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그릇과 사람



   누군가와 함께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길 기다리는 사람은
   식탁 위에 놓인 칠그릇을 보며
   그것이 정묘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가끔 자신을 아프게 했던 것들이
   심령 현상이 되어 선반을 흔들기도 하고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 입고

   집 밖을 나서기도 하지만 사람은
   칠그릇에 담긴 께느른한 햇볕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이곳에 자신만 있다고 생각될까 봐
   사람은 식탁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기로 한다

   어디선가 시나위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은 당골의 춤과 노래를 상상하며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다가오는 것과 동시에
   나란히 있어 줄 것이라는 걸

   자신이 사랑하기로 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게 된다

   식탁 위에는 칠그릇이
   놓여 있고
   그것은 정묘하다​ 

칠그릇과 사람


이기현


2025

시, 31행에 283자. 자신이 사랑하기로 한 사람이 될 것.

원형_행성_흰색-09.png
원형_행성_흰색-09.png
원형_행성_흰색-09.png
원형_행성_흰색-09.png
원형_행성_흰색-09.png
빛과 사랑과 모두
   
   
   
   언젠가 술에 취한 기현이 나를 비롯한 동생들을 자취방에 앉혀놓고 말한 적 있다. 너희 시 같은 거 쓰지 말라고. 정신 차리고 현실을 살 생각을 하라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주에 남아 시를 쓰던 기현이 뒤따라 졸업을 앞둔 한 살 터울 동생들에게 건네는 쓰디쓴 충고였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싱거운 술주정 쯤으로 여기고 넘어갔을 그 훈계가 특히나 아프고 당혹스러웠던 이유는, 기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취했기로서니 그런 사람의 입에서 펜을 꺾을 것이고 너희도 문학에 그만 목매달라는 말이 나오다니, 둘러앉아 있던 우리가 형 그게 무슨 소리냐며 성을 내고 몇 차례 설득과 반박을 해보았지만, 당시의 기현은 확고하게 시를 저버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물론 거기서 기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실천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기현 자신마저도. 두 가지가 왜 양립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을 위해 시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던 기현의 자취방 책상에는 얼마 전까지 그가 끼적이고 있던 게 분명한 시작 노트가 펼쳐져 있었고, 그날 우연히 그 노트를 목격한 우리로서는 그의 선언과 충고를 신빙성 있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그날의 사건 이후로도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양 묵묵하게 시를 써나갔고, 몇 달 뒤에는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발언의 당사자인 기현에게서 문예지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또 다른 의미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면서 술자리 중 기현의 놀림감이 되고는 한다. 동생들더러 정신 차리라며 시 쓰지 말라던 사람이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하고 당선까지 하다니, 기쁘고 축하할 일임은 틀림없지만 무언가 웃기고 괘씸한 것도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그는 이 얘기가 나올 때면 마땅한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아팠던 시절이었다며 멋쩍게 웃을 뿐인데, 그런 그의 웃음 뒤에는 왠지 그 낙담의 시간들을 떠올리는 듯한 쓴웃음이 깃든 것도 같아서 가끔은 안쓰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를 언제든지 민망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좋은 놀림거리를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그날의 일을 농담으로 꺼낼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때 기현의 말이 결코 충동적인 실수가 아니었다는 걸, 어쩌면 누구도 깨트리기 어려운 굳은 결심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진심으로 시를 사랑한 만큼 그것을 저버리겠다고 문우들에게 말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커다란 좌절과 실의가 앞섰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 년 남짓 더 광주에 머무르는 동안 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고독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는지 그때의 나는 미처 묻질 못했다.
   얼마 전에는 한 문예지에 실린 기현의 대담 지면을 읽었다. 대담에서 그는 광주에서의 시기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때 깊은 상심의 그늘이 그에게 드리웠던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광주에서 보낸 시절에 해밝은 추억의 지분이 더 커다란 듯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만일 그 시간의 기여자에 나도 포함되는 거라면 자랑스럽고 기쁠 것이다. 하지만 엄격해지자면, 더는 시를 쓰지 않겠다며 무너지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던 건 정확히 친구도, 동인도, 다른 누구도 아닌 어제의 기현 자신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짐작하건대, 술과 잠에서 깬 다음 날 기현이 보았던 건 바로 전날까지 그가 빼곡히 채워가던 시작 노트였을 테니까.
   지난겨울 기현이 펴낸 시집 『슬픈 토우는 고래만큼』을 간만에 꺼내어 읽는다. 너무나 많은 슬픔의 시어가 담긴 이 붉은 시집에서 나는 그해 그날 새벽, 기현이 감내하고 있던 시간들을 언뜻언뜻 마주한다. 만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의 말을 들으며 끄덕여줄 것이다. 그가 잠시 “슬픔의 나라” 어느 “변방”을 걷고 있다 해도, 언제든 스스로 회복하여 “빛과 사랑과” 모두가 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걸 믿게 되었으니.

빛과 사랑과 모두


조온윤


2025

산문, 6문단에 1473자. 네들은 시 쓰지 마라…….


이기현_프로필.png
이기현

1992년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Instagram : @kidolmon_
e-mail : tinannhujou@naver.com
조온윤_프로필.png
조온윤

시집 『햇볕 쬐기』 『자꾸만 꿈만 꾸자』가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mail : onew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