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눈 감은 돌
   눈 뜬 돌
 
   어쩌면 돌들을 구분하다가
   평생을 다 써버릴지도
 
   평생이라는 말을 하루로 나눠보는 연습
   그러니 우린 손가락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미래를 대비하여
 
   커다란 우산을 챙길 수도 있고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지
 
   이런 말들이 담긴 엽서를 네게 쓰는 동안
   밤이 드리워졌어
 
   그런데
 
   돌들은 여전히 눈을 감거나 뜨고 있다, 성곽이나 해변. 그러니까 돌들이 있는, 혹은 돌들이 쓰이는 바로 그 장소에서
 
   나도 만들어보고자 했던 하루의 범주가 있지만
 
   어려워하고 있어
   도무지 쉬운 것이 없지만
 
   귓속말 같은 음들을 원하던 시절을 지나
   낡은 장화처럼 검은 언덕을 지나
 
   아직 오지 않은 날들도 이곳에서 기억할 수 있다고
 
   이미 떠나간 것들이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나는 봄날에
 
   내 친구에게 이런 편지 정도를 쓸 수 있다고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눈이 내리면
 
   우린 그것을 마음이라고 불렀다
 
   마음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길들이 칼처럼 빛났다
   눈부시게 환한 그 빛 사이로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길목을 생각하며 걸었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이서영


2025

시, 41행에 370자.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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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빈 새장을 바라보기
   


   이번 동인 시집에 수록된 서영의 시들은 타자와 조응을 하려는 의지로 가득해 보였다. 그런 의지는 ‘먼 하늘에서는 폭죽이 터지고/창가에 매달아둔 풍경이 흔들리고//나는 이 모든 징조가 마음에 듭니다’(「여름 환영」) 라는 시의 구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서영은 섣불리 타자를 전유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앞으로 펼쳐진 ‘모든 징조’를 ‘오늘은 흐느끼거나 움켜쥐는 것’ 대신 마음의 결에 포개어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서영의 태도는 ‘네가 허락한다면’(「플로리스트의 뜰」)과 같은 문장을 통해 미루어 보았을 때 타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특히, 이번 동인 시집에 수록되는 시들은 시편마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창작하게 된 만큼 시인이 그 주제(5.18, 90년대생, 공통점, 기후 위기, 서로에 대한 시 등)를 염두에 두고 채집하게 된 시어들과 시적 상황들은 그런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시를 완성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영을 곁에서 문우로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는 시인이 시 안에 녹여 낸 주제들은 시인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말들을 각 주제에 의탁하여 감각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점을 공통점을 주제로 한 시 「낯선 양식」의 한 연에서 명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느꼈다.
 
   미소와 슬픔의 잠, 그리고 두려움이
   가슴 안에 꽁꽁 얼어붙은 새장을 만들었다
   빈 새장은 혼자서
   자꾸 얼어붙고 녹아내리기를 반복했다
   다만 그곳엔 아직 어떤 새도 깃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양식이야말로
   새장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낯선 양식」 중
 
   공통점이라는 동인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곳이 장소가 되고 공동의 몸(體)이 형성된다. 그 몸이 우리는 문학이었고 그 공동체(共同體) 안에서 ‘미소’를 짓기도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를 결속시키는 것은 서로를 공동체라는 새장 안에 가두고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새장에 새가 부재하고 있는 상태. 그 상태가 서영은 가장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처럼 공통점 일원들이 계속해서 문학이라는 공동의 몸 안에 머물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가 서로를 소유하거나 가두려는 것이 아닌 오히려 빈 새장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빈 새장을 드나드는 서로의 마음들을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응원하기. 그것이 문학이라면 우리는 어떤 통증 속에서도 하나의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길을 열고 또 닫듯이’ 우리가 긋는 성호의 위치가 길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라는 말 속에 갇히지 않고 빈 새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또렷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타자는 나의 바깥에 갑작스레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먼저 발견되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서영이 나를 염두에 두고 쓴 시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은 서영의 공통점을 주제로 한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타자와 조응하려는 의지’를 면밀하게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눈 감은 돌
   눈 뜬 돌
 
   어쩌면 돌들을 구분하다가
   평생을 다 써버릴지도
 
   평생이라는 말을 하루로 나눠보는 연습
   그러니 우린 손가락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미래를 대비하여
 
   커다란 우산을 챙길 수도 있고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지
 
   이런 말들이 담긴 엽서를 네게 쓰는 동안
   밤이 드리워졌어
 
   그런데
 
   돌들은 여전히 눈을 감거나 뜨고 있다, 성곽이나 해변, 그러니까 돌들이 있는, 혹은 돌들이 쓰이는 바로 그 장소에서
 
   나도 만들어보고자 했던 하루의 범주가 있지만
 
   어려워 하고 있어
   도무지 쉬운 것이 없지만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중
 
   처음 이 시를 읽게 되었을 때 물론, 서영이 나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 이야기처럼 밀도 높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평생이라는 말을 하루로 나눠보는 연습’이라는 시구가 큰 울림을 주었는데 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하루이기도 하고 하루가 눈 감는 날까지 하루의 평생을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그 선물을 하루와 나누고 싶어 이 시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게 읽어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시가 전하는 대상이 뚜렷하다고 해서 시의 의미를 그 대상에서만 찾아 해석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나는 이 시에서 시인도, 시의 대상도 모르게 대상을 비껴나가 그 너머에 가닿으려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귓속말 같은 음들을 원하던 시절을 지나/낡은 장화처럼 검은 언덕을 지나’와 ‘마음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길들이 칼처럼 빛났다/눈부시게 환한 그 빛 사이로//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길목을 생각하며 걸었다’와 같은 부분들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서영이 도래하려는 ‘손가락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미래’에서 파악될 수 있는 기지와 그렇지 않은 미지의 것들에 대한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을 감지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가 그 예감과 맞물려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린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을. 이 마음과 조응하는 삶에서 불가능한 것은 오로지 가능으로 걸어가지 않는 것뿐일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서영이 준 이 선물 같은 마음을 깊이 간직한 채 하루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음을 다해 빈 새장을 바라보기


이기현


2025

시평, 43문단에 1998자. 선물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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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광주 출생 및 거주. 장르적 구분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하며 공통점과 함께한다.

Instagram : @applenenenene0
e-mail : tjdud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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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현

199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Instagram : ​@kidolmon_
e-mail : tinannhuj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