이성을 가져간다
   엄마가 갑자기 아프다고 온 연락이
   
   키튼은
   일순간 고스트 스토어에게 다가선다
   공중에서
   공중으로
   그러나 하늘을 나는 능력 따위는 없다. 그대로 떨어진다
   푹
   키튼의 머리가 지상의 돌에 부딪혀 터진다
   고스트 스토어는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친다
   
   그래요! 이거예요! 고스트 스토어는 손짓으로 키튼을 되살린다. 시간이 루프 되듯, 시체에서 다시 하나의 형태로 키튼은 공중에 서 있다
   
   너는 이게 재밌지
   
   키튼의 말에 고스트 스토어는 고개를 끄덕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키튼은 크루슈와 엄마가 어떤 관계성을 지니는지.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얽혀 있는 이야기인지. 자신의 상상은 맞는 것인지. 이것 또한 장난인지
   두려웠다
   
   고스트 스토어의 손짓으로
   모두 다시 땅으로 쳐박힌다
   
   사이좋게 모두 다 피를 토하며 고스트 스토어 아래에 있다
   
   키튼은
   두려웠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선다. 다가선다. 절뚝거리며 나아간다. 고스트 스토어는 쳐다보고 있다.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키튼은 주먹을 붕 휘두른다. 고스트 스토어는 맞지 않는다. 그대로 키튼은 홀로 넘어진다
   넘어진 채
   손을 뻗어
   고스트 스토어의 발목을 붙잡는다. 올려다본다. 숨겨둔 권총을 들어 쏜다. 고스트 스토어는 얼굴이 뚫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고스트 스토어는 키튼을 신나게 밟는다. 키튼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뭉개진다
   랑이 피를 토하며, 고스트 스토어에게 전진한다. 당근을 휘두른다. 스치지도 않는다. 고스트 스토어는 랑의 배를 뻥 찬다. 신음이 터져 나온다. 고스트 스토어는 랑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어디서 소환된 야구 배트로 랑의 뒤통수를 친다. 고스트 스토어는 만족하며, 작게 랑에게 귓속말한다
   
   전에 있잖아. 옛날에
   야구 배트로 후려쳤던 거 기억나?
   발코니에서 말이야
   
   고스트 스토어는 사정없이 야구 배트로 랑을 후려친다
   
   랑은 피투성이가 된다
   
   그때 말이야
   내가 널 들판으로 던져버리긴 했지만
   음
   많이 참은 거라고?
   흠흠. 그때 생각하니까 또 그립네
   
   좋은 시절이었지
   
   키튼의 얼굴은 멍으로 가득하였고
   랑의 뒤통수는 깨져 있다
   이즈사는 피투성이가 된 채
   피로
   낙서를 끄적거리고 있다
   
   후우
   고스트 스토어는 이 광경을 보며 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살려낸다. 랑과 키튼은 맞고 또 맞고. 그러나 고스트 스토어에게 또 다가가고. 또 죽고. 또 일어나고
   반복이었다
   그들은 굴렀다. 아무 희망도 없이 굴렀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적에게 다가가서 죽기
   그것 말고
   무엇도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들이 전장에 쓰러져 있다
   
   아이고, 삭신이야
   오랜만에 몸 푸니까 여기저기 다 쑤시네
   
   고스트 스토어는 피가 가득한 전장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후
   마이크를 뿅 꺼낸다
   
   아아, 들리십니까?
   네네. 제가 랑의 엄마이자 모든 흑막인 고스트 스토어입니다
   거기서 잘 보고 계시지요?
   고스트 스토어는 영상 밖에서 모든 걸 보고 있는 현실의 키튼과 시선을 마주한다
   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제가 왜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느냐!
   궁금하진 않으신지요? 기억은 조금 날 듯 말 듯 하신지요? 그래요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실 제가 다 기억을 쓱싹쓱싹
   청소를 해버렸답니다. 이건 오로지
   거기서
   지켜보고 있는 당신을 위한 이벤트! 빠밤!
   옵저버도 괜히 살려둔 게 아닙죠
   이제 당신이 움직일 차례입니다
   
   후… 담배 마렵네요
   고스트 스토어는 패딩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낸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다
   
   후
   
   비행기 사고로 기억을 잃은 키튼 씨가 이제 찾는 거죠
   
   사라진 랑을
   모든 걸 알고자 하는 랑을, 이 세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도전하는 랑을
   
   고스트 스토어는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다
   
   후
   
   이야기는 계속 철수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재구성되는 거예요
   
   고스트 스토어는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다
   
   후
   
   이야기는 모두 조작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엇갈리도록
   
   로맨틱하지 않나요?
   기억을 잃은 자만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만이 세계의 진실을 온전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당신이
   찾는 거예요
   떠난 랑을
   랑은 어디로 갔을까요?
   당신에게 일기장과 책을 휙 던져두고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나요?
   두근거리지 않나요?
   
   고스트 스토어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휙
   꽁초를 던진다
   
   불이 삽시간에 붙는다
   
   고스트 스토어가 불 속에서 현실의 키튼을 쳐다보고 있다
   
   키튼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웅 이야기 3

김병관

2024
시, 198행에 2,250자.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재구성되는 거예요.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mail : comfortvelocity@naver.com
Instagram : @melonanea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