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 모임
 


   입장하였더니 빈방. 환대는 내 몫이 된다. 선택하자. 선택하는 거야. 비장하게 미간을 구기고 있는데 네가 입장했다. 내 각오가 우습게도 너는 가지런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조그만 팡파르가 터진다. 아이 참. 제 이름은 그게 맞아요. 우리 같은 끝을 공유하고 있네요. 아이 참. 이런 우연이 있으면 옥수수밭에 놓인 것 같아요. 왜 그 시절에는 영이라는 글자를 그렇게 넣었을까요. 부드럽기 그지없으니까. 부드러우면 무엇이든 녹일 수 있잖아요. 아이 참. 이거 받아요. 뭐예요? 옥수수밭에서 따 온 단단한 옥수수. 알이 가득 차 있어요. 단물도 나올 거예요.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서,
   그 말… 그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서글픈 사람들이 웃어서 웃기다.
 
   이번에는 술을 한 잔씩만 마셨어요. (짝짝짝)
   통각이 조금 마비된 듯합니다. (짝짝짝)
   손톱을 보고 자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자르지 않았어요. (짝짝짝)
   남해에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동안 남해에 관한 시를 엄청 썼거든요. 이제 그 짓을 그만뒀어요. (짝짝짝)
 
   다리가 달달 떨릴 때쯤 너는 내가 준 옥수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저는 부드러우면서도 단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니 그것은 유해 물질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럼 저는 이제 뭐가 되어야 할까요? (…)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박수 치지 못했다. 섣부른 대답은 유해해지기 십상이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역시나 서글프다.
 
   한편 맞은편 극장에서는 파블로 피쇼네코의 특별전이 상영되고 있었다. 옥수수밭에서 펼쳐지는 묵상이랄까. 마지막 쇼트에서 갓 딴 옥수수를 클로즈업하며 끝이 난다. 여기서 단단히 물러 버린 한 알을 찾아보시오.
 
   영아, 너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지옥행이 따로 있는 거 아니더라.

자조 모임


장가영


2025

시, 20행에 645자. 너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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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끝



   가영을 잘 모른다. 결국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겠지. 공통점에 뒤늦게 합류한 가영과 공통점이라는 이름 안에서, 혹은 그 이름에 의해 함께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기억나는 건 어느 추운 겨울날, 그날은 다소 왁자지껄한 술자리였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도 못했다. 노트북 화면 너머로만 만났던 가영의 실물은 생각보다 작았고, 씩 웃을 때 귀여웠던 기억. 가영이 나보다 한 살 많고, 꽤 많은 영화를 보는 것 같고, 시를 써 내려갈 때 누구보다 용감하게 이 세계와 마주할 것을 알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지, 언제 어떤 순간에 기 쁨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영 의 시 안에서 파생되는 ‘어떤 것들’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정확히는 그것을 발견해내고야 마는 시인의 시선과 미학적 입장에 관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음을 이 글로 말하고 싶다. 
   입장이라는 말은 문학의 아름다움과 어떻게 결부되는가. 사실 입장이라는 것은 때로 피부의 문제가 된다. 피부는 ‘나’라고 부르고 싶은 범주의 끝이며, 이곳에 고스란히 노출된 생명의 윤곽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것, 실재하는 육체의 ‘끝’이자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이 상황 안에서 세계와 대응(혹은 조응)하는 경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칭과 육체에 대한 사유가 시인들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공통 과제처럼 되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피부’ 혹은 ‘끝’은 새로운 맥락 위에 놓여야 할 단어들이 된 것만 같다.
   그렇다면 아주 투명한 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나’라고 부르고 싶은 무수한 것들이 반영된 채, 거울처럼 세계를 마주하며 빛나고 있는 피부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성질을 얻어 강처럼 흘러가는 피부는 결국 눈물처럼 흐를 것이다. 또 다른 얼굴 위에서. 그러므로 가영의 시들은 가두는 시가 아니라 흐르는 시. 표면 위로 타고 흐르는 시. 번개처럼 번뜩이는 사이에 희미한 연결을 기약하는 시. 나의 범주라는 것은 결국 ‘나만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악력을 놓았을 때, 무궁무진하게 확장되는 것임을 가영의 시를 통해 느꼈음을 고백한다. 파국 너머의 시, 지옥 너머의 시. 파국과 지옥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려(「인과」)” 하는 사람이 여기 있음을 알리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삶에서 “어디라도 떠들썩하다는 것은 좋은 일(「소란」)”이라 말하는 의지를 밝히는 솔직한 시.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말들이 자연히 떠오른다. 가슴 속에서.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게 무엇이든. 
   “수만 개의 창의성은 대체 어떤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일어난 일」)”인지 물어오는 발화. 이번 동인시집을 통해 발표된 가영의 시편들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표현이었다. 그것은 “선한 뿌리에 대한 믿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만 허용된 종류의 육체성일 것이다. 거칠고 무질서하고 인간의 한계를 되묻는 세계의 정황들 안에서, 모든 것들의 끝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끝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시인이다. 나는 가영과 모국어라는 끝을 공유한다. 함께 시를 쓴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오랜 위안이 되었으면, 천천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즐거움이 되기를 마음으로 바란다. 

같은 끝


이서영


2025

산문, 7문단에 1222자. 나는 그와 모국어라는 끝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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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영

시와 시를 닮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Instagram : @borntobefreefree
e-mail : jangkangtae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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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광주 출생 및 거주. 장르적 구분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하며 공통점과 함께한다.

Instagram : ​@applenenenene0
e-mail : tjdud31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