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사람에게
   ―현우 아닌 병관에게
   
   
   
   미륵산 장군봉의 한 능선에 자리잡은 사자암은
   스님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있는 고요한 절입니다
   사자암 대웅전 앞마당에는 오래된 삼층석탑이 있어요
 
   미륵산을 오릅니다
   느티나무 가지 위에는 어여쁜 둥지가 있고
   저 멀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요
   이끼 낀 바위를 지나 대나무숲을 헤치고 도착한 곳에는
   보란듯이
   오래된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것을 보고 싶었어요 아주 오래된 것을
   저는 천천히 탑을 돌면서 삼층석탑을 샅샅이 보았습니다
   돌에 묻은 바람과 깨진 곳을 메운 안개와
   탑신부에 난 작은 구멍까지 들여다보았으니까요
 
   가까이 더 가까이 깊은 곳까지 보느라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쪽지가 있었거든요
 
   저는 구멍에서 쪽지를 꺼내는 일에 몰두하느라
   아침 이슬이 걷히는 줄도 몰랐어요
   마침내 꺼낸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삼층석탑을 등지고 서서 금마저수지를 보시오
 
   저는 삼층석탑을 등지고 서서 금마저수지를 보았어요
   산을 덮은 상록수 너머 저 멀리 있는 금마저수지를요
   부드럽게 휘어지는 저수지의 모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안에 가득 찬 물이 반짝이고 아름다워요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보냅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김조라


2025

시, 33행에 445자.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보냅니다.

원형_행성_흰색-07.png
원형_행성_흰색-07.png
원형_행성_흰색-07.png
원형_행성_흰색-07.png
원형_행성_흰색-07.png
데이터 시대의 당신에게
―보라 아닌 조라에게
 
   
 
   세탁기가 돌아가던 어느 여름. 나는 그때까지 데이터라는 말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한가롭게 버지니아 울프의 「WHY? (1934)」를 읽으려 하던 때였다. 평화로움과 텍스트가 이제 막 커플 요가 자세를 취하려고 서로를 지탱하려던 찰나 벼락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창밖엔 머리를 며칠 안 감은 듯한 중년 여성이 보였다. 여성은 헤진 메신저백을 주렁주렁 매단 채 악을 질러대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유령처럼 보내는 내게 이런 일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실감을 줬다. 중년 여성은 아이의 옷이라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고, 말하는 외침과 함께 사라져갔다. 수군대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은 아이 몇 명을 잃고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사람을 아픈 사람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도약에 가까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지니아 울프의 「WHY? (1934)」를 다시 펼치려는데 책 표지에 쓰인 WHY라는 문구가 나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 도발적인 세리프(Serif)체. 폰트 중 하나인 세리프(Serif)체는 각 문자의 끝에 작은 장식(발 모양)이 있는데, 그날따라 그 형태가 질문으로 향하는 행진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그 사람을 쉬이 규정하였나?
   사라져간 중년 여성을 떠올렸다. 며칠 안 감은 듯한 머리, 헤진 메신저백, 악을 질러대는 모습……. 지금, 이 인식에서 스킵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은밀히 자신을 드러내는 데이터의 방식에 처음으로 흥미를 느끼게 된다.
   순식간에 처리되는 운명을 가진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다. 흔히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문자, 소리 등의 형태를 말하지만, 자료라는 사전적 정의로 보면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침묵하지도 않지만 들뜬 수다쟁이 또한 아니므로 교묘히 있다. (피크 타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처럼 간략한 편의성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는 데이터의 무신경함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 1일 차. 주변이 스스로 재잘대기 시작했다. 평소엔 그저 지나가기에 바빴던 것들이 소리와 생명을 가진 어떤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령, 낡은 빌딩을 보면 무너져 가는 벽, 창의 허술함. 계단에 붙은 껌딱지 등이 단순 시각화를 넘어 어떤 유기적인 흐름처럼 느껴졌다. 끝없이 얘기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관찰 3일 차. 어디서든 뭔가 설명되고 있다. 관찰 5일 차. 이 세상은 지나치게 들이차 있다는 느낌이 든다. 관찰 12일 차. 일상은 전복됐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나는 신경쇠약 증상을 느낀다. (정신 건강을 위한 관찰 종료…….) 유심히 관찰하며 느낀 것은 스킵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빠른 처리만이 인류를 인류로 이끄는 구심점이 되는 게 아닐까. 규정은 대량 생산된 복사본이 아닐까. 사회적 합의 및 코드화. 각자의 믿음으로 구성되는 알고리즘 속엔 양분으로 흐르는 데이터가 있을 것 같다. 그리 순도가 높지 않은 데이터 스팸의 시대. 그것들이 범람하는 시대. 우리는 각자의 더미 속에서 세계의 해상도를 조정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세계만이 공고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이쯤에서, 시 「멀리 있는 사람에게」에 부제로 적힌 현우 아닌 병관에게, 라는 문구에 대하여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공통점 멤버들은 동인시집을 준비하며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시 합평회를 다시 열었다. 동인시집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름과 관련된 시를 쓴 적 있다. 내용 일부는 이러하다. ‘어머니는 내게 현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스님의 말에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병관이란 이름은 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존재 이전 누군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스킵되고, 쉬이 규정되고, 모든 게 빨리 판단되어야 하는 데이터 스팸의 시대 속에서, 미륵산에 다녀온 건 그래서다. 보라가 써준 시 「멀리 있는 사람에게」의 배경인 미륵산을 한보씩 걸으며 누군가 조용히 떠올려준 마음을 살펴보고 싶었다. 느리게 걸으며 천천히 시의 배경을 알아보고 싶었다.
   미륵산은 익산시에 있는 산이다. 서울에서 상마, 도마리, 사오랑을 거쳐 도착한 미륵산은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데이터를 바라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살펴봤다. 느티나무 가지 위에 어여쁜 둥지가 있었다. 새는 멀리서부터 말을 건넸다.
   사자암은 작은 절이었는데, 몇 걸음 걸으면 다시 뒤돌아서야 했다. 같은 풍경을 오래 마주해야 했다. 시가 출력된 A4용지를 쥐고서 시의 내용을 따라갔다. 오래된 삼층석탑을 등지고 서니 저 멀리 금마저수지가 보였다. 멀리 있는 금마저수지가 맑은 날씨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보라가 자신에게 조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건 어떤 마음에서 시작된 것일까.
   사람은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바라보려는 시도엔 반짝임이 있을 것 같다. 오래도록 무언가를 지켜봤다. 멀리 있는 사람들이 작게 보였는데, 느리지만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보낸다.

데이터 시대의 당신에게


김병관


2025

산문, 12문단에 1858자.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보낸다.


김보라_프로필.png
김조라

시와 짧은 소설을 쓴다. 효천로를 지날 때 임암교에 서서 대촌천을 본다.

Instagram : @jora_kim_
e-mail : joraakimm@gmail.com
김병관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 시를 쓸 땐 카프카의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린다.
우리는 바벨탑 아래 굴을 판다.

e-mail : comfortvelocity@naver.com
Instagram : @melonanearme